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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bean Apr 16. 2021

사람에 대한 상처는
결국 사람으로 치유한다

소통의 미학


 상담이 나의 많은 것들을 바꾸기는 했지만, 상담만 했다면 치유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상담 이전에는 나의 많은 것들을 이해해주는 지금의 남편인 남자 친구가 있었다. 그리고 상담 이후에는 아주 오랫동안 내 옆에 있어주었던 동성 친구들이 계속 내 옆에 있어 주었다. 그동안 나의 가정사에 대해 세세하게 말한 적이 없었는데, 상담을 하면서 조금씩 예전에 묻어뒀던 일들을 말하기 시작했었다. 그들 중에 누구도 이전과 다르게 나를 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나를 살펴 봐 주려고 애써 주었다. 내가 엄마에게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것 때문에 나를 질타하고 미워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내가 그냥 평범한 사람일 수 있다'는 느낌을 이제는 받고 있다. 나는 그저 보통 사람이다. 




 아버지는 수치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우리 가족이 조금이라도 부끄러운 행동을 한다는 생각이 들면 그 사실을 수치스러워했다. 그저 평범한 성격적 특징도 도덕 교과서처럼 바른 게 아니니 부끄럽게 느끼기 일쑤였다. 어느 정도의 수치심은 필요한 감정이겠지만, 지나치면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를 막아버린다. 그저 수다거리일 뿐인 일조차도 나에게 해당되었을 때에 부끄럽게 느끼게 되어 버리면,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할 수가 없게 되고, 말할 수 없으면 그 사람을 친하게 느낄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어느 집단에 속해있어도 끊임없이 소외감을 느꼈다. 보통의 일까지도 수치스럽게 느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도 없었고, 내가 봐도 평범하지 않은 엄마의 이야기는 더더욱 할 수 없었다. 게다가 나는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겼다. 그렇게 내 이야기를 할 수 없어서 항상 듣기만 했고, 어딜 가더라도 섞이지 못하는 듯한 소외감에 시달렸다. 




 누구에게든 어떤 사람에게 받아들여지는 경험은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우리 부모님만 그런 게 아니라는 보편적인 경험도 중요한 것 같다. 여러 가지 매체에서 간접 경험을 하는 것보다 가까운 주변 사람들에게서 비슷한 간접 경험을 획득하고 나면 나에 대한 수치심이 확실히 줄어드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엄마와 비슷한 엄마들도 많고, 아예 처음부터 도망가 버린 엄마들도 많았다. 여성이 대접받지 못하던 시대에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를 견디지 못한 사연이 상당히 많았다. 그러니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결국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는 사람을 통해서 치유될 수 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소통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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