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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ntress Nov 15. 2020

혼자 왔다가 셋이 되어버립니다

 대체로 비행하는 시간을 수월하게 보낸다. 특별히 멀미를 한다거나 이륙할 때마다 눈을 질끈 감아버리는 불안정한 상태가 된다거나 하진 않는다. 귀가 먹먹해지거나 가볍게 허리가 뻐근해질 뿐인데 이 역시 남들이 느끼는 그만큼이다. 한가지 불편함이 있다면 잠을 못 잔다는 것인데 해외로 출국하는 경우라면 더욱이 그렇다. 장거리 비행의 이코노미 클래스 좌석은 대개 ‘3-3-3’형태다. 별탈 없이 사이 잠을 자면서 비행을 하려면 무엇보다 옆좌석에 앉는 사람의 성향이 중요하다. 기내에 있다 보면 세상에는 예상외로 자신의 기분을 알리려고 한다거나 상대방을 추호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한다면 불면의 시간은 더욱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재작년 가을, 엄마와 이탈리아 여행을 갔다. 비행기의 여지 없는 ‘3-3-3’좌석에서 나는 가운데 자리에, 엄마는 내 오른편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내 왼편에는 커다란 코르사주가 달린 파나마 해트를 쓴 아주머니가 와서 앉았다. 그녀는 온통 플라워 프린트로 뒤덮인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는데, 머리부터 이어지는 꽃의 향연은 동공을 이리저리 방황하게 했다. 그리고는 비행기에 타기 전부터 씹고 있던 껌으로 힘껏 소리를 내고 있었는데 이것이 그녀 나름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예고편이었다. 

 그날 기내식에는 비닐에 포장된 모닝빵이 하나 나왔는데, 씹으면 ‘푸’하고 밀가루가 나올 것처럼 퍼석거렸다. 패키지를 뜯기 전에 내 쪽을 확인한 엄마가 빵을 그대로 뒀는데 옆자리 아주머니가 이를 보고 말을 걸어왔다. 

 “어머, 그거 왜 안 드세요?” “좀 퍽퍽해서… 드릴까요?”라고 엄마가 답하자 그녀는 바로 이 타이밍을 기다려왔다는 듯 끊임없이 말을 시켰다. 

  “딸이랑 같이 여행이라니 너무 부럽네요.”, “전 이태리는 처음인데 몇 번째세요?”, “그거 왜 남기셨어요?”.

나는 지하철 가운데 자리에서 의도치 않게 커플을 갈라놓은 방해꾼 승객처럼 둘의 대화 사이에 있었다. 그들의 대화가 오고 감에 불편함이 없도록 최대한 허리를 좌석 편으로 밀착시키느라 의도치 않게 긴장도 하고 있었다. 두 번째 기내식이 나오는 시점부터는 그녀의 본격적인 원맨 토크쇼가 펼쳐졌다. 사실 그때부터는 지나치게 친절한 정보만을 주었기 때문에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런던에 가는 비행기를 탔을 때는 통로 쪽 좌석에 앉았다. 함께 여행하기로 한 친구와는 현지에 도착하면 만나기로 해서 혼자 비행기에 탔다. 창가 쪽 좌석에는 무리 없이 숙면이 가능한 외국인 남자가, 가운데 좌석에는 일행과 의도치 않게 떨어진 10대 소녀가 앉았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나자, 그녀의 언니는 수시로 동생의 자리를 드나들었다. 굳이 나서는 건 아닐까 2번 정도 고민하다가 언니에게 좌석을 바꿔줄지 물었는데 “저는 남자친구랑 앉아 있어서요”라면서 목이 꺾인 채로 웃었다. 그녀의 언니가 수시로 오는 목적은 극도로 지나친 잔소리를 위해서였는데, “양치를 왜 안 하냐”, “발이 피곤할 테니 신발을 벗어라. 그런데 발이 시릴 수 있으니 양말은 신어라.”, “기내식은 나온 대로 골고루 다 먹어라” 같은 내용이었다. 통로 좌석에 앉은 나를 가로질러 동생에게 말하는 수고스러움이 그녀에게는 별다른 장애물이 아니었다. 그녀는 3시간 동안, 5번을 왔다 갔다 하더니 급기야 나한테까지 말을 걸었다. 

 “혹시 이따가 기내식이 나오면 제 동생이 다 먹었는지 좀 봐주실래요?”

 “…”


 베를린과 인천 사이의 노선은 아직 직행이 없다. 최소 한 번의 경유를 해야 하는데 이번에는 헬싱키에서 경유하게 되었다. 기내 수화물 보관대에 적힌 번호를 확인하면서 걷다가 통로 쪽 남자를 보고는 조금 불안해졌다. 그리고 불안함은 대부분 그렇듯 잘 맞아 떨어졌다. 블랙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에 볼캡을 쓴 남자는 덩치가 컸다. 블루투스 헤드폰을 끼고 있었는데 볼륨이 워낙 커서 포스트 말론의 새로운 싱글을 듣는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는 작은 상자에 몸을 구겨서 들어가고 싶어 하는 고양이같이 굴었다. 자신의 커다란 덩치를 주체하지 못하고 비행 내내 들썩들썩하며 온몸으로 불편함을 표현했다. 기내에서 몸이 찌뿌둥할 때마다 그는 신박한 형태로 몸을 움직거렸다. 테이블을 펼치더니 다리 두 쪽을 몽땅 올려놓는가 하면(나는 당시 이 테이블이 무너질까 봐 겁에 질려있었다.)  앞 좌석 팔걸이에 발을 올리면서 위안을 얻는 듯했다. 그는 수시로 내 팔을 건드렸는데 나는 최대한 서구식 미소를 장착하며 그의 ‘Sorry'에 화답하려 애썼다. 하지만 몇 시간 이상이 넘어가니 나로서도 괜찮다고 하는 게 도무지 무리가 되어 시선을 돌려버렸다.  

 창가 쪽에는 한국인 가이드 여자가 앉았다. 이것이 어떤 우연의 만남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녀의 체구도 만만치 않아, 나는 그들 가운데 사이에서 양쪽 팔걸이 모두를 포기해야 했다. 그나마 여자의 행동반경은 넓지 않았다. 그녀는 비행기에 타자마자 눈을 감더니 음료 서비스와 기내 서비스가 두 차례씩 진행될 때까지도 잠에서 깨지 못했다. 착륙 30분을 남겨두고, 다음날 가이드 일정으로 보이는 다이어리의 페이지를 뒤적거렸는데 어쩐지 짠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양옆의 남녀는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밑에서 가방을 몇 번이나 열었다 닫았다 하는 거야. 근데 이 여자 무슨 영화 보는 거지? 내가 보는 것보다 재밌을 것 같은데, 옆에서 쳐다본다고 되게 눈치 주네. (남자는 내가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보는 동안 자신의 화면 대신 내 쪽의 화면을 쳐다봤다) 근데 이 여자는 왜 미안하다고 해도 웃질 않는 거야’ 이것이 남자의 생각일지도. 

 ‘ZZZ’, ‘ZZZ’ 이것이 여자의 생각일지도. 어쨌든 기내에 타면 무조건 맥주든 와인이든 마시고 나서 자버려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도 숙면은 완벽히 실패로・・・. 




 공항에서 셀프 체크인을 할 때마다 옆자리 승객의 성향 체크를 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이를테면, 각자 ‘나는 타자마자 잔다.’, ‘나는 화장실에 자주 간다.’, '팔걸이는 반드시 사수해야 한다.’ 같은 것들을 체크하고 옆자리에 앉는 사람이 이것을 미리 확인할 수 있도록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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