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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ntress Nov 15. 2020

베를린에 갔습니다


요번 여행을 결정한 것은 올해 봄이 끝나갈 무렵입니다. 당시에 저는 일 년하고도 보름 즈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상태였습니다. 사무실 안에서는 줄곧 자괴감이 들었는데, 모니터 오른쪽 아래의 숫자만 자꾸만 쳐다보는 시간을 더는 가만히 누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지껏 너무 일이 많아서 도무지 감당할 수가 없는 위치가 된 적은 없어서 모르겠습니다만. 프리랜서의 입장이란 이래저래 골치가 아픕니다. 사람(주로 일을 주는)들의 요청에 응대할 때마다 ’이번에 거절하면 영원히 안녕일까?’, ‘내가 지금 이 금액을 부르면 미쳤다고 생각할까?’라는 고민을 자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고민은 주로 결정을 하고 나서도 깊은 후회와 의심을 낳게 마련이니까요. 그런데도 자진해서 이 길을 선택하고 나니 생기는 예기치 않은 시간의 여백이 아주 반가웠습니다.  


주변인들에게 “어째서 베를린이야?”라는 질문을 여러 번 받았습니다. 쉬는 와중에 우연히 TV를 보고 있다가, 한 프로그램에서 소개하는 ‘한 달 살기 좋은 나라’를 보게 되었습니다. 첫 장소는 이탈리아 옆의 한적한 휴양지 몰타였습니다. 두 번째로는 야경이 아름다운 부다페스트, 세 번째는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물가가 저렴한 동남아 어딘가로 기억합니다. 득도한 사람이 아니라면 대개 어떤 상황에서 정반대의 상황을 그려볼 때가 많습니다. 시린 겨울에 따뜻한 휴양지를 떠올리거나 진중한 사람을 만날 때 즉흥적인 사람을 떠올리는 건 드문 일이 아니니까요. 평범한 하루란 아주 어렵게 주어지는 것인데, 저는 이렇게 조용하고 별일 없는 하루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불안했습니다. 그리고 너무 별일이 없다는 건 지루하다는 것과 같은 뜻이기도 하지 않나요. 그래서 여행을 결심했습니다. 

 정해놓은 건 한 달이라는 기간. 일본은 너무 많이 가봤고, 싱가포르나 홍콩에 한 달이나 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럼 우선 가까운 나라는 제외. 그리고 가본 곳도 빼기로 했습니다. 휴양지를 즐기는 편이 아니라 방송에서 추천한 몰타에서 한 달을 보내기엔 막막했고, 부다페스트는 특별한 관심이 가지 않았습니다. 영국이나 프랑스, 이탈리아는 가봤고・・・. 그럼・・・. 이것저것 추리다가 베를린을 떠올렸습니다. 사람마다 미지의 도시로 꼽는 곳이 있는데 제게는 베를린이 그랬습니다. 엄격함과 수수함을 갖추었지만 예술과 문화가 발달한 도시, 유럽 중 물가가 너무 비싸지 않았고 지하철로 다니기도 편한 것으로 알려져 있죠.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국이 올해 연출한 센세이션한 장면도 한몫했습니다.  


 베를린에서 보낸 서른 밤 동안, 저는 극히 편협한 이방인의 눈으로 그 도시를 바라봤습니다. 촉박하게 고른 집의 멋진 호스트 커플, 뜻 모를 우연으로 만난 사람들과 어딘가를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풍경들. 여름 한 철, 그 무렵에는 이 모든 것이 저의 전부였습니다. 당혹스러웠거나 감격했거나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밤이 되면 그날 제가 담았던 것에 대해 즐겁게 글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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