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하시모토 씨 버스 젠콘야도~무로토 시 석양의 언덕 야영장
운행거리 75.5 km
새벽 3시. 누군가 버스 밖으로 나와 소변보는 소리에 잠이 깼다. 4시 반이 넘으니 도로에 차들이 다니기 시작한다. 새벽 어스름녘 자전거를 타고 편의점 로손에 가 화장실을 이용했다. 다들 아침을 안 먹는다고 해서 혼자 밥을 지어 미역국에 말아먹고 남은 밥은 도시락을 쌌다. 단 하룻밤 한 공간에서 함께 잤을 뿐인데 가족 같은 일체감이 느껴졌다. 용이는 7시 45분 전철로 도쿠시마, 오사카를 거쳐 간사이 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돌아간다며 출발했다. 열흘 동안 걸어서 사찰 23개에 들러 참배를 하며 그도 생각이 많았을 것이다.
자전거 순례를 하자면, 간사이공항으로 오는 비행기가 훨씬 더 많을 테니 자전거 포장을 풀지 않은 채 전철로 도쿠시마까지 온 뒤 도쿠시마에서 자전거를 조립해 인근 바닷가 야영장을 이용하고 1번 료잔지부터 순례를 시작하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방명록에 하시모토 상에게 고맙다는 글을 남기고 야마시타 상과 함께 로손에 들러 용이가 준 사찰 인근 젠콘야도와 휴식소 목록을 복사해 한 부씩 나누어 가지고 출발했다.
23번 야쿠오지(藥王寺). 일요일이라 절을 찾은 사람들이 많았다. 절 옆에 유명한 온천이 있었다. 야쿠오지가 88개 사찰 가운데 도쿠시마현 마지막 사찰이다. 이제 시코쿠 섬 네 개의 현 가운데 남쪽에 가장 넓게 자리 잡고 있는 고치현으로 넘어간다.
액막이를 해준다는 계단을 올라 탑이 있는 데까지 오르니 바닷가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일본에는 남자 42세, 여자 33세에 액이 끼어 있다고 여겨 액막이 풍습이 있다고 한다. 코우보우 대사도 42세 때 자신과 중생들의 제액을 위해 이 절에서 기도를 했다고 한다. 액(厄)이나 삼재(三災) 같은 말들에 대해 어릴 때는 의식할 이유도 없었지만 살다 보니 이게 마냥 무시할 게 아니다 싶은 순간들이 있다. 지난 3년 동안이 내게 이른바 삼재 기간이었고 그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실제로 힘겨운 일이 많았다. 삼재 기간이라는 것을 안다한들 그것을 뛰어넘거나 피해 갈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아, 내가 지금 인생의 어느 지점을 통과하고 있구나' 이런 정도의 생각이 위안은 될 수도 있겠다.
참배를 마친 뒤, 야마시타 상이 하시모토 씨 식당에 가서 인사를 하자고 했다. 하시모토 씨의 식당은 넓은 주차장을 끼고 있는 3층 건물이었다. 야마시타 상은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 하시모토 씨 부인으로 보이는 여자분에게 간밤에 편안하게 잠을 잤다며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비록 허름한 옷차림의 그 사내가 순진한 표정과 말투로 진심을 다해 감사의 마음을 표하는 걸 보면서 나는 감동했다. 이제까지 남들에게 은혜 입은 일이 한둘이 아닐 텐데 건성으로 지나쳐 오지는 않았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와 야마시타상은 늦게 도착해 잠만 잤지만, 미리 도착한 용이와 야마구치 군은 호화로운 도시락 저녁을 대접받았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날마다 하시모토 씨는 이렇게 시주를 하고 있었다. 스스로 자임한 일일 것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자기 쓸 돈을 버는 일만으로도 버겁다. 수입보다 소비 욕망은 늘 더 크다. 그런데, 그 욕망 때문에 평생 허기진 상태로 분주한 것보다 스스로 가치 있다고 여기는 일에 자기를 쓸 수 있다면 우리는 욕망의 노예가 아니라 가난하지만 기품 있는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잖을까.
