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의 겨울은 생각보다 춥지 않다. 설악산이 찬기운을 막아주는지 한겨울에 포근한 날도 많다. 그래도 코가 시리게 추운 겨울날이 오면 오독오독 알 씹는 재미에 반하는 도루묵찌개가 생각난다.
울 아버지 직업은 목수셨다. 뚝딱뚝딱 무엇이든 잘 만드셨다. 아버지가 만드신 평상에서 여름이면 삼겹살을 구워 먹고 밤이 되면 모기장을 쳐놓고 동생들과 잠을 자기도 했다. 목수일은 짓던 건물이 완공되고 다음 일을 잡지 못하면 쉬어야 했다. 아버지는 일이 없어 쉬어야 할 때는 동네 선장님 배도 타셨다. 깜깜한 새벽에 나가 모진 풍랑을 맞으며 물고기를 잡고 한나절이 지나 들어오실 때는 빨간 양동이에 물고기를 가득 넣어오셨다. 아이들 주라며 선장님이 항상 생선을 챙겨주셨다고, 말수 적은 아버지는 선장님을 만나면 항상 깍듯하게 인사해야 한다고 이르셨던 기억이 난다. 그 양동이에 어떨 때는 오징어가, 어떨 때는 어린 대구가, 그리고 간혹 홍게도 들어 있었다. 그리고 이맘때는 앵미리와 도루묵이 들어있기도 했다. 엄마의 그날 저녁은 아빠의 양동이에 따라 결정되었다. 어릴 적 엄마는 물을 자박하게 넣어 고춧가루를 넣고 도루묵찌개를 끓였다. 하지만 결혼하고는 시어머님의 도루묵찌개는 물 대신 간장을 많이 넣고 조리는 조림형태였다. 처음엔 적응이 안 되었지만 결혼 20년이 넘으니 이젠 시어머님의 도루묵찌개가 더 익숙해졌다.
어찌 되돌아보면 내가 고기만두를 안 좋아하고 김치만두만 먹는 것은 고기만두를 먹어본 기억이 없어서이다. 겨울방학이면 밀가루 반죽해서 김치를 송송 썰어 만두를 빚었다. 그래서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만두는 김치만두만 있는 줄 알았다. 도루묵찌개도 우리 집보다 그래도 넉넉했던 시댁에서는 조려먹었고 넉넉하지 못한 우리 집은 국물도 떠먹을 수 있도록 찌개를 끓였던 것이 아닐까.
여하튼 도루묵은 찌개를 끓여도 되고 가루를 묻혀 구워 먹어도 맛나다. 특히 제일 좋아하는 것은 알도루묵을 숯불에 구워 먹는 것이다. 결혼하고 남편 회사에서는 매년 12월이 되면 회사 김장을 했다. 김장하는 날 직원의 와이프들이 대거 동원되어 김장을 하였다. 고랭지배추를 밭떼기로 사서 젊은 남직원들이 뽑아오면 회사 마당에 절구어 놓고 다음날 씻어 버무렸다. 이렇게 만들어진 김장은 직원식당에서 남편과 직원들이 일 년 내내 먹게 된다. 회사의 일 년 행사 중의 가장 큰 행사에 속하는 지라 그날은 모두들 잔치 분위기였다.
가마솥을 걸어 뜨끈한 설렁탕도 한솥 올리고 사내식당에선 수육도 삶아졌다. 마당 한켠에선 숯불을 피워 알도루묵을 석쇠망에 올려 구웠다. 김치 속을 넣고 있으면 그 알도루묵 익는 냄새가 조용히 코끝에 와닿으면 어찌나 식욕이 동하는지. 일손이 많아서 김장은 빨리 끝나는 편이었다. 모두들 얼른 일 끝내고 추운 겨울이지만 마당에 둘러서서 맥주잔을 주고받으며 알도루묵을 발라먹던 그때가 떠오른다.
도루묵찌개 재료
재료: 도루묵 10마리, 무, 양파, 파
양념: 간장, 고춧가루, 매실액, 다진 마늘, 소주(또는 청주)
며칠 전 시누이가 친구가 줬다고 도루묵을 보내줬다. 머리와 꼬리를 자르고 내장도 다 손질되어 먹기 좋기 좋게 우리 집으로 왔다. 겨울이면 낚시 좋아하는 지인들이 이렇게 도루묵을 잡아 나눔 해주기도 한다. 어느 해 어느 집은 남편과 아이가 잡아온 도루묵이 욕실 욕조 한가득 도루묵 판이라고 어서 와서 퍼가라고 했던 기억도 난다.
우선 한번 손질된 도루묵을 물에 씻고 살짝 소금을 쳐놓는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무를 꺼내 굵게 토막 내고 양파도 한 개 채 썰고 파도 한대 듬성듬성 썰어 준비해 놓는다. 넓적한 냄비 바닥에 무를 깔고 위에 도루묵을 올린다. 물을 조금 넣고 비린맛 제거를 위해 소주도 살짝 둘러준다. 소주를 넣는 것은 시어머님께 배웠는데 어머님은 생선요리에는 항상 소주를 넣으신다. 냄비가 끓기 시작하면 간장을 넉넉하게 부어주고 마늘도 수북이 한 스푼 떠서 넣어준다. 매실액과 고춧가루도 넣는다. 양파와 파를 도루묵 위에 펴서 올려주고 고추가 있으면 넣고 없으면 안 넣어도 된다. 그리고 도루묵알이 익을 정도로 약한 불로 조려주다 간장맛이 달달하게 올라오면 불을 끈다.
부들부들 여린 도루묵 살을 발라먹는 맛은 정말 말이 필요 없다. 거기에 도루묵알을 호로록 입안으로 넣는 순간은 경이롭다. 고기가 결코 이길 수 없는 식감이다. 물컹하게 익은 겨울무는 달짝한 맛을 머금어 밥과 함께 먹으면 별미 중 별미이고 흰밥에 간장양념을 한 숟가락 넣고 비벼 먹으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 곧 방학하고 온다는 아들도 먹고 싶은 음식이 이 알도루묵찌개라고 하는데 주말 어시장 가서 도루묵 실한 놈으로 한 두름 사 와야겠다. (그런데 도루묵값이 올라 장난이 아닐지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