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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작나무 Jan 01. 2020

5. 오셋타이는 기브 앤 테이크가 아니야

# 5  히노미네오미코(日峰大神子)공원~ 23번 야쿠오지(薬王寺) 인근


운행거리 : 78km (자전거 속도계 표시 거리. 로프웨이 탑승구간, 도보구간  제외)


새벽 4시도 안돼 잠이 깼다. 밤새 젊은이들이 빈 깡통으로 축구라도 하는지 우당탕탕 소음이 이어져 잠을 설쳤다. 네 시 반에 텐트를 걷었다. 동트기 전부터 새들도 시끄럽게 울었다.


히노미네오미코(日峰大神子)해안 공원 해 뜰 무렵


동틀 무렵 바닷가를 산책했다. 낚시꾼들 서넛이 잔잔한 바다를 향해 점점이 서 있었다. 밤새 깡통 차던 친구들은 스무 살 도쿠시마 시내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안 되는 동창들이라고 했다. 모처럼 시간을 내 고등학교 때  함께 놀러 온 적 있는 바닷가에 모여  밤새 스케이트보드 연습을 했다고 했다.  몇 마디 나누어보니 순진하고 선량했다. 한국에서 왔다니까 눈빛을 반짝이며 김연아와 '카라'를 아느냐고 했다. 카라를 '제일 좋아해요.' 하는데 아는 바가 없었다. 선물이라면서 도쿠시마 '아와오도리' 댄스 축제 기념 부채와 사탕 세 알도 내게 주었다. 젊은이들과 수다를 떠느라 시간이 지체됐다. 그러나 불안하던 마음은 많이 가벼워졌다.  오전 7시 45분 출발했다.

어제 어둠 속에서 막막한 기분으로 넘던 언덕을 다시 거슬러 올랐다. 벌써 두 번째 야영을 해냈다. 

18번 온잔지(恩山寺)까지는 직선거리 7km 남짓. 바닷가에서 언덕을 넘어 고마쓰시마(小松島) 시청을 지나 바닷가로 뻗은 120번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달리다가 들판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접근하는 길을 잡았다. 모내기 마친 논들을 지났다.  우리나라보다 모내기가 조금 빠른 것 같았다. 아침 8시 반 18번 온잔지(恩山寺)에 도착했다.  오르막길에 다락정이라는 간판을 단 젠콘야도가 있었다.

순례자를 위한 젠콘야도(善根宿)


19번다츠에지(立江寺)까지는 4.5km. 언덕 위 온잔지에서 내려와 마을에서 우회전한 뒤 남쪽으로 달리다 강을 건너 있는 마을 복판에, 평지에 있다. 갑자기 날이 흐려지며 바람도 거세졌다. 다츠에지(立江寺) 본당 앞에는 동일본 지진 희생자를 위한 모금함이 있었다. 500엔 동전을 하나 넣었다. 그 엄청난 재난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이제 파괴된 후쿠시마 원자로에서 끊임없이 분출되는 방사성 물질은 일본을 넘어 전 세계의 문제가 되었다. 절 옆에 있는 상가는 대부분 문이 닫혀 있었다. 이무렵부터 수도꼭지에서 2리터 페트병에 물을 받아 그냥 마시기 시작했다. 소독약 냄새도 없고 물 맛도 괜찮았다.


20번 가쿠린지(鶴林寺)까지는 15km. 가쿠린지(鶴林寺)도 그다음 21번 타이류지1(太龍寺)도 지도에 짙은 녹색으로 표기된 산 위에 있다. 등고선은 마음 속에 먼저 산그림자 보다 잩은 음영을 드리운다. 가쿠린지 아래 가츠우라(勝浦) 마을까지는 순조로웠다. 언덕을 넘은 뒤 강을 끼고 평탄한 길을 한동안 달렸다. 문제는 마을에서 가쿠린지로 오르는 길이었다. 까마득한 산 위로 도로 표시가 나 있다. 할머니 한 분이 버스정류장에 앉아 계시길래 가쿠린지까지 얼마나 가야 하는지 물어보았다. '3 키로메타루(3km)' 거두절미 손으로 산 꼭대기 쪽을 가리켰다. 도보가 3km고 자전거 길은 5km다. 무릎이 꺾이는 기분이었다.  점차 숨이 가빠지며 가슴을 날카로운 연장으로 찔러대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다음은 머리 위에 샤워기라도 틀어놓은 듯 땀이 쏟아졌다. 해발 190m 지점까지 오르다 자전거에서 내렸다. 부질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본능적으로 '좀 더 편하고 짧은 길'을 찾아보았지만 소용 없었다. 

밀림을 방불케 하는 울창한 삼나무 숲그늘과 습기 때문에 이끼류 식물들이 파랗게 깔려있었다. 어제, 쇼산지를 오를 때처럼 길가 비탈에 자전거를 묶어두고 등산 모드로 산을 올랐다. 산길을 걷는 기분은 일본 산이라고 다를 게 없다. 다만 삼나무 일색의 숲, 높은 습도 가 조금 서먹할 따름이다.


