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포트에 물을 데워서 찬물 반 따뜻한 물을 섞어 음양탕을 마신다. 뜨겁지 않은 적당한 온기가 좋다. 이 온기를 목에 넘기며 한 시간 남짓 책도 보고 글도 쓴다. 그리고 씻고 나오면 7시.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감싸고 김치냉장고 서랍칸에서 사과 두 알을 꺼내 놓는다. 향긋하고도 달콤한 사과향이 건조한 코를 자극한다. 얼른 머리를 말리고 나와 사과를 씻어 깎아놓고 어제 썰어놓은 당근도 냉장고에서 꺼낸다. 식탁 위에 손바닥보다 작은 플라스틱 통 2개를 나란히 놓고 사과와 당근을 담는다. 오늘 과일야채도시락이 완성되었다. 하나는 내 것, 다른 하나는 작은 아이 것이다.
나는 출근해서 커피 한잔과 함께 도시락을 먹는다. 가끔은 맑은 국에 간단하게 식사를 하기도 하고 고구마나 달걀을 삶기도 한다. 아이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더니 부쩍 살이 쪘다고 자기도 과일도시락을 싸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매일 2통의 도시락을 싼다. 아이는 급식을 안 먹고 이 도시락과 심으뜸의 꼬박꼬밥 고구마셰이크로 점심을 대신하고 있다. 이렇게 먹은 지 이주일 채 안된 것 같은데 2킬로 정도 빠졌고 한다. 내 몸무게는 고정인데 아이는 아직 어려서 그런지 금방 빠지는 것이 부럽다.
그러더니 퇴근 무렵 톡이 온다.
"엄마, 고추장찌개 먹고 싶어요! 고구마도 넣어주세요."
아가처럼 혀 짧은 소리가 글자에 묻어난다. 이번 주말 HSK 중국어 시험에 다음 주 기말고사까지 줄줄이 시험이라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는지 매콤한 고추장찌개를 부탁한다.
호박이랑 양파랑 있으니 돼지고기와 감자만 사가면 된다. 볼일이 있어 다른 길로 돌아가서 자주 들르는 단골 마트 대신 다른 마트에 들르게 되었다. 이 마트에서는 무항생제 돼지고기만 팔고 있었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다른 마트보다 1-2천 원 비싼 것 같다. 우리 아이는 항생제 알레르기가 있어서 혹시나 해서 코로나 백신도 안 맞추었다. '요즘 가축들은 항생제를 맞고 자란다는데...' 그동안 항생제 맞은 고기를 먹고 있었구나 싶었다. 물가가 올라 더 싼 것들을 고르다가도 어떨 때는 이렇게 싼 걸 먹어도 되나 고민을 하기도 한다. 조금 덜 먹고 건강한 먹거리를 상에 올리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돼지고기를 고르고 감자도 2알을 골라 담았다. 그리고 요즘 빠져있는 당근도 튼실한 놈으로 2개 담았다. 당근 2개를 셀프 저울로 달아보니 5000원이 넘는다. '와, 물가 장난 아니다!' 그래도 포기 안 하고 담아왔다. 당근이 눈에 좋다 해서 당근홀릭 중이기에. 호호 할머니돼서도 책을 읽으려고 애쓰고 있다. 고추장찌개에도 당근을 넣어볼 거다.
고추장찌개 재료
돼지고기, 감자, 양파, 호박, 파, 다진 마늘, 당근, 고구마(당근, 고구마 생략가능)
양념: 고추장, 간장, 후추, 새우젓(생략가능)
고추장찌개에서 빠지면 안 되는 것이 단연코 감자라고 생각한다. 포슬한 감자가 입안에서 부드럽게 물러지는 식감을 좋아한다. 나에게 메인인 감자와 당근을 비닐에서 꺼내어 감자칼로 껍질을 싹싹 벗겨낸다. 흙이 묻어 거무튀튀한 것들이 껍질을 벗겨내고 물로 씻어내니 그 색이 곱다. 감자의 아이보리색, 당근의 짙은 주황색. 베란다에서 양파도 하나 골라와 다듬는다. 양파의 겹겹이 하얀 속살. 참, 고구마도 넣어달라고 했지. 마침 생각이 났다. 지난번 쪄먹고 남은 고구마 1개도 손질한다. 호박고구마의 연주황까지. 색색의 야채들을 쟁반에 올려놓는다. 야채손질 완료!
냉장고에서 호박과 다진 마늘, 파도 꺼내 놓는다. 하이라이트를 켜고 냄비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돼지고기를 넣고 손질한 야채들(감자, 당근, 양파, 고구마)을 모두 넣고 볶는다. 마늘도 한 스푼 넣고 후추도 좀 뿌리주고, 카레 하듯이 볶아준다. 고기가 볶아지면서 맛있는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 순간은 고기가 메인이 된다.
어느 정도 볶아지면 물을 자작하게 넣고 끓인다. 물이 끓으면 고추장을 한 숟가락 크게 떠서 넣는다. 어머님이 직접 담가주신 고추장은 매콤해서 너무 많이 넣으면 매워서 혼이 날 수 있다. 그래서 우선 한 숟가락 넣고 간을 보고 더 넣어야 한다. 그다음 간장으로 간을 한다. 어머님이 새우젓 주신게 생각나서 새우젓도 조금 넣었다.
감자랑 고기가 익었는지 확인하고 하이라이트 불을 약불로 줄이고 가족을 기다린다. 밥 차릴 때 고추장찌개에 호박과 파을 넣고 보글보글 끓여내면 된다. 이래야 물컹한 호박이 아니라 살캉하게 씹히는 호박이 맛나다. 가족들이 돌아오면 계란찜을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냉동고등어도 재빨리 서너 조각 구워낸다. 고추장찌개를 뚝배기냄비에 덜어 식탁에 올린다. "맛있게 먹겠습니다." 아이의 명랑한 목소리에 이어 남편의 무뚝뚝함을 대변해 숟가락이 대신 맛있다고 말해준다.
매일 먹는 밥이지만 식탁 위에는 매일 다른 서사가 펼쳐진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있었던 이야기보따리가 풀어지고 하루종일 졸라맸던 의식의 허리띠도 사르르 풀어지는 시간이다. 고추장찌개의 매콤함에 얼얼했던 추위는 물러가고 소주 한잔 생각나는 밤이다. 소주도 좋을 것이고 맥주도 좋을 것이다. 분위기는 더 좋고! 매일 밥 먹는 시간이 제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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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쿠!"
정말로 지난주 첫글이 연재 되었어요.
오늘 2번째 연재글 올립니다.
매주 금요일 발행되는 <오늘을 다독이는 집밥 테라피 2편>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