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딸의 보호자이다
나에겐 엄연히 엄마가 있었지만, 엄마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아주 사소한 것까지도 책임지지 않던 엄마, 그런 엄마를 만든 건 엄마의 주변 여건이었을 것이다. 너무 바빴던 외조부모님, 여자를 대우해주지 않았던 당시의 분위기, 중구난방이었을 엄마의 동생들, 엄마의 너무 순했던 성격까지도, 아마 모든 것이 합쳐져서 사소한 것조차 책임지지 않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엄마는 너무 여렸다.
엄마가 되어보니 알겠다. 전업주부로 친구를 사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워킹맘들이 많아서 만나는 게 가능한 시간대도 다르고, 자녀수도 다르고, 자녀의 연령대도 다르고, 가정 형편도 다르고, 시댁과의 관계도 다르고, 친정과의 관계도 다르고, 이 모든 것들이 전부 전업주부로서의 친구 사이에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내가 어렸을 적에 엄마에게 왜 마음을 터놓을 친구가 없었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사소한 것들을 말할 친구가 없으니까 엄마는 나에게 그런 말들을 많이 했었다. (나는 학년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언니보다 집에 오래 있었다.)
나는 엄마에게 엄마가 되어 주었다. 엄마는 나에게 아버지에 대한 서운한 마음들, 시가에 대한 분한 마음들, 저녁 반찬에 대한 고민, 사소한 결정들까지도 말했었다. 내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앞선 것들. 그 당시에는 인터넷이 없었기 때문에 엄마는 인터넷에 물어볼 수도 없었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내가 주부가 되고 나서야 이해하게 된 것들...
아이가 유치원생이던 시절 즈음에, 나는 이제는 애엄마가 된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에게 많은 것을 퍼주기 시작했다. 아마도 어린 시절에 해결해주지 못한 엄마의 고민거리를 이제라도 해결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저녁 반찬으로 뭘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친구의 말에 식재료를 사서 택배로 보내고, 나중에 보험료를 받더라도 당장에 낼 아이의 입원비가 없어서 고민하는 친구에게 보낼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담아 보내면서 여러 가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정보들을 말해주고, 집 안에서 혼자 아이를 봐야 하는 친구를 찾아가 시간을 함께 보내주었던 것은 결국 어린 시절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해결해주지 못했던 엄마의 고민을 해결해주고 싶었던 나의 마음이었다.
그런데 이 일을 몇 년 동안 지속하고 나자, 가뜩이나 에너지가 없는 편이라 정작 우리 아이와 집안을 돌볼 여력이 남지 않아서 내가 진짜 해야 할 집안일을 미루는 데다가 내 안의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으면서 친구들의 독은 밑이 빠져있어서 채워지지 못한 채 끝이 없는 것을 느꼈다. 나는 어린 시절에 내가 해결해주지 못했던 엄마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정작 내 아이의 중요한 유년 시절을 소홀히 해버리는 심각한 직무유기를 계속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은 내가 받고 싶었다. 우리 엄마로부터 어느 정도의 엄마 노릇을 받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엄마의 엄마가 되기 위해 애쓰는 삶을 살았다. 아무리 해도 엄마의 욕구는 채워지지 않았다. 엄마가 자신의 의지로 일어서지 못한 채 계속 기대기만 했기 때문이었다. 몸만 어른이 되어버린 나는 지금은 달라져버린 실제 엄마를 구하는 게 아니라 예전 내 기억 속의 엄마와 비슷한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애쓰게 되었다. 어린 시절에 해결하지 못했던 과업들, 여전히 과거 속에 갇혀 있는 나. 몇 년 동안 반복하고 나니 결국 이 것은 나의 죄책감으로 인한 행동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실제 엄마는 예전의 엄마가 아니고, 나는 내 기억 속의 엄마를 구할 수가 없다. 그것을 깨닫기까지 나는 많은 것들을 반복해야 했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에 우리 딸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잘해줄 것을 강요했다. 나는 우리 엄마처럼 나의 아이에게 '엄마 노릇'을 떠 안겼던 것이다.
나는 우리 아이에게 '진짜 엄마'가 되어주고 싶다. 아이의 요구대로 선택해 놓고 아이를 탓하는 우를 범할 게 아니라, 아이의 요구를 적절히 들어주면서도 내가 주도적으로 선택하고, 그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도록 성장하는 엄마이고 싶다. 나는 지금의 우리 엄마처럼 노년이 되었을 때에 아이에게 못해준 것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고 싶다. 이미 놓쳐버린 시간은 어쩔 수 없지만, 지금부터라도 그렇게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