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주 가는 마트는 매주 수요일마다 할인 문자를 보내준다. 유독 '등뼈 할인'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매일 퇴근하기 전 '오늘은 뭘 먹지?' 생각하며 메뉴를 고심하게 된다. 오늘은 감자탕 당첨이다. 먼저 가족톡방에 날씨도 쌀쌀한데 저녁으로 감자탕 어떤지 톡을 남기니 모두들 오케이란다. 퇴근길 마트에 들러 빠른 걸음으로 장보기를 시작한다. 셀프로 등뼈를 골라 담아야 하기에 비닐장갑을 끼고 고기가 많이 붙은 등뼈를 골라 비닐에 담는다. 3 식구가 두 끼는 먹을 것을 어림해 봉지 가득 등뼈와 주먹만 한 감자 3알, 그리고 배추 한 포기와 대파 한 단을 사 왔다.
집에 오자마자 우선 물에 담가 핏기를 뺀다. 그동안 감자랑 파도 다듬고 배추도 다듬는다. 시간이 별로 없어 1시간 정도 핏물을 빼고 헹궈내 큰 냄비에 뼈를 담고 끓여낸다. 소주를 한 바퀴 정도 돌려 뿌려주고 통후추도 열 알 정도 넣는다. 파도 두대, 양파는 한 개를 반으로 갈라 넣는다. 냄비가 끓을 동안 핸드폰으로 라디오를 켠다.
배캠을 틀으니 재즈 음악이 한창이다. 제법 어두워진 집안에 불을 밝히고 음악을 듣는다. 나는 이 시간을 참 좋아한다. 어둠이 켜지는 시간 말이다. 아직 완전히 어두워지지도 않은 시간, 슬며시 어둠이 발하는 시간말이다. 어둑해지는 집에 불을 밝히고 식구들을 위해 주방에서 보글보글 음식을 하고 있는 이 시간도 좋다. 오직 음악과 음식에 집중하게 된다. 어떨 때는 레시피를 보기 위해 라디오 대신 유튜브를 틀어 놓기도 하지만 보통은 이런 방식으로 저녁시간을 보낸다. 라디오에서 아는 음악이 흘러나오면 아무도 없기에 흥얼흥얼 음악을 따라 하기도 아니면 혼자 콘서트장에 온 듯 가볍게 몸을 흔들기도 한다.
냄비가 끓어오르면 한 10분 정도 더 끓이다 물을 따라버린다. 그리고 찬물에 뼈를 헹궈내고 냄비에 다시 담는다. 같이 넣었던 파와 양파도 흐르는 물에 씻어 같이 넣는다.(버리기 아까워하는 이 성품이란!) 냄비를 다시 불에 올리고 불을 켠다. 냄비가 또 한소끔 끓으면 고추장도 좀 풀고 고춧가루와 간장을 넣어 간을 맞춘다. 그리고 손질해 놓은 감자와 배추 대여섯장을 넣고 마늘도 한 스푼 크게 떠서 넣는다. 제법 쌀쌀해진 날씨에 주방의 따뜻한 열기가 집안을 데운다. 보글보글 감자탕이 끓기 시작하니 마음도 훈훈해진다.
잠시 뒤 학원에 다녀온 아이가 손에 붕어빵 봉지를 들고 들어온다. 붕어빵이 먹고 싶어 이 추운 날씨에 붕어빵가게까지 걸어갔다 사 온 거란다. 붕어빵은 따뜻할 때 먹어야 제맛이기에 팥을 좋아하는 나는 팥붕어를, 아이는 슈크림붕어를 사이좋게 나눠먹는다.
아이에게 얼른 손 씻고 오라고 이르고 저녁상을 차린다. 감자탕에 마지막으로 썰어놓은 파를 올려 끓인다. 남편은 큼지막한 등뼈와 튼실한 감자를 골라 담아주고, 아이는 감자를 별로 안 좋아해 등뼈와 배추 우거지만 담아준다. 나는 감자 큰 알을 골라 메인으로 담고 배추 우거지와 등뼈를 담아낸다. 그리고 갓 지어 김이 솔솔 나는 하얀 쌀밥에 지난주 시댁에서 김장하고 얻어온 겉절이를 곁들여 낸다. 뜨근한 국물이 요즘 다이어트로 허해진 속을 달래준다. 맛있다고 한 그릇 뚝딱하는 가족을 보니 오늘도 집밥에 공들인 시간과 노력이 아깝지 않다. 오히려 더 소중해진다. 자식새끼 입에 밥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는 옛 할머니들의 말씀이 이해된다. 온전히 내 가정을 이루고 살아온 20여 년, 어둠이 완전히 켜진 밤, 아직 외롭지 않은 이유는 밥을 함께 먹는 식구들이 있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