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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에 담긴 마음

#6

by 레빗구미



골목길에서 확인한 마음들


북아현동의 골목길을 좋아했다. 2호선 아현역에서 북아현동으로 가는 작은 도로를 따라 쭈욱 들어가면 양쪽으로 골목길이 여러 갈래로 나온다. 여러 형태의 가게들을 지나고, 작은 초등학교를 지나면 완전한 주택가가 나온다. 그렇게 계속 어느 쪽으로든 가면 산 중턱 어디 즘에 있는 집들과 만나게 된다. 완전한 산길이 나오기 직전까지 다양한 형태의 주택들이 열을 지어 계속되고, 꽤 규모가 큰 고급 주택이 모여있는 골목도 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북아현동의 좁은 미로 같은 골목들은 좋은 산책로였고, 생각할 공간이었고 놀이터였다.


골목골목을 지나고 집들의 다양한 모양을 보면서 어딘가에 숨겨진 아무도 모르는 작은 공터도 발견했고, 거기서 야구 같은 다양한 놀이도 친구들과 했다.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집을 벗어나고 싶을 때 그 골목을 한참 돌아다녔다. 이어폰을 꽂고 골목길의 다양한 갈래를 탐험하다 보면 어느덧 마음속의 복잡한 감정을 잠시동안 잊게 된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다 만난 작은 사찰에 들어가 부처님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오기도 하고, 친구들을 불러 밤의 골목길을 탐색하기도 했다.


골목길을 돌아다니는 시간은 내게 온전한 자유의 시간이었다. 부모님의 눈치도 볼 필요 없고 꽤 안전하게 계속 돌고 또 돌 수 있었던 그 길.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도 그런 동네 골목길이 나온다. 주인공 삼 형제가 걸어가고, 아주 깊은 골목길에 살던 주인공 지안(아이유)의 집이 마치 과거의 골목길에서 보던 집 같이 느껴졌다. 그 골목길 주변엔 알음알음 알게 된 동네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아주 사소한 것까지 아주 쉽게 알게 된다. 그런 친밀감은 아마도 그 골목길의 분위기가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른다. 동네 사람들만 아는 골목길의 지리와 위치는 그런 골목의 분위기가 만들어낸 일종의 '감정'이 된다. 누군가 특정 골목길을 이야기할 때, 자연스럽게 언젠가 경험했던 감정들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밤이 되면 그 골목길의 운치는 더 높아진다. 주황색 가로등이 켜지고 다양한 형태의 주택들에 하나둘씩 불이 켜진다. 마치 꺼진 양초가 켜지듯 높은 곳으로 올려다보면 어느덧 불을 밝힌 집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반대로 골목길의 꼭대기 계단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면, 북아현동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등성이에 지어진 주택들은 서로 아주 가까지 붙어있고, 높은 건물은 없었던 꽤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웠던 마을의 전경은 시골마을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전형적인 도시의 야경도 아니었다. 그건 북아현동의 골목만이 가진 어떤 분위기였다.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에도 골목길이 여러 번 나온다. 주인공 남녀가 데이트를 했던 골목들은 마치 북아현동의 골목과 닮아있다. 그 골목길에서 서로 만나고 엇갈리고 또 달리는 모습들이 꽤 마음에 들어왔다. 이 영화가 이렇게 마음속에 오래 남아있는 건, 그 두 사람의 인연이 골목길에서 시작되고, 또 골목길에서 끝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 좁은 길이 촘촘히 이어진 그 골목길이 주는 정서는 꽤 오랜 시간 동안 남아있다. 그래서 <유열의 음악앨범>은 그 당시의 라디오로 얽힌 추억들을 담은 영화이지만 골목길 속에 담긴 감정들을 매우 잘 담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제 북아현동의 골목은 반만 남아있다. 재개발로 많은 골목길들이 아파트의 거대함에 사라져 버렸다. 좋게 보면 불편했던 길이 잘 정비가 된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들은 결국 그걸 경험한 사람들의 마음속에만 남는다. 그 골목에서 느꼈던 다양한 감정들. 친구와 웃고 떠들었던 순간, 친구와 다퉜던 순간. 부모님께 혼나 집에서 뛰쳐나오며 느꼈던 섭섭함. 아무도 없을 것 같은 외로움. 그런 감정들은 여전히 마음속 어딘가에 남아있다.


<나의 아저씨>의 모든 주인공들이 좋아하는 그 동네.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쉽지 않은 삶을 살고 있지만 그 동네 어딘가를 함께 걷고 이야기하며 작은 위로를 받는다. 그렇게 골목길에서 확인한 그 마음들은 우리 삶을 지탱해 줄 수 있는 작은 힘이 되는 것 같다. 여전히 도심의 작은 길들이 정비되고 있지만 다양한 형태의 골목길은 남아있다. 작은 길을 따라 천천히 걷고 주변을 보다 보면 그 안에 담긴 여러 가지 '감정'들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 골목길의 '감정'들. 그건 사라지지 않는다.


심지어 '골목길'이라는 노래도 있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의 추억이 골목길에 담겨있을까?




