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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Aug 23. 2021

흥부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네 똥까지 치워야 하니?

처음 이곳을 계약할 때부터 처마 아래 제비집이 보였다.

거슬리긴 했지만 당장 쫓아낼방법도 없고 겨울까지 함께 가기로 했다.  

그래 뭐..  제비가 나쁜 새도 아니고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근데 이 녀석들 보통 놈들이 아니다.




하필 손님들이 딱 여는 문위에 집을 지었다.

어느 날부터 궁둥이를 내밀고 똥을 어마 무시하게 싸기 시작했다.

머냐.  이 똥 파티는?



물청소로 모든 똥을 치웠다. 그리고 돌아서니 조금 전 물청소는 꿈과 같다.

다시 또  파티다.



우선 최대 똥 파티 구역에 무엇인가 막아두기로 했다. 그래 일단 큰 똥통을 만들어버리는 거지.

또 한 번 육수를 뚝뚝 흘리며 실리콘으로 그들만의 똥통을 설치했다.

위기의식을 느낀 걸까..  고생하며 붙여둔 똥통 바로 위의 집에 살던 그 녀석들이 이사를 떠났다.  



또 다른 현관 입구에 또다시 똥 파티가 시작되었다.  


중간중간 세입자가 없는 집들은 아예 철거를 시작했다.

겨울이 되고 제비가 떠나면 집 철거를 시작하리라 전했거늘

그딴 건 없다. 우리가 펜션운영하는 사람이지 너희 똥 치우는 사람이니?



지친다.  싹 다 철거해버리자.

그리고 제비집에 손을 쓰윽 넣은 남편.

"여기 알이 만져지는데?"



아...  

인심이 너무해도 똥 박 씨를 물어주면 안 된다는 걸

전래동화 좀 읽은 나는 안다. 최소 새끼는 건드리면 안 된다라는 걸 육감적으로 안 단말이지.  

그래서 당분간 흥부가 되어야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후 외부 CCTV에 제비 한 마리가 떨어져 버둥거리는 게 보인다.

다음날 청소를 하며 구석에 날지 못하는 한 녀석을 보았다.

아.. 네가 얼마 전 떨어진 그 녀석이구나?  



집에 넣어줘야겠다 싶다.  근데 이곳저곳 다 둘러봐도

아주 빼곡하다.  똥통에 그리 싸 대고 이곳저곳에 끝없는 물청소를 하게 만드는

제비군단이 아주 미어터진다.  



이 집 주인 우습다고 소문이 났나.

제주에 제비들은 다 여기 모였나 싶다.

코로나때문에 생각만큼 손님도 없는데  손님은커녕 제비 손님만 그득하다.

무슨 제비 전용 펜션도 아니고 말이다.




입을 180도로 쫙쫙 째며 먹이를 기다리는 새끼들이 가득 찬 제비집

똥 쌀 때는 엉덩이를 밖으로 빼고 바닥으로 쫙쫙 싸재 끼는 통에 돌림 노래하듯 청소를 한다.  

그리고 이번엔 그곳에서 떨어진 날지 못하는 제비 녀석 집까지 찾아줘야 한다.




어느 집 앤지 알 수가 없다.

조금 덜 복닥거리는 곳에 넣어주고 싶은데

그 역시 선택하기 어렵다.  손바닥만 한 공간에 바글거리는 제비 녀석들을 보니

이 녀석 집 찾아주는 것 쉽지 않겠다 싶다.



어미인지 두어 마리가 우리 곁을 계속 맴돈다.  

아마 우리가 새끼에게 해코지라도 할까 싶은가 보다.

야 보고 있냐? 우리가 집 찾아주고 있잖아!!

이게 요즘 시대 흥부라고 하는 거다. 박 씨 알지? 박 씨!!  

너희는 남쪽 가서 박씨를 물어오는 게 시나리오란다~  

아 박씨는 됐고~ 육지 가서 손님이나 물어와라~




그리고 미어터지는 제비집 한 곳에 이 녀석을 꾸역꾸역 넣어주었다. 아슬아슬 제집이 아닌 양 어색해 보였는데

어느 순간 함께 입 벌리고 합창하고 있더라. 그래 그게 네 집이던 아니던 됐다 .옆집 제비 아줌마가 대신 먹이를 물어다 주겠지~  



돌아 나오니 바닥에는 또 통으로 가득하다.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게 똥밖에 없니??  



현대판 흥부전은 그저 똥 파티로 끝났다.

박씨? 손님?  

배응망덕한 제비 놈들에게 내가 물어보고 싶다.

은혜도 모르는 제비놈들.. 에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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