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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Aug 22. 2023

그저 외국어 실력을 위해 에어비앤비호스트를 시작했다

현재 펜션을 운영하고 있지만 사실 이게 처음은 아니었다.   모름지기 경력은 무시할 수 없다.   제주에 내려와 그 시작은 작고 소중한 개인실 대여였다.  제주에 내려와 가장 처음 구한 집은 해수욕장에서 도보로 3분 거리. 걸어서 코 닿는 곳에 유명한 해수욕장이 있었다.  주인 영감님의 부지런함 덕분에 마당은 초록초록한 잔디가 깔렸고 수백, 수천에 호가한다는 거대한 야자수 나무도 우리 마당을 지켰다. 누가 봐도 도시인의 로망을 가득 담은 마당 넓은 주택이었다.  바다도 가까우니 제주에 내려온 첫여름은 우리 지인들로 쉴틈 없었다. 친구, 친척이 제주에 터를 잡았으니 핑계 대고 놀러 오기 얼마나 좋으냐 말이다.   같이 근무했던 지인가족에 도시에 살아도 자주 보지 않았던 고딩동창가족에.  하물며 나의 이모할머님까지 내려오셨으니 제주에 내려온 한가족이 얼마나 든든했을지 안 봐도 뻔하다.   예의상 건네던 대사 "가족이랑 제주에 놀러 오세요" 하니 정말 많이도 내려오더라.   그리고 그해 여름 우리는 아침에 체크아웃하는 지인에게 인사하고 오후에 또 다른 친구가 체크인하는 이것이 숙소인지 내가 사는 집인지 모를 게스트하우스인지 내 가정집인지 전혀 모를 그런 공간이 되었다. 




제주 첫 번째 우리 집은 넓은 안방과 제법 작지 않은 작은방 2개가 있었고 화장실도 2개였다.   게다가 입구 쪽 화장실에 입구 작은방이라 손님이 머물기에는 주인장에게 크게 불편 없이 이용할 수 있었다.  매일 마당에서 도시인들이 꿈꾸던 바베큐 파티를 열었다.    남편은 매일 구워대는 바베큐 덕에 흑돼지집 차려도 되겠다는 칭찬을 들어가며 도시인들의 로망을 매일 함께 했다.    집에 손님이 올 때마다 바다를 다녀오고 마당에서 2차 물놀이를 하고 집안 곳곳에 해수욕장 모래가 나뒹굴고 마당에서 육수 뚝뚝 흘리며 고기를 굽고.   약 한 달간 아마도 우리가 아는 지인의 3분의 2는 다녀간 듯싶다.   제주에 살아도 이 정도로 오는데 만약 내가 해외에 간다면? 와 쉽지 않은 통계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쉼 없이 주변인들에게 연락이 왔다. 나 다음 주에 제주 가도 됨? 나 2주 후에 너희 집 가도 되니?  집에 누구 오니?  쉼 없이 이어지는 방 비냐는 카톡들.좁고 좁은 나의 인간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제주에 첫해는 그 작고 작은 인맥들이 총 출동했다.  그리고 바비큐에 지친 남편과 손님들이 다녀간 작은방을 매일 펜션 사장처럼 쓸고 닦다 지쳤다.  차라리 돈을 벌자 이방으로.  



그렇게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되었다.  작은 방이지만 에어컨이 있었고 바로 옆에 전용 화장실을 쓸 수 있으며 나와 함께 공유하는 주방이긴 하지만 주인장은 크게 터치하지 않는다.  냉장고도 심지어 두 개였던 터라 하나는 게스트용으로 사용하면 되었다.  그럼 손님을 위한 침대만 하나 넣으면 되겠다.   방에 마침 작은 옷장이 있기도 하니 여분의 이불은 여기에 두면 되었다.  좋다 이제 침대만 사면 우리도 이제 에어비앤비 호스트다. 



그렇게 시작된 에어비앤비.   바다 코앞 에어비앤비 호스트의 꿈은 이러했다.   외국인 가족이 찾아와 우리 아이와 소통하고 아주 가끔은 부족한 요리실력으로 한국요리를 내어주며.  함께 맥주도 한잔 하며 외국인친구를 사귀고 아이와 우리 부부의 자연스러운 외국어 실력 도모.  그와 함께 최소한의 방값을 받으며 살림에 보태보겠다 하는 아주 멋진 발상.   




깔끔하게 세탁된 이불과 먼지 한 톨 없는 방을 꾸민 후 요리조리 다양한 각도로 사진 촬영을 했다.  바다가 가깝다 했으니 도보로 이동 가능한 바다도 찍고 걸어서 갈 수 있는 편의점과 동네 맛집도 찍어 올렸다. 그리고 첫 손님이 예약하기만을 기다렸다.  쉼 없이 연락 오던 지인들은 어찌 되었냐고?  에어비앤비 손님이 오시니 미안하지만 이번주는 다음 주는 안될 것 같다며 거리 두기를 시작했다.   사실 지인들이 우리 집에 오는 것도 하루이틀이고 반가운 것도 하루이틀이지 수없이 많은 날들을 친하지 않은 지인의 가족까지 함께 한다는 건 피곤함의 연속이었다.   도시에 살 때도 늘 자주 보며 같이 여행도 다니고 소통하던 사이는 사실 크게 불편함 없지만 서로 불편한 경우도 많았다는 것.  지인의 집에 놀러 왔으니 깨끗하게 청소까지 싹 다하고 주방까지 싹 다 치워주고 외출하는 분도 있었지만 진짜 친구집인양 손하나 까딱 안 하는 지인도 많았다는 것.   이 사람은 다음에 다시 온다고 하면 받아주고 아 이 친구네는 미안하지만 다음부터 못 받아주겠다 결심하기도 여러 번.  그렇게 거리 두기를 시작하니 한해 한해 우리 집을 찾는 지인들의 인원은 확연히 줄었다.  그 이후 나는 예의상으로라도 제주 우리 집에 놀러 와 라는 말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나만의 소극적인 친밀함의 척도랄까? 