가쿠린지(鶴林寺)는 거의 해발 600m 지점에 있었다. 관악산 정상에 가까운 높이다. 정오 무렵 절에  도착했다. 코오보오 대사가 이 절에 왔을 때 학들이 금빛 날개로 지장보살을 지키고 있었다는 전설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참배를 마치고 하산을 시작하자마자 자전거를 두고 올라온 것을 후회했다. 절 바로 아래 산을 넘어 21번 다이류지(太龍寺)로 가는 길이 뻗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내려가 자전거를 끌고 와야 했다. 번번이 잔꾀는 대가를 치른다. 최대한 빨리 가겠다고 올라온 도로가 아니라 도보 순례길을 택했다. 내심 지름길을 선택했다며 뿌듯해했지만 마을 아래까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뻗은 길이었다. 자전거를 묶어둔 지점까지는 마을 맨 아래부터 다시 거슬러 올라야 했다. 거의 탈진한 상태로 자전거가 있는 곳까지 올라 인적이 드문 길가에 주저앉아 아침에 싸 둔 주먹밥을 먹었다. '에잇... 제길...'  산사에 들러 반야심경을 독송하고 내려온 사람답지 않게 거친 푸념을 늘어놓고 있는데 산길을 올라오던 미니 트럭이 곁에 와서 섰다.'너 밥 먹냐? ' 아무리 인적이 드문 산길이라고 해도 길가에서 밥을 먹는 게  겸연쩍어 도시락을 닫았다. '힘든데 이 차에 타라'  운전자는 육십 대 중반쯤 초로의 사내였다. '다이류지로 가는 갈림길까지 태워줄게. 다이류지에는 로프웨이가 있다. 1,300엔 내면 자전거도 실어줘. 자전거는 내려갈 때는 좋은데. 올라갈 때 힘들지. 나도 고치까지 자전거 순례한 적이 있다.'


'무척 친절하시네요' '오세타이(お接待)라고 알아? 그건 기브 앤 테이크가 아니야. 나 역시 누군가에게 받은 것을 그냥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거야. 당신도 그렇게 하면 돼. 오헨로상들에게 오세타이 할 수 있는 게 오히려 고마워.'

무위당 장일순 선생이 신세는 앞으로 되갚지 않고 옆이나 뒤로 갚으면 된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시코쿠 사람들은 순례자를 코우보우 대사(弘法大師)로 여기면서 시주를 하고  어떤 이들은 자기 집에 데려가 재우기까지 한다. 천년 넘은 섬의 전통이란다.  21번 다이류지(太龍寺)로 향해 가파른 언덕을 20분가량 다운힐 했다. 속도계가 거의 시속 50km까지 육박했다.  짜릿했다. 마을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숲길. 설악산처럼 깊은 산중이다. 강변까지 내려온 뒤 도보 순례길은 바로 강을 건너 맞은편 산길로 향해 있었다. 자전거는 강변도로로 우회해야 했다. 맞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어렵게 어렵게  다이류지로 오르는 로프웨이 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만 한 케이블카. 우리나라에서는 모두 케이블 카라고 하지만 일본에서 케이블카는 바닥에 깔린 케이블이 끌어올리는 운송수단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다이류지는 해발 617m 산록에 있었다. 참배를 하고 나니 오후 네 시. 마음이 또 바빠졌다. 로프웨이와 반대쪽으로 나 있는 도로를 따라  하산했다. 경사가 너무 급해서 도중에 몇 번 자전거에서 내려 자전거를 끌고 걸어야 했다. 사람이 잘 안 다니는 길인지 포장 흔적은 있지만 곳곳에 파이고 토사가 쌓여 있었다. 인적은 없고 맹수가 나타나지나 않을까 싶도록 그늘이 짙고 어두운 숲이었다. 사람이 그리웠다. 좋은 사람 친한 사람이 아니라 그저 사람. 사람 때문에 상처 받고 늘 떠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되뇌던 게 생각났다. 한참 달려 인가가 있는 마을을 만나니 심리적으로 안정이 됐다. 일단 여섯 시까지 달려보고 노숙이든 호텔이든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 되어 언덕을 넘고 산중으로 난 도로를 달렸다.

 

오후 4시 반 22 뵤도지(平等寺)에 도착했다. 지도상으로  다이류지로부터 13km. 여기서도 조금 신기한 일을 겪었다. 흐린 날씨 때문인지 지친 탓인지 울적한 마음으로 절을 향해 걷다가 야마시타상을 또 만났다. 네 번째 만난 것이다. 그도 마치 친동생이라도 만난 듯 활짝 웃으며 반가워하며 참배를 마치고 문 앞에서 만나자고 했다. 어디서 잘 생각이냐 물으니 오늘도 그는 예의 '도꼬데모 이이 데스요(어디라도 상관없어) ' 이렇게 쿨하게 대답하며 웃었다. 어딘들 어떠랴. 나도 금방 낙관적인 기분이 되었다.

