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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bean Apr 16. 2021

때로는 거리가 필요하다

자매 환상 따위는 집어치우자


 제대로 소통이 되는 관계여야지 치유가 가능한 것 같다. 이미 꼬일 대로 꼬여 버려서 어떠한 말도 왜곡되는 관계라면 차라리 떨어지는 게 낫다. 그게 바로 나와 언니의 관계였다. 




 심리 상담 선생님은 나에 대한 치료를 시작할 때에 언니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원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내가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을 어느 정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언니였다. 아예 꺼낼 수조차 없었던 엄마와 원망만 가득했던 아버지보다 미약하게나마 애정을 가지고 있는 언니에 대한 이야기로 포문을 열 수 있었다. 언니에게는 부모님보다는 좋은 기억이 더 있었다. 언니는 언니 노릇을 하려고 했고, 그것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서로를 곡해했다. 언니는 내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곡해했고, 나는 언니가 바보 같은 결정만 한다고 곡해했다. 모범생으로만 지내던 나는 언니의 방황을 전혀 공감할 수 없어서 상처를 줬고, 온갖 고난을 겪던 언니는 (엄마와 언니가) 부재하는 자리를 버티기 위해 일직선으로만 걸으려고 했던 나를 팔자가 편하다고 오해해서 상처를 줬다. 


 그것은 우리의 아이들에게까지 대물림될 뻔하였다. 내가 먼저 결혼을 하고, 뒤이어 언니가 결혼을 하면서 우리 집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언니는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나쁜 것들에 대해 나를 탓했다. 내가 아버지를 탓했던 것처럼, 언니는 나를 탓했다. 나는 언니가 나를 탓할 때마다 미안했다. 죄책감과 책임감은 내 몫이었고, 그걸 우리 아이에게까지 강요했다. 딸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많은 것을 자신의 사촌에게 양보해야 했다. 사촌이 분홍색을 좋아할 때에는 무조건 분홍색을 양보해야 했고, 사촌이 파란색을 좋아할 때에는 무조건 파란색을 양보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키즈 카페에서 나는 깨달았다. 조카는 처음 보는 아이에게 그 아이가 들고 있던 파란색 물건을 양보하라고 생떼를 부렸다. 더군다나 그것은 키즈 카페에 있는 공통 장난감이었는데도 말이다. 나는 딸아이에게 무조건적인 양보를 강요한 일이 결코 우리 아이와 조카에게 좋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로부터 몇 년 뒤에 나는 이사를 했다. 이사를 하게 된 많은 원인 중에 언니네 가족과 멀어지기 위한 것도 있었다. 곡해와 죄책감과 원망의 고리를 우리 스스로는 끊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물리적 거리를 두기로 선택했다. 


 아마 언니도 억울한 점이 있었을 것이다. 언니는 스스로의 선택을 믿지 못해서 나에게 결정권을 자주 주었다. (물론 그 이후의 원망까지도 내 책임이 되었다.) 언니 나름대로도 자신의 아이가 자신의 조카보다 뛰어나지 못할까 봐, 성장하면서 공부로는 동생을 뛰어넘지 못했던 힘든 경험이 되풀이될까 봐 불안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제대로 시작하지도 못한 채 계속 감정적인 대응을 해서 여전히 매듭을 풀지 못했다.




 어떤 관용적인 말들은 상당히 폭력적이다. 형제끼리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는 그 말, 그 무책임한 족쇄. 어째서 어른들은 그렇게 자녀를 차별하면서 형제끼리 사이가 좋기를 바라는 것일까. 차라리 서열 정리만 제대로 해주었다면, 그렇게 했다면 훨씬 더 사이가 좋을 것이다. 나는 상담을 받는 도중에서야 언니에게 그동안 내가 받았던 고통들에 대해서 제대로 얘기했다. 나는 온실 속 화초가 아니라 집의 지붕을 받치기 위해 애써 참아왔다는 이야기를 드디어 한 것이다. 언니에게 얼마나 가 닿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확실하다. 내가 이사를 떠나 온 지 몇 년이 지난 지금, 언니의 카톡 프로필은 더 이상 암울하지 않다는 것이다. 언니와 나 사이에는 매듭지어진 감정이 너무 많이 얽혀 있기 때문에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여실히 증명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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