에어비앤비 업로드가 되었고 첫 손님은 매일매일 기다려도 소식이 없다. 매일 눈이 빠져라 기다리고 기다렸던 새내기 에어비앤비 호스트는 드디어 첫 손님을 맞이했다. 그것도 무려 외. 국. 인 

그래 바로 이거야. 내가 원하던 게 바로 이런 거거든. 외국인 손님이 오시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영어공부를 하게 되겠지.  매일 대화를 한두 마디씩 하다 보면 어머 이거 회화 느는 건 한순간이겠는걸? 나 몇 년 후에 외국에서 에어비앤비 호스트 하는 거 아니냐 남편과 맥주 마시며 거대한 미래를 상상해 보는 것이 또 하나 즐거움이 되었다. 



그렇게 기다리던 첫 손님이 왔다.  그녀는 미국에서 온 흑인여성이었고 며칠간 바다 보며 쉬고 싶어 오게 되었다 한다.   이미 서울에 살고 있던 그녀라 부족하지만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체크인을 마치고 어색한 인사가 오가고 본격적인 그녀의 제주 여행이 시작되었다.  알던 지인들이 작은방을 이용할 때와는 전혀 다르게 불편한 건 없는지 뭔가 먼저 물어봐줘야 하는 건 아닌지 계속 신경 쓰였던 초보 호스트.   돈은 몇 푼 안 되고 지인들과는 또 다른 불편함이 있었지만 앞으로 미래에 대한 기분 좋은 설렘도 충만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저녁을 함께 먹겠느냐 제안했다.  김치찌개를 해줘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뭔가 부족하지만 한국음식을 맛 보여줘야 할 것만 같은 느낌적 느낌.  그녀는 막걸리를 준비하겠다 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우리는 영어와 한국어가 공존하는 복합 미묘한 저녁식사를 시작했다.  편하게 막걸리 한잔이 오가며 우리는 영어를 배우고 싶다.  부족한 우리의 영어실력이지만 답답해도 애써보겠다 했지만 정작 그녀는 제발 한국어를 써달라 했다.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우리 집에 왔다며.  오 마이갓.  서로 추구하는 바가 정말 달랐던 상황. 

그래 그녀는 한국어를 배우는 중이었고 한국인 가족이 살고 있는 이 집에 온 이유는 그것 아니겠는가.  취지는 다소 달랐지만 서로의 마음을 이해했고 다음날 함께 제주 드라이브를 하기로 약속했다.  



우리 집이랑 저 반대쪽으로 함께 차를 타고 서로 답답한 대화를 오가며 오름도 걷고 함께 사진도 찍었다.  앞으로 이런 일이 더 많으면 좋겠다 싶었다.  외국인 가족들도 오고 함께 제주여행을 즐기며 우리 차를 맘껏 태워주리라.   제주 안 가본 이곳저곳을 내가 외국인들에게 다양하게 보여주리라.  다음 손님이여 그대도 무조건 외국인이어라. 


하지만 아쉽고도 그 이후로 더 이상 외국인 손님은 오지 않았다.  한국인이지만 외국에 살던 모자가 서핑을 한다고 다녀갔지만 그 모자는 여행 내내 우리 집 코앞의 바다에서 놀기 바빴다. 그 이후에 하나씩 하나씩 한국인 가족들이 방문하기 시작했다.  거절했던 지인들의 가족과 별반 차이 없는 한국인 가족들이 한 팀 한 팀 도착했으며 그들 역시나 도시라이프에 지쳐있었다.   모든 걸 버리고 제주에 내려온 우리 가족의 이야기에 즐거워했고 부러워했다.  그렇게 모르는 가족들과 매일 저녁 다시 바비큐 파티는 이어졌고  마치 얼마 전까지 보아오던 그 장면들이 그대로 다시 반복되었다.   우리가 꿈꾸던 외국어 실력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고 늘어나는 건 한국어 회화실력뿐. 



제주에 내려와 첫해 수십 번의 바비큐를 구워낸 남편.  한여름에 모기와 싸우며 식당 사장님 소리를 들어가며 수도 없이 흘린 땀방울에 그는 이번 펜션운영에 가장 먼저 외쳤다. 바비큐는 셀프라고.  이제는 마당이 없는 도시와 같은 주택에 살고 있다. 지인들은 이제 정말 친한 지인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는 지인들로 나뉘었고 매년 시간이 갈수록 우리 집을 찾는 도시의 지인들은 반에 반으로 줄었다.  그리고 이제 안부인사는 바뀌었다. "우리 숙소에 놀러 와"  그리고 영어공부도 셀프다.   오늘도 우리 부부는 펜션 청소 하며 각자 듣고 싶은 영어 영상을 듣고 있다.  그저 올해는 영어실력이 좀 더 좋아지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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