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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슬 Nov 01. 2020

아주 많은 이름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무루(어크로스)」

   이슬아.

   이렇게 부르니 온몸에 소름이 돋아. 너도 그렇지? 질색하는 네 표정이 안 봐도 눈에 훤해. 왜 너무 친하면 성을 빼고 이름만 부르는 게 어색한 걸까.


   너를 부르는 호칭이 ‘김이슬’에서 ‘이슬아’로 바뀔 때 나는 뭐랄까, 우리가 아주 공적인 관계가 된 듯한 기분이 들어. “야, 김이슬!”에게 할 수 있는 이야기와 “이슬아.”에게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낮과 밤처럼 달라. 어느 쪽이 낮이고 어느 쪽이 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별명을 가지고 싶었어. 초등학교 시절에도, 중학교 시절에도. 나이키 운동화보다 최신형 엠피쓰리보다 그게 더 탐났어. 너무 친해서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는 게 어색한 사이를 동경했던 것 같아. 그런 관계 속의 묵직한 애정과 경쾌한 미움, 그것들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깊은 신뢰를. 하지만 결국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아무런 별명도 얻지 못했어.


   학교에 다니는 내내 나는 공부보다 친구를 더 어려워했어. 수학이나 영어도 물론 어려웠지만 거기에는 정답이 있잖아. 사람의 마음에는 공식도 규칙도 없고, 그래서 그걸 이해하기 힘든 순간이 많았어. 누군가와 친해지기까지 남들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학교는 잔인한 세계인 것 같아.


   중학교 2학년 때였나, 열이 심해서 하루 결석한 적이 있었어. 다음 날 필기를 베끼려고 같은 반 친구에게 프린트물을 빌리는데 그 애가 놀란 얼굴로 묻더라.


   “너 어제 안 왔었어?”     

  


   포토샵 프로그램에는 Opacity라는 기능이 있어. 사진이나 그림의 투명도를 조정하는 기능인데 0퍼센트에 가까울수록 투명해지고 100퍼센트에 가까울수록 선명해져. 그 시절의 나는 50퍼센트 정도의 Opacity값으로 존재했던 것 같아. 너무 선명해지는 게 두려웠거든. 

   나를 나로 만드는 것들의 절반을 숨긴 채 우정을 배웠어. 어떻게든 무리에 속하기 위해, 거기에서 탈락하지 않기 위해. 싫어하는 것을 좋아하는 척하거나 좋아하는 것을 싫어하는 척하며 얻어 낸 우정은 천 원짜리 유리컵처럼 얇고 가벼웠어. 방심하는 순간 가차없이 깨져버렸지.

  

   (...) 또래 집단의 관계로부터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때에야 비로소 나는 내가 바라는 우정의 모습과 관계의 이상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ㅡ(p.67)


 또래 집단의 관계로부터 끊임없이 나를 증명해야 했던 시간. 나는 나의 청소년기를 그렇게 기억해. 십대에 사귄 친구들 중 이제 내게 남은 건 딱 하나야. 나는 여전히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어렵고, 그래서 가끔 누군가와 능숙하게 가까워지는 너를 볼 때면 그 모습을 몰래 시기해. 그건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흉내 낼 수 없는 영역이라서. 외로움을 아는 사람만 가질 수 있는 따뜻함이라서.



   너는 내게 가장 많은 별명을 선물한 사람이야. 네가 나를 부르는 이름 아닌 다른 모든 호칭이 나는 좋아. 언뜻 듣기엔 간지러운 애칭 같은 다정이라는 별명도(이 이름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자세히 하기로 하자), 하대장(아... 내년에는 진짜 대장내시경 해야 하는데...) 같은 우스꽝스러운 별명도 사실은 좋아. 하지만 기다렸다는 듯 넙죽 받기는 왠지 민망하니까. 일 년에 한 번 보는 친척 어른이 건네는 용돈처럼 조금은 머쓱하게 네가 지어주는 별명들을 주머니에 찔러 넣곤 해.


   불행했던 그 시기에 내 마음의 한 부분은 성장을 멈췄던 것 같다. 친구를 만드는 일에만 집착한 나머지 내가 어떤 친구를 바라는지, 나는 어떤 친구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 바람에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시행착오가 많았다. ㅡ(p.67)


   나도 고무나무 키우거든. 내가 키우는 건 고작 내 손바닥보다 조금 커. 얘는 우리 집에서 가장 게으르게 자라는 식물이야.

   그래도 아주 가끔 이 작고 느린 식물의 성장을 깨닫는 순간이 있어. 내 마음의 한 부분은 고무나무와 같은 속도로 다시 자라고 있는 것 같아.


   너를 만나고 나는 우정을 다시 배웠어. 나를 숨기거나 버리지 않고도 우리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어. 싫은 걸 싫다고 말해도, 다른 걸 다르다고 말해도 그게 우리 관계를 해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이제 내게는 있어.     

   너랑 같이 있을 때 나는 마음껏 내가 되고 경솔하게 선명해져. 자꾸자꾸 선명해져서 100퍼센트의 내가 되었을 때, 내 옆의 너 역시 그랬으면 좋겠어. 나의 시행착오를 지켜봐 준 너에게 그때는 더 많은 이름으로 더 깊은 우정을 전할게.




   (하현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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