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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수 Oct 19. 2022

4.3 사건 피해자 어머니, 제주에서야 비로소 이해했다

[리뷰] 다큐멘터리 <수프와 이데올로기>

개인의 가족사를 거슬러 올라가니 비극의 한국사가 있었다. 20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재일교포 2세인 양영희(57) 감독이 어머니 강정희씨로부터 우연히 제주 4.3에 대해 들은 후 강씨의 기억을 기록하고 가족으로서 그녀를 좀 더 이해하기 위해 카메라로 찍은 결과물이다. 어머니 강씨가 사는 일본 오사카, 함께 방문한 제주의 여정 등이 담겼다. 양 감독의 남편(당시 남자 친구)인 일본인 프로듀서 아라이 카오루씨도 중요 인물로 등장한다. 


지난해 DMZ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대상을, 서울독립영화제에서는 집행위원회 특별상을 받았다. 일본에서는 올해 6월 개봉했다. 양 감독이 최근 일본에서 한 대담 기사의 제목은 "일본인이 모르는 '한국 현대사 최대의 금기' '제주도 4.3 사건의 진실"이었다. 다큐멘터리 덕에 제주 4.3에 대한 이야기가 일본에도 알려지고 있다.


ⓒ아라이 카오루 씨(왼쪽)와 양영희 감독의 어머니 강정희 씨. ⓒ(주)엣나인필름


영화 제목의 수프는 삼계탕


영화 제목이기도 한 수프는 삼계탕이다. 양 감독이 카오루씨를 처음으로 데리고 왔던 날 강씨가 닭 안에 마늘과 대추, 인삼 등을 넣고 몇 시간을 고와 대접한 음식이다. 세 명 모두 "수프"라고 부른다. 삼계탕을 먹는 장면은 세 번 나온다. 카오루씨가 강씨와 장을 보고 함께 만들고 이후 만드는 법을 터득한 카오루씨가 혼자 삼계탕을 끓인다.


양 감독에게 가족은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제주도 태생의 아버지 양공선씨와 재일조선인인 어머니 강씨는 일본에 살며 조총련의 열성 활동가로 살았기 때문. 양 감독의 오빠들이기도 한 아들 셋을 전부 평양에 보내며 북한에 충성했다. 그 때문에 양 감독은 아버지와 밥도 같이 먹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번만 아버지와 밥을 먹어달라는 강씨의 부탁을 받고 가족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 


그 이해의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가 <디어 평양>(2005)과 <굿바이, 평양>(2009)이었다. 극영화 <가족의 나라>(2012) 역시 가족이 주제였다. 그 연장선상에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수프와 이데올로기>가 있다. 한 가족 안에 서로 다른 국적과 이데올로기가 공존하는 아이러니한 운명.


그래서 양 감독과 강씨, 카오루씨가 함께 삼계탕을 먹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진이 걸린 강씨 집에서 국적과 이념이 다른 셋이 한 자리에서 평화롭게 같은 음식을 먹기 때문이다. 수프(삼계탕) 통해 교감의 끈이 생겨나는 셈이다. 평범한 한 끼가 평범하지 않은 것이다. 강씨가 카오루씨에게, 카오루씨가 강씨에게 삼계탕을 대접하는 장면은 타인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발걸음과 닮았다. 연애도 결혼도 일본인은 절대로 안 된다던 어머니의 변화이기도 하다.


다큐멘터리 <수프와 이데올로기>의 한 장면. ⓒ (주)엣나인필름


양영희 감독의 어머니는 4.3 사건의 피해자


양 감독이 어머니를 좀 더 깊게 이해하는 건 4.3 사건의 피해자이자 생존자라는 걸 알면서부터다. 강씨는 18살 때 4.3을 겪고 두 동생을 데리고 간신히 밀항선을 타고 제주를 탈출해 오사카에 도착했다. 강씨는 긴 세월 속에도 당시 살던 마을 이름과 "개머리판으로 삼촌 뒤통수를 내려쳐서"라고 증언할 정도로 그 당시 상황을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다. 


양 감독은 2018년 강씨, 카오루씨와 제주로 향한다. 2018년 정부에서 조선 국적자의 대한민국 입국을 허가한 덕분이다. 함께 제주 4.3 평화공원을 둘러보고 제주 4.3 70주년 추모식에 참석한다. 제주에 와서야 강 감독은 어머니의 아픔을 크게 느낀다. "(부모님이) 일본에 가시고 남한 정부는 안 믿겠다 해서 북한을 지지하며 살아오셨잖아요. (중략) 아들을 다 북에 보내면서까지 4.3이 그렇게 크나 했었어요. (중략) 그렇게까지 한국을 부인하고 북한을 지지할 이유가 되는 건지 4.3이 그렇게 큰 지 이해가 안 됐거든요. 여기 와서 보니까 이런 고향을 품고 어떻게 살았나 싶어요."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개인의 이야기에서 출발해 아픔의 근현대사까지 커다랗게 확장한다. 동시에 우리가 계속해서 마주하고 공감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 준다. 가장 가깝지만 심리적으로 가장 먼 가족과 비극의 폭력의 아픔을 준 국가, 뿌리박혀 쉽게 이해하기 힘든 각자의 이데올로기까지. 길고 심오한 과정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단단한 다큐멘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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