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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슬 Oct 08. 2020

미워해 안심해 희망해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임솔아(문학과지성사)」

  다정아.

  나는 자주 우리가 신기해. 우리가 이렇게 계속 우리인 게.


   우리는 닮았고 또 다르지. 너무 닮아서 너무 다르다는 말을 너는 이해할 거야. 내가 우리 사이에 느끼는 감정들 역시 너는 알 거야.


   나는 혼자인 시간이 많았고 너는 혼자일 시간이 없었어. 나는 혼자가 좋으면서 싫고 너는 혼자가 편하지. 나는 혼자일 자신이 없고 너는 혼자일 수 있어. 나는 혼자라고 느끼고 너는 혼자이고 싶어 해. 나는 외로움을 그만 알고 싶고 너는 외롭고 싶어.


   너는 사실 외로운 게 뭔지 잘 모르겠다고.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널 조금 미워하고 조금 부러워하고 조금 안심했던 것 같아.

   너희 집의 4인용 식탁을 떠올리며 부러워하다가 네 방에서 문을 꼭 닫고 있어도 들리는 거실의 티브이 소리, 정확히는 미스터 트롯을 시청하는 소릴 떠올리다 안심해.

   네가 나의 외로움을 결코 이해할 수 없으리란 사실이 밉다가도 네가 절대 몰랐으면 하는 외로움을 생각하며 나는 다시 안심해.


    서로의 혼자임을, 혼자일 수 없음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우리는 계속 얘기하지. 나의 끝없는 빈자리와 너의 계속되는 부대낌에 대해. 그러면서 서로의 결핍을 조금씩 희석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게 가능하다면.

    

   넘치는 것을 또 다른 결핍으로 이해하기까진 시간이 좀 걸렸어. 내 몸 여기저기에 남은 웅덩이에만 집중하느라 몰랐던 것 같아. 모르고 싶었던 거 같아.

   내게만 없는 것, 나만 가지지 못한 걸 생각하면 온전해 보이는 네가, 울타리 안에 속한 것 같은 네가, 조그만 틈 하나 없이 꽉 차 보였어. 그리고 그건 내가 생각하는 결핍과는 다른 모양이었어.



   나 요즘 화분 키우거든. 고무나무고 꽤 커. 너한테 말한 적 있지?


   얘네는 이 주에 한 번씩 물을 주는데 그게 야박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 그럴 때면 물을 정말 담뿍 주게 돼.

   그러다 어제도 화분에 물이 넘친 거야. 무거운 화분을 들고 화장실로 가서 기껏 준 물을 좀 덜어내고 바닥에 흐른 건 휴지로 한참 닦았지. 너무 막무가내인 나를 탓하면서.

   그러면서 네 생각이 난 거야. 꽉 차 있는 네가 그래서 포기할 수밖에 없던 건 뭐였을지.


   대화가 필요 없는 저녁이나 조용한 새벽, 표정 없이 보내는 정오나 나만 생각하는 아침. 어쩌면 너는 하루의 모든 시간을 절반만 보냈던 걸지 몰라. 온전한 하루를 가져본 적 없었던 걸지 몰라.

   

   그것은 네게 얼마만큼의 결핍이었을까.



   임솔아 시인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이란 시집엔 모래라는 시가 있어. 그 시는 이렇게 시작해.


   오늘은 내가 수두룩했다.

   스팸 메일을 끝까지 읽었다.


   난간 아래 악착같이 매달려 있는

   물방울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떨어지라고 응원해주었다.   

  

   나의 스팸 메일함에는 너무 많은 내가 있고, 너의 스팸 메일함에는 너만 없어. 나는 이런 나라도 나를 많이 가졌는데, 그렇다면 너는……

    

   그리고 이 시는 이렇게 끝나.     


   오늘은 내가 무수했다.

   나를 모래처럼 수북하게 쌓아두고 끝까지 세어보았다.

   혼자가 아니라는 말은 얼마나 오래 혼자였던 것일까.


   서로의 결핍을 절대 희석해주지 못해서 우리는 각자의 결핍을 서로에게 조금씩 빌려주는 방식을 택한 게 아닐까.


   내게 나밖에 없을 때 너를 찾는 것처럼, 그때 네가 들려주는 너의 이야기를 들으며 너무 많은 나를 정리하는 것처럼.

   그리고 네가 너 없이도 꽉 차서 흘러넘칠 때, 나는 널 혼자인 채로 둬. 나의 고무나무가 찰랑거리는 물을 모두 흡수할 때까지, 내 화분이 화분만의 시간을 잘 보내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래도 다정아.

   너는 네가 오래, 어쩌면 영원히 혼자이길 바랄 테지만 나는 그런 너 몰래 다른 걸 희망해. 너에겐 혼자가 아니라는 말이 되도록 익숙한 말이었으면 좋겠다고. 혼자를 모르는 혼자가 너였으면 좋겠다고.


   아주 가까스로 혼자이기를.



   아마도 나는 계속 내가 가진 결핍을 네 것보다 크다고 느낄 거야. 그게 나는 미안하지 않고, 같은 시집의 익스프레스라는 시의 마지막 장면처럼,


   모르는 사람들이 돌아가고 모르는 벽으로 둘러싸여 완성된 집 안에서 발자국을 닦아내고 의자에 웃옷을 걸쳐둔 채 내 옷 앞에 마주 앉는 시간이 네게는 오지 않기를 희망해.


   그런 시간이 네게 오더라도 이 주에 한 번씩은 꼭 너희 집 앞에 아주 많은 나를 데리고 선 내가 있기를.

             

   희망해.




   (이슬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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