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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ntress Nov 21. 2020

나한테 왜 그랬어요

상점이나 공공장소에서 불친절한 상대를 만나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곱지 않은 말투나 표정을 거부권 없이 받게 된 것이 불쾌하기도 하지만 생각에 생각이 연결된다. ‘오늘 기분이 별론가.’ ‘원래 성격이 저래?’ ‘어떻게 여기서 계속 일하고 있지?’ 그런데 이보다 더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 건 ‘나 무시하나’와 같은 생각인데 이런 경우는 보통 해외에서 더 많이 생기는 것 같다. 

 도쿄에서 유명한 토스트 전문점에 갔다. 긴자에 있는 곳인데, 직접 만든 식빵과 식빵으로 만든 토스트를 판매한다. 나름대로 부지런히 움직여서 아침 10시 30분쯤 도착했음에도 이미 줄이 가게의 주위를 한 바퀴나 두르고 있었다. 하필이면 비가 와서 불편함이 더 가중됐는데, 줄이 쉽게 줄어들지 않았다. 한 시간이 조금 못되게 기다렸더니 이제 내 앞에는 서너 명 정도가 남아 있었다. 와중에 빗줄기가 점점 거세져서 가게 정문에 달린 차양에 잠깐 몸을 숨겼다. 그때 웨이팅 리스트를 체크하는 직원이 나오더니 눈썹을 찡긋거린 채로 손가락질을 했다. 삿대질과 함께 빠르게 말을 했는데 정확히 알아듣지 못했다. 뉘앙스로 판단하건대 “바깥으로 다시 나가서 똑바로 대기하세요”라는 의미 정도로 짐작되었다. 표정과 삿대질이 지나치게 강렬했지만 ‘일본인이 질서정연하게 줄을 서긴 하지’라고 넘겼다. 잠시 뒤, 나는 뒤편에 서 있는 서양인에게 웃으며 영어로 이야길 하는 점원을 보고 나는 적대심을 키울 수밖에 없었다. 

 불편한 상황은 주문하는 짧은 순간에도 생겼다. 내가 고른 토스트 메뉴에는 토스트에 아이스티 한 잔이 함께 나온다. 아이스티보다는 커피가 마시고 싶어 메뉴에 커피를 추가해달라고 했는데 점원이 한숨을 쉬었다. 

 “세트에 음료 변경은 안 돼요.”

“아, 전 변경해달라고 한 게 아니에요. 그냥 커피를 추가해주세요.”

“그럼 아이스티는 안 갖다 드려도 되는 거죠?”

특별히 상관없지만, 아이스티도 갖다 달라고 했다. 


 베를린에서는 테겔 공항에 도착하면서 비슷한 생각을 했다. 혼자 처음 가보는 곳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얼어붙어 있던 나는 공항에 내리고 나니 이상하게 기백이 넘쳤는데 이 패기는 10분도 채 가질 못했다. 수화물 트레일러가 몇십 바퀴를 도는 가운데 같은 비행기를 탔던 사람들이 점점 사라질 때까지 내 캐리어가 나오지 않았다. 

“짐이 나오지 않았는데 혹시 어디서 찾아야 하나요?”

일단 어디서 짐을 찾을 수 있는지 공항 직원에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C 터미널에 있는 수화물 픽업 서비스 센터에 가보세요.”

이마저도 꽤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고 얻은 정보다. 공항 직원 몇몇은 금방이라도 하품을 할 것 같은 표정으로 “여기 인포메이션 아니에요”라고 하며 알려주질 않았다. 

 서비스 센터에 가니 금방이라도 울 것 같거나 있는 대로 화가 치밀어서 얼굴이 벌게진 사람들이 여럿이었다.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사람들 무리 사이로 접수처의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서 있었다. 재빨리 뒤에 서서 순서를 기다리다가 수화물 스티커를 내면서 접수를 했다. 

“한 시간 뒤에 짐이 나올 테니 기다리세요.” 무덤덤한 직원의 말에 나는 오히려 안도했다. 불안한 상태로 짐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채로 대기하는 것보다는 나았으니까. 그런데 1시간 반이 지난 데다가 나보다 늦게 접수한 사람들의 짐이 먼저 나오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건지 확인하려고 직원에게 물었다. 

“기다리세요. XXX는 외항사라 저희 소관이 아니에요.”

“그럼 누구한테 물어봐야 하나요?”

“저희가 대신 해주는 일이니까 기다리시라고요.”

더이상 보채지 말라는 어투로 쏘아붙이는 직원의 답변을 듣고 나는 4시간을 더 기다렸다. 

그러다 갑자기 직원이 내게 다가오길래 일말의 기대를 하다가 나는 다시 울분에 빠지고 말았다. 

“아, 어떡하죠? 짐을 못 찾겠네요. 하하.”

“…… 그럼 어디서 체크가 가능하죠?” 

어디까지나 분노는 가방을 찾고 표출하는 것이 먼저 같아서 간신히 화룰 누른 채 물었다. 


 그들은 A 터미널에 있는 외항사 카운터에 한번 가보라고 했는데, 어투가 꼭 ‘버스가 막히니까 지하철 어때?’ 같았다. 외항사 카운터에서 비행기 코드와 수화물 번호를 말했더니, 직원 중 한 사람이  “브라운 컬러에, 소프트 케이스 맞아요?”라고 했다. 너무 반가워서 고개를 위아래로 서너 번 휘저었더니 그녀는 내가 가져온 수화물 스티커에 수화물이 있는 장소에 대한 코드를 적었다. 

 ‘잠깐. 이렇게 간단한 거였어?’ 당황스러운 나머지 이게 어찌 된 일인지 그녀에게 물었다. 

“짐이 나오다가 다시 다른 곳으로 달려 들어갔네요. 서비스 센터가 못 찾고 있는 것 같은데 이 코드를 전해주세요. 그래도 모르겠다고 하면 제 이름을 대고 전화하라고 하세요. 제 이름은 크리스티나예요.”

 크리스티나는 내가 그날, 테겔 공항에서 만난 직원중 유일하게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녀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C 터미널로 달려갔다. 가시지 않은 화를 꼭꼭 모아둔 채로 그들에게 수화물 스티커를 내보였다. 사실 나는 이 코드를 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 무안함을 안겨줄 거라 장담했다. 

 ‘이렇게 간단했는데, 너희가 찾지 못하고, 사전에 카운터에 문의하는 방법도 생각해내지 못해서 이 고생을 한 거야’하는 마음이었는데, 정작 그들은 ‘아, 이게 있었구나’하는 표정으로 캐리어를 찾으러 갔다. 

“Miss Kim!”

드디어 캐리어와 만난 나는 손잡이를 꼭 쥔 채로 이제는 쏟아부을 차례가 왔다고 생각했다. 

“Miss가 아니라 MS요. 이렇게 빨리 찾아줘서 너무 고마워요. 한국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저도 너무 놀랐네요. 하하.” 최대한 간결하게 돌려서 화를 표현했는데, 그들이 무안해하지 않고 “Thank you.”라고 해서 더 화가 치밀었다. 그리고 모든 기운을 소진한 내가 할 수 있었던 마무리는 서둘러 택시를 타고 숙소에 가는 것뿐이었다. 

 다만 운이 안좋았을 뿐일까. 아무튼 나는 한국에 와서 일본어로 “맛이 없네요.”와 “서비스가 별로였습니다.”를 외워두었고, 앞으로 갈지도 모르는 해외 공항에 관한 포스팅을 종종 읽는다.  



그 공항 직원 말인데요. 제가 동양인이라서 그랬을까요, 아니면 정말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랬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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