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에 만난 한 학생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어머니와 함께 내원한 스무 살 남자 환자분은 엉덩이에 자꾸 재발하는 종기가 고민이라고 했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된 증상은 항생제를 먹으면 곧잘 가라앉곤 해서 큰 신경을 쓰지 않고 지내고 있었는데 3개월 전, 종기는 점점 크고 아프게 피부 속을 파고들더니 2주 이상의 항생제 치료에도 잘 반응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온몸 이곳저곳에도 여러 가지 피부 증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해서 얼굴에는 화농성 여드름이, 목덜미와 등, 가슴 부위에는 산발적으로 올라오는 모낭염이 발생하고 귀에는 고름이 나오는 외이도염이 거듭 재발했다.
각 증상에 따라 한 움큼의 항생제와 소염제를 먹다 보니 소화불량이 심해졌고 증상은 약을 복용할 때에만 잠시 호전될 뿐, 약을 끊으면 곧바로 재발하기를 반복했다.3개월간 여러 방법을 시도해 보다 결국 이것만이 방법은 아니지 않을까 싶어 부모님과 한의원에 내원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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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몸 전체 증상을 체크할 때 유독 특징적인 것이 있었다. 피부 염증의 분포가 "소양경(少陽經)"이라고 불리는 경혈의 유주와 매우 유사했기 때문이다.
엉덩이 외측면과 가슴, 어깨 주변, 그리고 목줄기를 따라 분포하는 모낭염과 외이도염. 아토피나 건선 등을 치료할 때 이렇게 특정 경혈을 따라 나타나는 피부 증상들은 관련 경혈의 문제를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하기에 나는 혹시 피부 외적인 증상에서도 소양경(少陽經)의 문제를 확인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때 환자와 피부 증상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피부 증상이 시작하던 5년 전 그때부터 편두통도 함께 생긴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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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원에서 편두통은 무척 흔히 만나볼 수 있는 환자군이지만 생각보다 "진짜 편두통"인 경우는 많이 없다. 우리는 편두통을 한쪽 머리의 두통, 즉 관자놀이의 지근거리는 통증이라는 뜻으로 자주 사용하나 실제 의학적으로 말하는 편두통(migraine)이란 그보다 훨씬 심각하고 특징적인 증상 양상을 가지는 질병이다.
환자분이 앓고 있던 편두통은 조짐이 있는 편두통으로, 두통이 발작하기 전 눈앞이 뿌예지는 전조증상을 시작으로 한번 발작하면 12시간 정도 지속됐다. 두통은 심한 구역과 구토 반응을 동반해서 12시간 동안 식사는 물론, 침대에 누워 꼼짝도 할 수 없을 만큼 증상이 심했다.이와 같은 두통이 2주에 한 번찾아오니 환자분 삶의 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증상이 환자가 엉덩이 종기로 고생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나타났다는 것은 꽤 흥미로운 연관 고리다. 소양경(少陽經)을 따라 나타난 화농성 염증과 편두통이라니. 하나의 큰 연관성이 보이는듯 했다
환자는 180cm가 넘는 키에 몸무게는 60kg를 넘지 않는 아주 마른 체형의 남성이었다. 얼굴색은 조금 창백하고 흉곽은 완연히 들려있어서 작년 겨울에는 갑작스러운 기흉으로 1.5L가 넘는 양의 출혈이 발생해 고생이 많았다고 했다. 유독 추위를 많이 타고 긴장을 잘해서 시험을 볼 때는 장갑을 끼고 볼 정도로 손발에 땀이 많고 오랜 수족냉증과 저혈압으로 어지럼증도 자주 느낀다고 했다.
나는 환자분에게 1달 이상의 한약치료를 강력하게 권유했다. 환자는 일단 보름치의 한약만 먹어보기로 했는데 시호계지탕(柴胡桂枝湯)에 녹용을 넣은 처방을 써 경과를 체크하기로 했다.
보름 뒤 환자의 어머니가 환자분 대신 내원하여 상담을 요청했다. 환자가 2주 만에 많은 부분에서 효과를 보았고 그래서 보름치의 한약을 3개월로 전환하고 싶다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