23번 야쿠오지에서 24번 호츠미사키지(最御崎寺)까지는 해안으로 미끈하게 뻗은 55번 국도를 줄곧 달리게 되어 있다. 호쾌한 바다를 보겠구나 기대도 됐다. 오르내림은 덜하겠지. 마을을 막 벗어난 지점에서 야마구치 군을 만났다. 그는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호스에서 쏟아지고 있는 쉼터에서 흡족한 표정으로 물을 마시며 내게도 물을 받아가라고 했다. 잠시 뒤 터널 아래 오르막 앞에서 먼저 떠났던 야마시타 상을 만났다. 그는 내게 또 앞서 가라고 했다. 나도 대수롭지 않게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지금까지처럼 또 만나고 헤어지는 일 반복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이 그와의 마지막이었다. 연락처도 나눠갖지 않고 이렇게 영영 헤어지고 말았다.
여기서 길을 두 갈래로 나뉜다. 산으로 뻗은 옛길과 바닷가로 새로 난 '미나미아와선라인' 나는 망설임 없이 바닷가 길을 택했다. 산길에 대한 공포가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바닷가 길도 한동안은 종종 마을을 지나친다. 일부러 자동차 도로를 버리고 마을 안쪽으로 달려보았다. 오래된 목조주택들이 늘어서 있다. 우리나라의 시골집들보다 단단해 보였다. 시골에 살 때 가장 부담스러웠던 것이 등유 보일러 기름값이었다. 아무리 절약을 해도 겨울에는 매월 약 2 드럼, 4~50만 원가량의 비용이 들었다. 서울로 이사 온 뒤로, 밀폐된 아파트가 적응이 안돼 갑갑하기는 했지만 시골에 살 때보다 훨씬 더 따뜻한 겨울을 났는데도 난방비가 10만 원 도 안 나와 깜짝 놀랐다. 노인들 일색인 시골에서 겨우 전기장판 위에서 동사를 면한 채 겨울을 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저렴하고 효율적인 난방과 단열. 정부와 지자체가 힘써야 할 부분 아닐까.
지도상으로는 단조로운 해안선이 그어져 있지만 곳곳에 작은 만과 해수욕장들이 있었다. 우리처럼 그냥 해수욕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대개가 서핑보드를 타고 있었다. 오후 두 시, 시라하마 해수욕장(白浜海水浴場) 옆 벤치에 앉아 도시락을 먹고 있는데 족히 70리터는 돼 보이는 대형 배낭을 메고 걸어오던 순례자가 나를 보더니 지금부터 20km는 물도 자동판매기도 없으니 준비를 해야 한다고 일러주고 지나갔다. 자신은 오늘 아침 무로토에서 출발했다고. 무로토. 시코쿠 섬에서 남쪽으로 뾰족하게 뻗은 두 개의 곶 가운데 하나. 오늘의 목적지다. 20km.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열심히 밟으면 한 시간 안에 도달할 수도 있겠지 싶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막막한 바닷길, 날도 꾸물꾸물 흐려지고 바람도 점차 거세지고 있었다. 끝도 없이 이어진 가파른 산과 깎아지른 벼랑 위로 아슬아슬하게 나 있는 해안길. 가끔 스포츠카를 탄 아베크족들이 지나쳐갔다. 얼마나 호쾌한 드라이브 코스이겠는가. 자전거는 바람을 뚫고 힘겹게 나아갔다. 날씨에 따라 기분은 민감하게 반응한다. 흐리면 덩달아 마음도 가라앉는다. 일요일 오후, 다음날 출근할 것도 아닌데 마음이 어쩐지 어수선했다. 두어 시간 달린 끝에 작은 마을을 만났다. 무로토 시(室戸市) 경계가 멀지 않은 지점. 사키하마(佐喜浜)라는 마을. 편의점도 있다. 물 한 통을 사 편의점 앞 의자에 앉아 마시며 쉬고 있으려니 옆에서 담배를 피우던 할머니가 말을 건다. 우두커니 앉아 물끄러미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보는 모습이 쓸쓸하고 지쳐 보인다. 