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탕(救逆湯)을 처방하고 며칠이나 지났을까, 학생 어머님께 전화가 왔다. 약을 먹은 지 4일째인데 약만 먹으면 배가 싸하게 아프더니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설사를 4번이나 했다는 것이다.
원래 이틀에 한번 변을 보던 아이가 약을 먹은 뒤로 하루에 한두 번씩 설사를 하길래 조금 걱정됐는데 선생님이 약을 복용하는 초반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여 지켜보다가 오늘은 벌써 4번째라 전화를 주셨다고 했다.
학생은 체력이 약하고 소화기가 좋지 않으니 정도 이상의 설사는 자칫하면 해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신신경질환에 구역탕(救逆湯)을 처방하는 데 유도주 선생님의 언급이 있었다.
"구역탕(救逆湯)을 먹을 때는 토하는 경우와 설사하는 경우가 있고, 上吐下瀉하는 수도 있다. 약을 복용한 후 한바탕 痰을 토하거나 끈적끈적한 대변을 쏟아내고 나면 증상이 좋아진다."
책 『유도주 상한론 강의』 (제 118조, 桂枝去芍藥加燭漆牡蠣龍骨救逆湯方)
결국 공황장애나 심한 불안장애의 경우 담(痰)을 제거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치료 방법이 되는데, 복용 초반 담(痰)이 제거되면서 토를 하거나 설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上吐下瀉)
그래서 상태를 조금 더 자세히 문진 하기 위해 상담을 진행했다. 놀랍게도 환자는 약을 먹는 5일 동안 극렬하던 불안 증세가 전혀 나타나지 않고 마음이 한결 편안하다고 했다.
화장실에 다녀올수록 오히려 시원한 느낌이 드는것 같고, 그렇지만 설사 횟수가 많아지니 공부하는데 조금 불편하다고 말했다.
그 외에도 가슴 부위 통증과 하루종일 잠이 쏟아지던 증상, 어지럼증과 이명 등도 한결 좋아져 하루 1포 복용으로 줄여 조금 더 편안하게 복용해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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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점차 2포 복용으로 증량했을 때 환자는 더 이상 복통이나 설사를 호소하지 않았다.그렇게 보름 분의 약을 3주간 복용하고 나니 초반의 극렬했던 증상은 대부분 사라졌다.
공황장애와 유사하게 나타나던 불안 증세는 약을 복용하면서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고흉통이나 기면(嗜眠), 어지럼증과 이명 역시 전체적으로 호전되었다. 한약을 복용해서 그런지 이전보다 식사량도 늘고 아침밥도 잘 챙겨 먹으려 한다는 어머님의 말도 덧붙었다.
학생은 증상이 많이 호전되어 남은 보름치의 약은 보약으로 복용하고 싶어 했다. 매사 긴장을 많이 하고 손발에 땀이 많은 것을 고민으로 들어 두 번째 약은 시호계지탕으로 짓고 치료를 무난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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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환자에서 본 것처럼 한약을 먹고 발생하는 설사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병이 풀리는 과정에서 자연히 나타나는 설사도 있으며, 이는 잘못된 처방에 대한 변명이라거나 자기 위안적 발언이 아니다.
물론 모두가 여기에 해당되지는 않는다. 병이 갖고 있는 특성, 즉 변증(辨證)을 통해 그런 경과를 예측해볼 수 있지만 사실 환자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불편하고 걱정되는 일이다.그때 조금 더 면밀히 살피고 문진하여 병이 풀리는데 그러한 과정이 꼭 필요함을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그것이 처방을 내어 치료하는 우리가 가진 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