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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bean Apr 22. 2021

엄마와의 대화

이제는 대화가 된다


 엄마는 얼마 전까지도 언니를 아픈 손가락이라고 말했다. 나는 언니와 가까이 살 때에는 부모님께 조카 사진까지 같이 손주들 사진을 전송하고는 했다. 언니는 사진을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언니는 부모님의 전화를 잘 받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는 주로 나와 통화를 했다. 나는 엄마와 대화를 하면서도 소외감을 느껴야 했다. 우리 아이가 이런 걸 잘했다고 자랑하면, 엄마는 우선 좋아하다가 조카는 어떠냐고 물었다. 나는 조카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엄마는 금세 시무룩해졌다. 엄마에게 언니는 계속 아픈 손가락이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내가 밥솥의 상태가 나빠져서 바꾸고 싶다는 말을 했고, 엄마는 아직 고장이 난 것은 아니니 조금 더 쓰라고 말했다. 그런데 가족 모임에서, 언니가 엄마에게 밥솥을 사달라는 말을 해서 엄마가 언니에게 밥솥을 사준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어째서 나는 사주지 않고, 언니만 사주었냐고 물었다. 엄마는 언니의 가계가 너보다 어렵고, 밥솥이 정말로 고장이 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언니도 옆에서 말을 거들었다. 그때는 그냥 넘어갔는데, 못내 그 일이 계속 서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서 밥솥을 바꿔달라고 말했고, 엄마는 밥솥을 바꿔 주었다. 

 나는 처음으로 엄마에게 '서운하다'는 표현을 했다. 다음 가족 모임에서 엄마를 직접 만났을 때에 밥솥은 정말 서운했다고 말했다. 엄마는 나중에 전화 통화로 나에게만 몰래 말했다. 너희 아버지는 여전히 네 딸이 입원하면 선뜻 병문안을 가지만, 언니 딸이 입원하면 병문안을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엄마와 나만 병문안을 갔었다. 엄마는 여전히 그게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여전히 언니는 '아버지의 인사이드'에 들어가지 못했기에 내가 그때까지도 '엄마의 인사이드'에 들어가지 못했던 거였다.




 심리상담을 받고 있을 때에 상담 선생님은 엄마에게 어떤 식으로든 마음을 표현하라고 말했었다. 나는 엄마가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엄마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표현하라고 다시 말했다. 그 말을 들었을 당시에는 차라리 외계인과 대화를 하지, 엄마와는 대화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밑져야 본전일 거란 마음으로 엄마에게 말을 해보기 시작했다. 내가 엄마에게 우리의 어린 시절과 관련해서 처음 꺼낸 말은 엄마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사주지 않은 일이었다. 엄마는 웬만하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사 준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아니라고, 내 용돈으로 책을 샀을 때에 엄마가 혼냈던 일을 웃으면서 말했다. 엄마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나는 말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것을 시작으로 나는 엄마에게 말을 했다. 천천히 조금씩 부드럽게 말했다. 몇 년에 걸쳐 엄마는 점점 대화가 가능한 상대가 되었다. 내가 엄마의 마음을 먼저 읽어주고, 그다음에 내 마음을 전달했다.

 엄마의 말을 통해서, 엄마에게 언니에 대한 뿌리 깊은 아픈 손가락의 이미지가 생겨나게 된 원인을 알게 되었다. 예상치 못하게 내가 너무 빨리 엄마 뱃속에 생긴 것이었다. 엄마는 언니에게 모유를 1년도 채 먹이지 못했는데, 다른 아이가 생겨버려서 억지로 떼어내야 했던 것에 대해서 깊은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아... 나는 이미 뱃속 씨앗일 때부터 죄책감 덩어리였구나.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에는 너무 절망스러웠는데, 나는 엄마가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은 말은 일단 하지 않았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말을 더 했고, 얼마 전에 드디어 나는 엄마에게 말할 수 있었다. 내가 애엄마가 되어보니 이해하게 되었던 엄마의 상황들에 대해 말하며 힘들었겠다고 다독이고, 그렇지만 어린 시절의 나에게 엄마는 원망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드디어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을 했다. 




 나는 이제는 엄마를 상대로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그래서 엄마는 나와 즐겁게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엄마는 나에게 '너를 낳아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것으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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