노래 '골목길' 가사 - �




만나면 아무 말 못 하면서
헤어지면 아쉬워 가슴 태우네
바보처럼 한마디 못하면서
뒤돌아가면서 후회를 하네
골목길 접어들 때에
내 가슴은 뛰고 있었지
커튼이 드리워진 너의 창문을
한없이 바라보았지
만나면 아무 말 못 하면서
헤어지면 아쉬워 가슴 태우네
바보처럼 한마디 못하면서
뒤돌아가면서 후회를 하네
수줍은 너의 얼굴이
창문 열면 보일 것만 같아
마음을 졸이면서 너의 창문을
한없이 바라보았지
만나면 아무 말 못 하면서
헤어지면 아쉬워 가슴 태우네
바보처럼 한마디 못하면서
뒤돌아가면서 후회를 하네
골목길 접어들 때에
골목길 접어들 때에
골목길 접어들 때에
골목길 접어들 때에 그때에 그때에
골목길 접어들 때에




골목길 노래 듣기


https://www.youtube.com/watch?v=CaPVBhAAq6E






추억에 가려진 아픔


페이스북에서 한국의 예전 사진을 업데이트하는 계정을 팔로우하고 있다. 거기엔 1900년대 초반부터 50-90년대의 한국 곳곳의 모습이 종종 업데이트된다. 과거의 사진을 보며 사진 속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사진을 가만히 보다 보면 그 속의 자동차와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누가 찍는지도 모르고 사진기를 보며 웃는 사람들, 무표정한 얼굴로 앞으로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 같은 그 당시 현장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때가 많다.


특히나 얼마 전에 업데이트된 60년대 명동의 풍경은 건물과 네온사인만 현대적으로 복잡하게 바뀌었을 뿐, 사람들의 표정과 거리의 분위기는 지금과 비슷한 느낌이다. 그 당시에도 '시내'였을 그 공간들은 다양한 가게들과 그것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종종 사진을 보면서 사진 찍을 그 당시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사진 전시를 자주 접하는 건 아니지만, 그림과는 다르게 사진은 그 현장을 머릿속에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게 해주는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진 속의 인물들의 행동뿐만 아니라 소리나 냄새 같은 것도 상상해 볼 수 있다.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을 정지된 화면으로 출력된 그 모습은 매우 정적인 것이지만 이상하게 생동감이 느껴진다. 아마도 제대로 그때의 그 순간을 찍은 사진은 그런 생동감과 감정이 더욱 잘 느껴질 것이다.


영화 <라스트 나잇 인 소호>는 60년대 런던의 감성을 듬뿍 담고 있는 영화다. 현재의 엘로이즈(토마신 맥킨지)가 60년대의 샌디(안야 테일러 조이)의 환영을 꿈에서 보게 되는데 그 꿈속에서 펼쳐지는 60년대의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화려하다.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연출작답게 무척 화려하고 경쾌하고 딱 맞는 음악들이 계속 나열된다. 그러니까 영화를 보다 보면 그 당시의 분위기를 무척 잘 느낄 수 있다. 마치 딱 그 시대의 어떤 장면을 찍어놓은 여러 장의 사진처럼 영화는 쉴 새 없이 그때의 화려함을 보여준다. 영화를 보면서 마치 화려한 그 시절의 사진들을 모아놓은 전시처럼 느껴졌다.


사실 사진은 그 당시의 단면만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 이면에 어떤 감정이 숨어있는지 알기 어렵다. 그래서 그런 사진들은 마치 엘로이즈의 꿈처럼 조금은 현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60년대의 인물들은 점점 어두운 경험을 하게 된다. 사실 화려함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과거의 이미지일 것이다. 하지만 그 뒤에 숨은 어두운 일들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의 현실에 어두움과 힘든 일이 있듯이 그 당시에도 똑같은 어두움과 힘든 일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과거든 현재든 화려함의 이면에는 아픔이 자리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 샌디는 점점 깊은 어둠으로 빠져든다. 그가 한 행동들은 엘로이즈에게 전달되며 공포를 느끼게 하지만, 그 공포라는 감정 자체는 샌디가 느꼈던 가장 큰 감정일 것 같다. 화려한 성공을 바라고 소망했던 그가 가진 감정은 기대에서 출발해 공포와 절망으로 막을 내린다. 샌디라는 인물은 위로가 필요했던 인물이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사진 속 샌디의 모습을 보면 미소 뒤에 왠지 모를 슬픔이 배어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늘 접하던 페이스북에 접속해 과거에 찍은 사람들의 표정을 본다. 그 사람들은 비록 옅은 미소를 보이고 있지만 그 속에서 어떤 아픔이 느껴졌다. 녹록지 않은 현실. 어쩌면 그 당시 답답했던 시대상을 표정에 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때라고 모든 것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위로가 필요했던 과거의 사람들을 위로할 기회가 있다면 가만히 얼굴을 보며 위로해 주고 싶다. 영화를 보고 나서 여러모로 답답한 현재의 일들이 과거에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사람처럼, 나도 현실의 엘로이즈처럼 환상을 동경한 건 아니었을까. 어쩌면 나도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고, 또 위로받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 화려함의 이면을...








