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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기자 May 16. 2021

당신의 언어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다른 이의 언어를 먼저 배웁니다. 어릴적에는 '부모님의 언어'를 따라 살고, 학창 시절에는 '선생님의 언어'에 따라 삽니다. 때로는 친구들의 언어에 큰 영향을 받기도 하죠. 취직을 해서는 상사의 해독 불가능한 언어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무심코 던진 동료의 언어에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점차  '나의 말', '나의 언어'는 잊어버리게 됩니다. 가끔을 너무 황당해서 할  말을 잃어버리는 상황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이 계속 되다 보니 점점 말수도 적어지고, 아예 상대방과의 대화를 거부하기도 합니다.


 말을 해봤자 말이 안통하는 경우, 허공에 돌아디니는 말이 될 바에야 그냥 '말을 말자'가 되버리고 마는거죠. 한다 하더라도 혹시 내가 '이 말'을 해서 상대방이 싫어하면 어떡하지? 소통이 안되면 어떡하지? 갖은 걱정들이 머릿속을 멤돕니다.


 하지만 말은 생각이고, 때로는 그 사람의 전부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말이 생각을 규정하기도 하죠. 그래서 부정적인 말보다 긍정적인 말을 많이 하라는 데도 어느정도 이유가 있는 셈입니다.


 말을 유창하고, 유려하게 '잘' 해야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나의 현재 상태와 나의 생각을 그대로 잘 전달할 수 있으면 됩니다. 상대방이 기분나쁘지 않을 정도로 말이죠. 이후에 그 사람이 그것을 받아들이는지, 혹은 기분을 상하게 했는지는 이미 당신의 영역이 아닙니다.


 화려한 수사가 겉모습은 좋아보이지만, 때로는 담백한 콘텐츠의 힘을 따라가기 힘듭니다. 그래서 길고 화려한 말보다 때로는 말도 짧고 담백한 편이 나을 때가 있습니다.


 엎질러진 물을 되담을수 없듯이, 한번 내뱉은 말은 다시 주워담을 수 없습니다. 그만큼 신중해야 하지만, 또 어떤 의미로는 일단 뱉은 말은 뒤돌아 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당신의 올바른 생각 하에서 한 말이라면요.


 그래서 우리는 늘 나의 내면을 살뜰히 챙기고 살펴보는 일이 중요합니다. 역설적이지만, 말을 하기 위해서는 말을 줄여야 진정하게 하고 싶은 말이 떠오릅니다. 말을 하는데도 에너지가 들어서, 진짜 내면에서 나오지 않는 '가짜 말'(때로는 거짓말이 되기도 하죠)을 내뱉다 보면 내면이 황폐해집니다.


 그러니 지금 잠잠히 내 안을 들여다보고, 나에게 말을 걸어봅니다. 내가 지금 원하는 것은 뭔지, 나의 걱정거리는 뭔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뭔지, 하기 싫은 것은 뭔지. 자기 자신과의 대화는 외롭다고들 생각하지만, 그 누구와의 대화보다 더 재미있을수 있습니다.


 '나의 언어'로 나와 대화를 하다보면, 뜻밖의 내 안의 강인함을 발견할 수도 있고, 몰랐던 나의 연약함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런대로, '나와의 대화'는 겉포장지를 다 드러내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내면을 바라보고 나에게 말을 걸다보면, 모든 고민이 해결된다고 할 수 는 없지만,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되고 알곡만 남습니다. 오늘도 조용히 눈을 감고, 나에게 말을 걸어 봅니다. 잠잠하게 그리고 조용하게. 오늘은 어떤 '나의 언어'를 발견할지 기대하면서.  


-제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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