여든은 되어 보이시는데 꽤 지적인 분위기가 물씬하다. 자신은 교토에 살다가 은퇴하고 이곳에 왔다고 했다. 마을이 큰 것도 아니고 온종일 먼바다를 눈이 짓무르도록 바라보면서 노년을 보낼 생각을 하니 덩달아 외로움이 느껴졌다.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 니어링 부부처럼 부부가 함께 죽는 순간까지 노동을 하고, 이웃에 마음을 나눌 이웃들이 함께 살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무로토 곶의 최남단 조금 못 미친 지점에 코우보오 대사가 수행했다는 동굴이 있었다. 뭔지 모르고 지나치다가 관광버스가 있길래 들러보니 천연동굴에 그런 설명이 쓰여 있었다. 몇 년 전, 수운 선생이 수행했다는 천성산 적멸굴에 가 본 적이 있다. 내원사로 오르다가 왼쪽으로 산비탈을 몇백 미터 오른 지점에 있는 천연 암굴. 안쪽에 암반수가 솟아오르던 그리로 우리를 안내했던 표영삼 선생은 명상수련을 하던 수운 선생이 산속에 들어가 기도를 한 뒤에 비로소 '깨달았다'고 하셨다. 학습과 명상이 이성적인 수련이라면 기도는 어떤 초월적인 힘에 대해 온전히 의식을 의탁하는 것일 텐데, 차원을 넘어서는 일이 정말 가능하다면, 어쩌면 이성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경지인지 모르겠다.
무로토곶(무로토 미사키 室戸崎) 최남단에는 나카오카 신타로(中岡愼太郞)라는 비장한 표정을 한 사내의 동상이 남쪽 바다를 바라보며 서있다. 19세기 에도막부 시대의 지사라고 하는데 그 시대 일본의 역사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니 통과.
저녁 여섯 시가 다 돼 무로토 시(室戸市) 삼각뿔의 최남단 지점에 도착했다. 남쪽으로 내려온 때문인지 양명한 지세 탓인지 볕도 따사롭고 기온도 높았다. 삼각뿔의 꼭짓점을 도는 순간 북사면에서 남동사면으로 돌아서 햇볕을 받게 되니 그런 것 같았다. 아열대 식물들이 가로수로 늘어서 있고 바닷가 공원도 잘 갖춰져 있었다. 발음도 어려운 24번 사찰 호츠미사키지(最御崎寺)는 해변에서 살짝 오르막 위에 있었다. 이미 저녁 6시가 넘어 참배는 아침에 하기로 했다. 무로토곶에서 1.5km 지점에 야영장이 있다고 해 방심한 채 달려왔는데 GPS는 저녁놀 언덕 캠프장(유히가오카 夕陽ケ丘 キャンプ場 )을 향해 까마득한 오르막을 가리키고 있었다. 산 위로 올라가면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 같았다. 먹을 것이라고는 쌀과 라면 한 개 그리고 아내가 싸준 황태와 김, 먹다 남은 김치가 조금 남아있었다. 호츠미사키지 절 입구까지 끌다 타다 반복하면서 고도를 높였다. 아슬아슬한 고도감이 느껴지는 길이다. 오를수록 바다 쪽으로 점점 더 극적인 전망이 펼쳐졌다. 숨이 차고 땀은 비 오듯 흘렀다.
절을 지나 5백 m가량 오르니 다시 완만한 오르 내리막이 반복 되다 드디어 캠핑장 입구 표지가 나왔다. 일요일 저녁 7시. 아무도 없었다. 안내판에 오토캠핑 1박 2천엔, 일시이용 1천엔, 텐트사이트 1천엔 일시 이용은 5백 엔이라고 되어 있다. 야외 취사장과 바비큐 시설. 화장실에는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깊은 산속에서 혼자 야영을 해야 했다. 넓은 야외 취사장을 독차지하고 있으니 밤에 비가 쏟아져도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지도상으로 74km. 자전거 속도계에 표시된 이동거리는 75.5 km를 달렸다.
텐트를 치고 밥 지을 준비 해 놓고 샤워와 빨래를 하고 밥을 짓고 나니 완전히 어두워졌다. 헤드램프를 켜고 밥을 먹었다. 시코쿠의 깊은 산속에서 맞는 밥은 적막하가 그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