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S24에서 주문한 책이 도착했다. 초록과 빨강의 표지가 인상적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이다. 책을 펼치자 주인공은 함부르크 공항에 착륙 중인 비행기에 앉아 있다. 그는 기내에 잔잔하게 깔리는 음악을 듣고 있다. 그 음악은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
책 읽기를 잠시 멈추고 유튜브에서 비틀즈의 노래를 검색했다. 비틀즈 노래를 좋아하지만 노르웨이의 숲은 생소한 노래였다. 나처럼 하루키의 책을 읽고 영상을 찾아 들어온 사람들이 많았다. 노르웨이의 숲을 연거푸 세 번 들은 것 같다. 오랜만에 듣는 비틀즈 음색이 너무 감미로웠다. 한곡으로 끝내기 아쉬워 다음으로 Let it be를 듣고, Yellow submarine을 듣고, Hey jude를, 그리고 Here comes the sun을 차례로 들었다. 큰 아이의 게임용 헤드폰을 끼고 노래에 빠져있자니 눈에 띄는 댓글이 있었다. The best pain in the world is Nostagia.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은 향수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바로 작년까지만 해도) 내 삶은 의욕이 넘치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TO DO LIST 작성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매년 새해가 되면 이루고 싶은 것들을 빼곡히 작성했었다. 하지만 올해는 작성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렇게 올초부터 시작된 것 같다. 일상이 밍밍한 과일처럼, 싱거운 수프처럼 느껴진 것이. 직장생활도 10년이 넘으니 새로울 것이 없다. 매일 쳇바퀴처럼 일정하게 돌아가는 삶.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엄마로, 직장인으로, 아내로 살아온 나의 지난날이 결코 행복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막상 결승점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텅 빈 느낌이다.
7월 말부터 뜨거운 열대야의 밤을 선사하던 여름은 기나긴 터널을 지나는 것처럼 남아있던 기운도 다 앗아갔다. 20대부터 시작해 40대까지 내 삶의 총량 에너지를 다 쏟아부은 듯 지금 나에게 남아있는 배터리는 고작 10% 정도로 간당간당하다. 여기서 더 버티면 바로 방전되어 버릴 것 같은. 다시 젊어질 수 없고 이제는 나이 듦만 남았다는 생각, 지금 할 수 없는 것은 나중에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뭔가 시작하고자 하지만 섣불리 시작할 수 없는 마음을 어쩌랴.
그래서 연재를 시작했다. 설레면 안 되나요? 매일 일상이 그저 그렇고 설렐 일없는 50대 중년이지만 다시 나를 두근거리게 하는 것들을 찾아보고자 한다. 오늘 나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은 비틀즈 음악이었다. 예전에 좋아하던 음악을 들으면 살짝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 음악을 좋아했지만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향수와 그리움을 더욱 짙게 한다. 오랜 세월 남아서 남아있는 이들을 달래주는 음악이 있다는 것은 굉장한 위로가 된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도 살짝 고비를 넘겼다. 시끄럽게 울어대던 매미 소리도 잦아들었다. 어디선가 기지개를 켜고 가을은 저만치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선선해진 밤바람에 음악이 더해지니 좀 살 것 같다. 내 인생 이렇게 잔잔한 설렘으로 이어가 보자 생각한다.
(881) Norwegian Wood (This Bird Has Flown) (Remastered 2009) -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