다시 만난 야마시타 상

우리는 콧노래라도 부르듯이 경쾌하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평탄한 시골길을 달렸다. 도중에 그는 편의점 앞서 멈추더니 뭔가를 먹어야겠다며 컵라면을 사들고 나와 길가에서 서서 먹었다. 담배도 한 배 피워물더니 그는 내게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무슨 일을 하냐. 왜 88개 사찰 일주(일본 사람들은 하치주 하치 마와리라고 했다)를 하냐? 가족은 어떻게 되냐...

나도 그에게 물었다. 나이는 56세. 집은 다카마쓰. 아들은 26살 도쿄에 살고 딸은 22살 교토에 산다고... '부인은?' 그는 쓸쓸하게  웃으며 헤어졌다고.

잠시 달리던 그가 길가에 있는 묘지에 서더니 들어가 어떤 묘 앞에 가 향을 사르고 묵상을 했다. 할아버지 무덤이라고 했다. 여기가 그의 고향인지, 가족들과 헤어진 채 순례길을 하염없이 돌고 있는 이 사내. 쓸쓸하다.


여섯 시가 다 돼 가고 있어. 어딘가 잘 곳을 정해야 할 시간이다. 고야산(高野山)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휴식소가 있었다. 그러나 이미 도쿄에서 온 순례자들이 텐트를 펼치고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기념사진만 찍은 뒤 잘 곳을 찾아 달럈다. 날도 완전히 어두워졌다. 야마시타상이 함께 하고 있으니 어쩐지 느긋했다. 어딘들 텐트 치고 몇 시간 잠 잘 곳 없으랴. 야마시타 상의 '어디라도 괜찮아(도코데모 이이 데스요)' 하는 낙관이 내게도 옮은 모양이었다. 터널도 세 개를 통과하고 힘겹게 오른 언덕 위 공중전화에서 그가  어딘가로 전화통화를 길게 했다. 다른 이들 순례기에서 읽었던 하시모토 씨가 운영하는 폐 버스 젠콘야도에 가기 위해 전화를 건 것이었다. 일곱 시도 훨씬 지나 버스에 도착했다. 버스는 23번 야쿠오지(薬王寺)에서 멀지 않은 제법 번화한 마을 초입 도로변 공터에 있었다. 식당을 운영하는 하시모토 씨는 순례자들에게 도시락을 무료로 제공하고 여성들은 식당 이층, 남성들은 이 버스에서 잘 수 있게 봉사하고 있다고 한다.

하시모토 젠콘야도. 남성 숙소는 폐버스다

버스에 도착하니 이미 스물네 살 동갑내기 두 순례자가 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뜻밖에도 키 큰 젊은이는 한국사람이었다. 대전에 사는 용이 군과 순례길에 만나 열흘을 함께 걸었다는 도쿄에서 온 야마구치(山口). 이들은 캄캄한 밤에 자전거를 타고 나타난 우리들을 신기해하며 반겨주었다. 용이는 준비 없이 떠나와 열흘을 걸었는데 다리를 다쳐 다음날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했다. 노숙을 하거나 폐교의 강당에서도 잠을 잔 이야기. 짧은 밤 시간 동안 무척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특히 고마운 것은 한 장 짜리 순례자를 위한 안내지도였다. 한 장 안에 시코쿠 전도가 그려져 있고 뒷면에는 절 사이의 거리, 절이 있는 해발고도가 산 모양으로 표시돼 있어 앞으로 다가올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한국 라면을 먹고 싶다길래 가지고 있던 라면 세 개를 끓이고, 밥도 코펠 가득 새로 지어 넷이서 함께 나눠 먹었다. 모두들 맛있다며 허겁지겁 먹었다. 열흘 넘게 걸었다는 두 젊은이. 야마구치 군은 발에 잡힌 물집을 터트리며 치료를 하고 있었다. 용이는 다음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사회에 진출하기 전 시간을 내 순례를 하고 있었다. 야마구치 군은 취직을 안 하고 인생의 목적을 찾겠다고 순례를 하고 있다는데. 아침에 150엔짜리 단팥빵 작은 빵 세 개 들어 있는 걸 사서 아침에 하나 점심에 하나 저녁에 하나... 이렇게 하루를 버틴다고 했다. 음료는 물만 마시고.

하시모토 버스 젠콘야도에서 만난 한국 청년 용과 도쿄에서 온 야마구치

나는 버스 옆에 텐트를 치고 잤다. 공터에 버려진 듯 서있는 버스였지만 순례자들에게는 참 고마운 공간이었다. 야외 수도도 있고 수도꼭지를 공중에 매달아 찬물 샤워도 할 수 있었다. 저녁을 먹고 샤워를 했다. 바람이 제법 거셌다. 가림막도 없었지만 칠흑 같은 어둠 속이라 상관없었다. 조금 추웠지만 상쾌했다. 

오늘 하루도 산을 넘으며 100킬로미터가량 달려와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용이는...'여기 참 이상해요. 매 시간마다 사이렌이나 음악이 나와요.' 했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동네마다 시보가 울렸는데 나는 달리면서 그냥 무심코 지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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