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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너피슈 Sep 24. 2021

가끔보다 종종, 나의 작은 숲을 찾아서

오래 볼 수록, 함께한 시간이 길 수록 아름다운 장면들


감탄


노르웨이의 빙하, 파리의 에펠탑, 하와이의 에메랄드 빛 바다와 같이 처음 마주할 때, 와! 하고 감탄을 내지르는 광경이 있는가 하면, 오래 볼 수록, 또 함께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깊은 감탄이 나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그 장면이 창문 밖의 함께 자라온 나무이고, 동쪽 해가 떠오를 때 동화같이 펼쳐지는 아파트 단지의 사잇길의 작은 숲입니다.


좌) 창문 밖의 나무, 우) 아파트 단지의 사잇길


바로 옆에 감탄이 나올 만큼의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일까요. 아니 평생 이 축복을 누리고 살 수는 없을까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아파트 단지는 약 5년 후 재건축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쭉 같은 동네, 아파트, 방에서 살고 있어요. 열 몇살쯤 되었을 때 아파트 주차장을 확장하기 위해 등나무 벤치를 없앴을 때는 놀다가 쓸려나간 한쪽 무릎보다 아프기도 했지요. 대학생이 되고 처음으로 아파트의 재건축 소식을 들었습니다. 가슴이 아려오고 저도 모르게 '향수(鄕愁)'라는 감정이 올라오더군요. 처음엔 이십 대 초반에 걸맞지 않은 감정으로 느껴져 외면하기도 했지만, 향수에 관한 시와 소설을 읽으며 '나의 감정이 제대로 향수가 맞구나' 깨닫고는, 그때가 오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눈과 마음으로 담아둬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재건축을 하면 아파트는 물론이고, 함께 자란 나무들까지도 모조리 이별해야 할 테니까요. 





창문 밖의 나무


저에게 창 밖의 나무는 친구이고, 의지의 대상이고, 쉼터예요. 나무는 항상 그 자리에 있지요. 그냥 있을 뿐 아니라, 사계절에 맞춰 옷을 갈아입는데요, 이것이 나무를 의지하는 이유입니다. 나무는 초록이 가득하고 울창한 여름이 지나면 쬐는 햇빛에 점점 수분기가 없어져 마르고 구부러지는 나뭇잎이 되지요. 겨울이 되면 그마저도 땅에 떨어져 버리고 불쌍해 보이는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게 됩니다. 앙상한 모습으로 몇 달을 버티면 이윽고 따듯한 바람이 불고 새순이 돋아나요. 



나무가 건넨 말

한 어른은 어려서부터

방 앞의 나무를 보며 수없이 많은 감정을 쏟아냈다.

어릴 적 장난꾸러기의 웃음소리,

사춘기 소녀의 절망과 분풀이,

삶이 불안하다고 느낄 때의 눈빛,

마음속 깊은 속에서 우러나온 감사,

늦은 밤 힘없이 들어와 자는 숨결,

한숨 속에 숨겨진

삶에 대한 의지와 같은 것들이었다.


방 앞의 나무, 그러니까

어른의 삶을 지켜본 이가 오랜만에 말을 건다.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릴지라도,

계절이 지나 앙상하게 될지언정,

태풍이 불어 나뭇가지가 꺾일지라도

그래도 계속 살아질 것이라고, 

이 땅에 있는 한 멈추지 않고 자랄 것이니


지금은 감정을 받아주라고 했다.

그러면 그것은 또 하나의 삶의 조각이 되어 

과거가 될 것이고 추억이 될 것이라고.




나의 삶이 겨울인 것 같고, 앙상해 보이고, 마음에 찬바람만 불 때, 우직한 나무를 보며 다시 한번 힘을 내곤 합니다. 방에서 고개를 돌리면 늘 그 자리에 있는 나무가 보입니다. 몇 주 전보다 짙은 청록색이 되었지만 생생해 보이지는 않아요. 곧 마르고 하나둘씩 이파리가 떨어지기 시작하겠죠. 저도 이번 해의 나뭇잎을 보내 줄 준비를 해야겠어요. 그래야 겨울을 날 단련도 할 테이니까요.





나의 작은 숲


나무가 우거진 아파트 사잇길로 들어서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됩니다. 비록 나의 소유는 아니더라도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는 온전히 나의 것, 나의 공간이 됩니다. '나의 작은 숲'에서 잡초와 토끼풀을 밟으며 한걸음, 한걸음 내딛으며 하늘로 고개를 들면 높게 치솟은 나무줄기와 그 사이로 뚫고 들어오는 햇살 조각들이 보입니다. 


'나의 작은 숲'


길쭉하고 자유롭게 뻗은 나무줄기가 황홀하게 느껴집니다. 어떨 때는 하늘을 나는 새보다 자유롭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 어떤 인공물도 이처럼 안정감을 주고 매력적인 선을 만들 수는 없겠죠. 잡초와 토끼풀을 스치며 아파트를 따라 100m가량의 사잇길을 걸어 다시 큰길로 나오면 어느새 복잡했던 머릿속이 깨끗해져 있습니다. 한번 이 기쁨을 맛본 후로는 종종 이곳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 공간에서는 여기만의 작은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것이 또 한 가지의 묘미입니다. 이 이야기의 출처는 모두 이곳의 생명체들입니다.


봄이 오면 정원사들이 나무와 풀을 정돈합니다. 


낮은 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작당 회의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나무 뒤에 숨어서 그들의 회의를 엿들어 보았습니다. 


지날 때 마다 발걸음이 빨라지는 곳입니다. 뿌리가 단단히 자리잡혀 있어야 할 텐데요.


누가 만든 페트병 바람개비일까요. 어째서인지 의자가 나무 그루터기에 기대어 놓여 있습니다.


특히 유난히 정신적 고통을 받은 날의 퇴근길에는 발길이 저절로 이곳에 닿습니다. 울퉁불퉁 올라와있는 나무의 뿌리에 서서 한참을 고개를 들고 하늘 위로 끝없이 펼쳐지는 것 같은 줄기와 잎을 바라보며 몇 분 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면, 어느새 마음에는 감사와 평안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따끈한 된장찌개와 같은 저녁식사를 떠올리며 집으로 들어가곤 하죠.





당신에게도 작은 숲이 있을까요. 아니면, 매일 보아도 감탄을 내지를 만한 공간이 있을까요. 먼 곳에 가서 새로운 광경을 접해야만 눈과 마음이 감탄할 수 있다면 현실을 살아가는 날들이 얼마나 잿빛일까요. 다행히도, 저에게는 이 세상을 살아갈 힘을 주는 동네의 나무작은 숲이 있었습니다. 방 안에 놓인 책은 만지거나 이동시키지 않으면 가만히 있을 테지만, 나무와 숲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라고 변하기 마련입니다. 매일 똑같은 나무를 보더라도 그 나무는 어제와 다른 모습을 하고 있겠죠.


당신에게도 친구가 되어주는 나무나 쉼을 제공해주는 작은 숲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자연은 사람이 이 땅에서 감사와 평안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매개체입니다. 가끔보다 종종, 마음의 쉼을 찾아 당신의 작은 숲을 방문한다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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