홍콩의 골목길


과거 홍콩영화를 좋아했다. 아마도 90년대의 홍콩영화들을 싫어했던 사람들은 없었을 것 같다. 익숙하지 않은 광둥어가 멋있어 보이고 주인공들이 활약하던 홍콩이 그렇게 멋있는 도시처럼 보였다. 특히나 영화 속 홍콩은 큰 도심지의 모습도 있지만 꽤 멋진 골목길도 많이 보였다. 골목길에서 음식을 먹고 주인공들이 대화를 하는 장면은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왠지 멋있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래서 화면 속의 홍콩은 다른 나라의 도심과는 좀 다른 특별한 느낌을 주는 도시였다.


2013년즘 홍콩에 실제로 가보게 되었다. 생각보다 작은 도시라는 것에 놀랐고, 촘촘히 뻗어있는 다양한 골목길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에 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잘못하면 길을 잃을 정도로 촘촘히 뻗어있는 골목길들. 그래도 그 골목길 속에 숨어있는 식당에 찾아가 밥 먹는 게 즐거웠고, 모르는 골목길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구경하는 것이 좋았다.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홍콩의 골목길을 탐험한다는 것이 꽤나 즐거운 느낌을 선사해 주었다. 한국의 골목길과는 다른 느낌. 중국어로 쓰여있는 네온사인과 간판들이 홍콩이라는 도시를 더 좋아하게 만들었다.


어떤 사람은 홍콩이라는 도시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홍콩은 별로 볼 게 없더라.' 어쩌면 맞는 말일수도 있다. 사실 몇 군데의 유명한 관광지를 제외하면 특별나게 볼거리가 없다는 느낌도 있고 생각보다 작은 도시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홍콩의 지역 마트에 들어가서 현지 제품들을 구경하고, 지하철과 가까운 도심지를 거닐다 보면 그것 자체가 꽤 많은 볼거리를 선사한다. 그런 사소한 것들이 홍콩이라는 도시의 숨은 매력이 아닐까.


영화 <추룡>은 2017년에 개봉한 영화다. 대만 여행 중에 대만의 극장에서 보게 된 영화에는 과거 홍콩의 골목길 모습이 듬뿍 담겨있다. 특히나 그 당시 다닥다닥 붙어서 만들어진 구룡성의 모습은 과거의 빈민촌의 또 다른 모습이었지만 미래 SF에서나 봄직한 모습이었다.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공간에 촘촘히 자리를 잡고 삶을 이어가고 있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 주변 골목길에서 벌어지는 등장인물들의 혈투와 음모, 액션은 과거 홍콩 영화를 볼 때 느끼던 비장함과 진지함이 그대로 영화 안에 들어가 있었다. 그런 구룡의 분위기가 영화와 굉장히 잘 맞아떨어졌다. 현재 구룡 지역은 과거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좋은 호텔과 좋은 건물들이 가득 들어차있다. 여행 중 그곳의 한 마트를 구경하던 중, 구룡성의 옛 사진을 볼 수 있었다. 그건 영화 속 모습 그대로였다.


1991년에 개봉했던 홍콩영화 <여락>이라는 작품이 있다. 유덕화가 주연을 맡았던 이 영화는 '여락'이라는 경찰이 주인공이고, 그가 부패한 인사들을 수사하고 잡아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런데 영화 <추룡>에도 '여락'이 나온다. 심지어 배우도 과거 영화와 똑같은 유덕화가 맡고 있다. 어쩌면 이런 점이 과거의 홍콩영화 스타일과 연결되어 영화를 보는데 좋은 느낌을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여락과 함께 협력하는 어떤 조직의 오세호(견자단)가 나오는데, 그들의 합이 아주 좋지는 않지만 이들이 같이 엮이고 관계를 맺어가는 모습이 굉장히 흥미롭게 그려져 있다. 그때의 정치적인 상황과 영국 관료들의 영향력을 영화에서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이제 홍콩영화는 많이 쇠락했다. 그래서 더 이상 한국에서 홍콩영화의 개봉을 찾기 어려워졌다. 그나마 가장 최근에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가 바로 <추룡> 일 것 같다. 여전히 홍콩에서는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유덕화나 견자단 같은 과거의 스타들이 여전히 영화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외부로 뻗어나가지 못하고 동어반복을 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 예전 홍콩 영화들에서 볼 수 있었던 홍콩의 '골목길'을 다시 보고 싶다. 여전히 홍콩의 분위기는 그대로일 텐데 그것이 담긴 영화를 이제 더는 쉽게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


<추룡>은 꽤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다. '여락'이라는 실제 있었던 경찰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구성된 영화이기 때문에 그 당시의 홍콩 상황을 어느 정도는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에는 홍콩의 '골목길'이 잘 담겨있다. 그중에서도 구룡 성체의 모습과 그 좁디좁은 건물 안의 모습도 꽤나 잘 촬영되어 있다. 앞으로도 영화 속에서 홍콩의 분위기를 봤으면 참 좋겠다. 이제는 희미해져 버린 홍콩의 '골목길' 그 안에 담긴 여러 감정과 분위기를 다시 한번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나길... 간절히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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