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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Aug 21. 2021

손님 이건 지네가 아니라 그리마입니다.

그리마는 익충인데  말이죠.

비주얼부터 전혀 정 안가는 친구.   혐오스럽고 길고 긴 다리는 그야말로 온몸에 털이 쭈뼛 서는 기분.

한 번쯤 집에서 본 돈벌레.  왜 이름이 돈벌레 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돈벌레의 진짜 본명은 그리마라 부른다.  비주얼은 최악인데 사실 이 녀석 익충이란다.

꼬락서니가 이미 최악인데 익충이라니..  그저 어이가 없다.   익충이라 해도 사실 마음에 안 든다.  



젊은 여자 손님들이 왔다.   주인장으로 기도한 건 오직 젊은 녀성들이 극혐 하는 벌레만 나오지 말라는 것.

심지어 매달 따박따박 내 통장에서 제법 적지 않은 돈이 방역비로 나가고 있다.  

매달 방역을 올 튜닝한 귀여운 차가 방문해서 집안 곳곳 마당 구석구석 약을 뿌리고 극혐 하는 모든 벌레를

처리하기 위해 내 통장은 열심히 협찬 중이다.  



하지만 워낙 집이 오래되고 낡았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360도 회전하며 풀이 가득하기에 잠시만 방심하고

문을 열어두면 소리 소문 없이 침투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래서 늘 주의사항에 문을 꼭 닫으라 하지만

그래 다 큰 어른이 그게 귓구녕에 들어오겠나 싶다.   자고로 시험도 잘 치면 내 공. 못 치면 네 탓이니까..



그날도 역시나 그랬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지.  

"사장님 지네가 나왔어요. 천장에서 떨어졌어요"  

하..  방역팀에서도 절대 해결할 수 없다고 미리 언질을 줬던 그 지네.

지네가 나왔단다.  참고로 제주는 워낙 습한 곳이라 지네가 정말 많다.    아주 잠시 삼천포로 빠지자면..

제주 와서 자다가 난 지네에 물린 적이 있다.  작은 지네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화끈거림과 아림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이미 겪어봤기에 제발 우리 숙소에 지네만큼은 제발..이라 했는데

늦은 밤 지네가 나왔다는 연락...  천장에서 지네가 떨어질수가 있나? 라는 생각은 했지만..   

당장 뛰어가 지네를 잡아줄 수도 없는 상황,  그리고 얼마 후 저희가 해결했어요~라는 안도의 연락이 왔다.

하 정말 다행이다. 그중에 용감한 신여성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며.  당신은 오늘 밤 잔다르크예요.  라며..

얼굴은 모르지만 그녀가 있어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른다.  



다음날 그녀들은 더 이상 연락이 없었다. 그리고 체크아웃 후 메시지가 왔다.  

"사장님 어제도 지네가 나와서 방 하나는 아예 안 썼어요. 죽여서 변기통에 버렸어요.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 보냅니다"  

그리고 날아온 사진 한 장.  



아........ 이건 지네가 아니라 그리마였다.  그래 그리마가 지네과이고 비주얼 자체가 지네만큼 혐오스럽기는 하지.

"혹시.. 전날 나왔다고 하던 벌레도 혹시 이것인가요?  "

"네 맞아요. "

아...  그랬구나..

근데 이 친구는 사실 지네는 아닌데 말이지.   



그리마라고 바퀴벌레 알이나 작은 벌레들을 먹고살아 퇴치보다는 방생을 하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돈벌레라 불리는 그리마는 예전부터 돈이 들어올 징조라 하여 돈벌레를 죽이면 돈복이 달아난다는 미신도 있다. 우린 돈복이 들어온다는 돈벌레를 그 뒤로 얼마나 죽였는지 모르겠다.  

워낙 습하고 따뜻한 곳을 좋아해 부유한 집에서 많이 나왔다 하여 그런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제주의 습한 날씨에 그야말로 안성맞춤인 녀석.   그래서 비 오는 날에는 벽에 붙어있는 그리마를 종종 보기도 한다.



하지만 비주얼이 썩 정가는 스타일이 아니기에 미안하지만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약을 뿌리고 또 뿌린다.

미안하다.  널 죽인다고 나에게 돈복을 가져가지는 말아다오. 아직 한 번도 들어오지 않은 돈복을 말이다.

내가 푼 그리마도 아니고 내가 잡아서 던진 지네도 아니지만..  펜션 운영자인 우린 그저 사죄밖에 할 말이 없다. 죄송합니다.   불편을 드려 너무 죄송합니다.라는 말밖에..




그리고 인터넷에 올라온 후기. 우리 숙소에 대한 단점에  벌레가 많다 였다.   벌레 많은 건 집주인에게 말했더니 홈매트를 가져다주셨다 라는것.   아..  집주인분이 친절하시다.. 다행이다 집주인이라도 친절하다 이야기해주셔서. 하지만 조금 당황스럽다. 그리마 때문에 사실 홈매트를 드린 건 아닌데 말이다.  모기가 많다기에 추가로 넣어드린 홈매트.  사실 늘 홈매트를 가득 넣어드린다.   그 이후에 홈매트를 사용한 팀은 5손가락 안에 든다. 그녀들에게 미안하지만 다들 문을 잘 닫고 다닌 듯하다.



익충이라지만 꼬락서니가 염병인 그리마 네 덕에 우리는 또 손님에게 미안함을 전한다.

그리마야 미안하지만 넌 왜 그리 생겼니.  익충이면 뭐하니 꼬락서니가 그 모양인데.

우리 어머님이 그랬다.

'입은 거지는 얻어먹어도 벗은 거지는 못 얻어먹는다'라고

이놈아 조금 더 멋진 곤충으로 태어나지 그랬니..



그러고 보니 몇 년 전 거제도 여행을 간 적이 있다.  깔끔한 숙소였지만

족히 10cm가 넘는 실한 지네가 정말 나타났다.  집게로 집어도 그 꿈틀거림의 움직임은

집게를 타고 팔까지 전율이 느껴졌다. 아마 물렸으면 119행이었다.   근데 난 그 펜션 주인에게 지네가 나왔어요~ 사장님~ 그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위 말하는 난 여행블로거고 제법 영향력 있는 인플루언서지만... 그건 사장님이 풀어놓은 녀석이 아니기에

그 어떤 곳에도 기록하지 않았다.   심지어 제주 유명한 호텔에서도 벌레를 만난 난 사람인력으로도 다 해결할수없는 것이라는걸 알기에 그 어떤 컴플레인도 하지 않았다.  난 제법 괜찮은 손님이었던 것 같다.  



의도와 다르게 숙소를 운영하다보면 사과해야할것이 참 많이 생긴다.  그것이 나로 인한것이든 아니든..

항상 사과할 준비를 해야한다. 그것이 그리마 때문이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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