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해외여행 협찬 그것이 목표였다. 경주마처럼 오직 수많은 여행블로거들만 매일 동이 트도록 보고 또 봤다.하지만 문제는 글만 쓴다고 과연 협찬이라는 걸 받을 수 있느냐가 문제였다. 방법은 모르겠지만 일단 블로그에 글이라는 걸 올려야 한다는 거 그거 하나는 알겠다.
그리고 다녀온 여행기록을 하나씩 올리기로 한다. 단 조건은 얼굴이 아주 예쁘거나 날씬하게 혹은 뒷모습 혹은 사람이 없는 장면을 위주로 기록하는 것. 날것 그대로 야생의 내 모습을 보여주다가는 정말 큰일 날 것만 같았다. 개떡 같은 필력으로 하루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여행은 올빼미족인 우리 부부의 생활패턴에 맞춰졌다. 느지막이 일어나 여행을 시작하고 늦게까지 놀다가 잠에 드는 것. 그걸 한 포스팅에 다 썼다.다녀온 나야 보고 또 봐도 즐겁지. 여행정보를 얻으러 오는 방문객에게는 배려라고는 1도 없는 하루 기록이었다.식당이 맛이 있는지 디즈니랜드를 가려면 어찌 가야 하는지. 정보 따위는 하나도 없고. 그저 우리 부부 다니면서 맥주 마신 거. 술 사진은 또 왜 이렇게 많고. 가격 따위도 없어. 가는 방법도 몰라. 블로그에 그야말로 짬뽕탕처럼 다 집어넣은 기록들. 가끔씩 옛날 업로드한 글들을 본다. 그냥 실소가 터진다. 와 내가 방문객이라도 두 번은 안 오겠다 싶더라. 게다가 사진은 또 왜 이렇게 못 찍는 건데. 얼굴만 가득하고 경치는? 여기가 우리 집 안방인지 도쿄 식당인지 알 수도 없는 사진들만 가득하고. 정보란 책에서 따로 챙기세요! 해야 할 만큼 노정보. 노답 블로그.
난 내가 엄청 잘 쓰고 있는 줄 알았다. 그렇게 하면 누가 협찬해주는 줄 알았다. 하지만 네이뇬의 그 세상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호락호락하지 않더라. 나처럼 일기 쓰는 애들이 어디 한둘이겠냔 말이다.
어느 날 늘 보던 그 블로그에 찾아갔다. 아주 가끔씩이지만 블로그로 잘 봤다 댓글도 남겼었고 나 혼자 소통이라는 걸 하고 있었다 생각했다. 그리고 당당하게 남겼다.
"안녕하세요. 저 ##님 블로그 너무 잘 보고 있고 덕분에 여행 갈 때 잘 다녀왔어요.... 그런데 혹시.. 죄송하지만 이런 여행 협찬은 어떻게 받는 건가요?"
그리고 그 여인은 나에게 아주 친절(?) 하게 말했다.
"그런 건 알려드릴 수 없어요. "
지금까지 수많은 글들로 그녀를 친절한 그녀라 생각한 내 착각이었나? 댓글을 쓰면서 그녀와 소통이란 걸 했다고 생각했는데. 완전 뒤통수 제대로 후려 맞은 느낌.서운하고 짜증 나고 맥주 마시면서 신나게 자판치 던 손가락 하나하나한테 미안해졌다. 만나지도 못해본 그녀에 대한 서운함과 묘한 배신감. 친하지도 않은데 물어본 내가 잘못이었겠지만 그래도 열심히 올리다 보면 좋은 일 생길 거예요 라는 희망 메시지라도 남겨줄 수는 없었나?와 씨 물어볼 사람도 없고 물어봤는데 사람 머쓱하게. 내가 지금까지 올려준 조회수가 얼만데.
그리고 협찬에 대한 묘수는 생기지 않았다. 혼자 서운함과 배신감에 남편에게 알지도 못하는 그 여자 호박씨를 아주 A4 용지 10장은 쏟아냈다. 1만 cc가량의 맥주와 함께 말이다.
