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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bean Apr 21. 2021

기억 속 엄마와 비슷한 이웃

그때의 엄마를 경험하기


 나는 엄마를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그때의 엄마와 지금의 나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경제적 압박의 정도도 다르고, 시댁과의 관계도 다르고, 남편과의 애정도도 달랐다. 나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언니와 떨어져 이사를 오고 나서 상당히 막막했다. 두려운 마음도 많았다. 그런데 딸아이와 같은 병실에 입원한 경험이 있었던 아이의 가족이 우리가 이사 온 아파트에 이미 살고 있었다. 몇 번 마주치고 나자, 우리는 연락처를 주고받고서 만나기 시작했다. 그 이웃은 엄마를 떠오르게 했다. 엄마의 컨디션과 정서가 좀 더 안정되었다면, 영락없이 이 이웃과 비슷했을 것이다. 그 집 남편이 부인에게 우호적인 것만 빼면 내가 어렸을 적에 엄마와 상황과 감정이 비슷했다. 


 그 당시에 내가 상담을 받고 있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 이웃과 일찌감치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지나치게 절약하는 습관이 자꾸 엄마를 떠오르게 했고, 이제야 씀씀이가 조금 커진 나에게 자꾸 제동을 거는 것 같아서 만나기 싫었다. 그런데 상담 선생님이 계속 만나보라고 하였다. 이제 시작하는 인연이고, 무엇을 얻을지 모르니 좀 더 만나보라고 하였다. 그래서 선생님의 말을 믿기로 했다. 


 나는 그 이웃과의 대화를 통해 엄마의 결혼 생활 초기를 상세하게 간접 경험할 수 있었다. 엄마는 두고두고 똑같은 말을 했었다. 아기를 낳을 때에 아버지가 옆에 없었던 것과 갓난아기를 키우고 있을 때에 시어머니가 와서 엄마가 밥까지 차려야 했던 것에 대해서 두고두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원망의 말을 했었다. 그 이야기를 그 이웃이 엄마보다는 감정적이지 않게 말을 했다. 내가 알아듣기 쉽게, 대화가 되도록 말을 했다. 지금은 내가 성장하기도 했고 결혼생활을 겪어 봤기 때문에 궁금한 것에 대하여 질문할 수도 있었다. 그 이웃은 갓난아기를 키우고 있을 때에 시어머니가 매일 집에 왔었다고 했다. 그런 상황에 대한 자신의 경험과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었다.

 우리 엄마는 응어리진 원망 때문에 한 번도 제대로 말하지 못했었다. 아버지에게 고함을 지르면, 아버지는 자신의 엄마에 대한 원망이니까 맞서서 화를 냈다. 우리 부모님은 싸울 때마다 비슷한 이야기를 꺼냈지만, 해결의 실마리를 풀지 못한 채 끝 간데 없이 반복되기만 할 뿐이었다. 우리 부모님이 어느 정도로 부드럽게 표현해야 대화로 이어질 수 있는지 알았더라면 의미 없는 감정 소모를 일찌감치 끝낼 수 있지 않았을까. 엄마가 서로를 다독일 수 있는 비슷한 이웃과 교류했더라면 결국 팔이 안으로 굽은 아버지를 그렇게까지 자극하지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 우리 부모님이 서로를 사랑하고 그 사랑이 두터웠다면, 팔을 시가와 친정이 아니라 서로를 향해서 굽히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집에 혼자 갇혀서 갓난아기를 키운다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든 일이다. 그 힘든 상황에서 친정엄마가 도와주지 못한다면 도움을 구할 데가 없다. 시어머니는 친정 엄마와 다르다. 친정 엄마는 설거지를 해도 내가 소파에 누워 있을 수 있지만, 시어머니는 설거지를 하면 내가 먼저 달려 나가야 한다. 나는 우리 엄마가 어차피 도와주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에 갓난아기를 키우면서 한 달에 한 번 우리 집 근처로 와서 점심을 사달라고 요청했다. 엄마는 내가 부르는 평일에 대중교통을 타고 와서 점심만 사주고는 다시 대중교통을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걸로 만족해야 하는 걸 잘 알았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친정엄마가 일을 했기 때문에 바쁘셔서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시어머니가 왔기 때문에 밥까지 차려야 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나마 나는 계속 싸우기는 했지만, 언니와 가까이서 아기를 같이 키웠는데, 엄마는 낯선 땅에서 낯선 사람들에 둘러싸여 철저히, 아주 철저히 혼자였다. 그런 상황에서 연년생으로 자신만 바라보는 아기가 태어나버린 것이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마도 나는 우리 딸이 갓난아기를 키운다면 외면하지 못할 것이다. 외동딸을 키우면 딸의 뒷바라지를 하다가 싱크대에 코 박고 죽는다는 웃픈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나는 그것을 점차 받아들일 것이다. 집에 혼자 갇혀서 갓난아기를 키운다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딸이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하면 지지할 것이고,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해도 지지할 것이다. 나에게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손주보다 딸의 인생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딸이 아이를 낳는다면 초반에는 물심양면으로 도와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 서서히 독립시키고 싶다. 자신의 아이를 자신이 책임질 수 있도록. 그렇게 될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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