협찬받는 방법을 모르니 블로그가 재미없어졌다. 하는 방법도 모르겠고 지금처럼 파워블로그 만들어들입니다 하는 약쟁이들도 없던 시절. 아마 그때 그런 게 있었다면 나 역시 그 약쟁이들에게 내 블로그 상태를 진단하고 코칭을 받고 수백수천을 썼을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본업이 매일매일 책을 봐야만 했고 문제를 풀어야 했기에 본업이 바쁘다는 핑계로 블로그와 시간을 갖기로 했다. 물론 뜨문뜨문 관계는 유지하며 말이다.
여행을 다녀오면 신이 나니까 흥분해서 또 블로그를 찾는다. 나 여기여기 갔다 왔어. 자랑도 하고 싶고. 내가 필요할 때만 찾는 곳. 물론 조회수는 많아봐야 두 자릿수.가끔은 쉬는 날 외출한 거. 가끔은 집에서 먹은 음식들. 누구야 보든지 말든지. 마이웨이 독고다이 블로그 세계가 아주 가끔씩 열렸다. 그리고 그날도 역시나 신나게 맥주를 마시고 치킨을 주문했다. 치킨 사진이 찍고 싶네?
찍었다. 서당개 3년이라고 블로그 구경한 짬이 얼만데. 이런 거 배달 음식 막 블로그 올리고 그래야 하거든.
일장 연설 남편에게 가득 쏟아내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날 치킨 후기를 썼다. 그날 협찬 세계를 알게 될 것이라고는 치킨을 뜯는 그 순간에도 사진을 찍고 업로드하는 그 순간에도 아무도 몰랐다. 정말 해외여행 협찬을 받고 초청을 받고 여행길에 오르는 오늘날과 같은 날이 올 줄은.
다음날 일하던 중간이었다. 당시 남편과 나는 사교육 시장에 몸담고 있었다. 그리고 쉬는 시간 갑자기 전화가 온다.
"안녕하세요. **님?
어제 치킨 주문하셨던 ##치킨입니다. 어제 블로그에 저희 치킨 올려주셨죠? "
"네??? 네! 아.. 혹시.. 뭐가... 잘못된 것인가요?? "
아니요~ 너무 감사해서 저희가 치킨을 한 마리 더 보내드리려고 합니다. 오늘 원하시는 시간 알려주시면 집으로 시간 맞춰 배달해드리겠습니다
왓??? 치킨을 주신다고요????
와... 이게 바로 그 협찬의 세계야????? 나 닭 협찬받는 거야????? 이게 실화냐고!!
쉬는 시간에 교무실로 들어온 나의 직장동료이자 사업 동지이자 남편이자 친구이자 술친구이자 여행 메이트인
그가 나타나는 순간 " 오빠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줄아나?"
그날 우리는 또 맥주 1만 cc 와 협찬으로 받은 그 치킨을 찬양하며 센스 넘치는 치킨집 사장님의 무한 존경과 앞으로 치킨은 무조건 이 집만 사 먹겠고 이 집 치킨만 추천하겠다는 일념으로 첫 협찬의 맛을 보았다.
그래 이거다. 하나씩 하나씩 각자 다른 제품들 각자 다른 여행지들을 올리다 보면 치킨집 사장님과 같은 센스 넘치는 사장님이 나에게 연락 올지 모른다는 확신과 신뢰가 생겼다. 그저 다음은 여행사 사장님이 날 알아보고 연락을 주면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협찬의 시작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협찬의 세계는 짜릿했다. 첫 해외여행을 가던 날처럼 블로그 세상이 다시 궁금해졌고 사랑이 넘쳤다. 기대되고 궁금하고 막 머라도 올리고 싶어 죽겠다 싶은. 그렇게 나는 블로거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파워는 없지만 십 년 넘게 묵묵하게 포기하지 않고 한 달 30개 이상의 포스팅을 업로드하는 블로그가 되었다. 그리고 그때 나에게 꿀팁을 주지 않았던 그녀에게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