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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Jun 17. 2020

17년차 부장이 알려주는 직급별 글쓰기 스킬

| 17년 회사생활에서의 글쓰기 노하우 대방출



글은 힘이었다.


과거 선비들이 나라를 다스리던 시기에는 “글”을 배우고 “글”을 쓴다는 것은 칼을 휘두르는 것보다 훨씬 더 높은 차원의 일이었다. 그들에게 글이란 지위였으며 특권이었고 권력이었다. 부가 세습되듯 글이 세습되고 그에 맞춰 지위와 특권이 세습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요즘 글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없진 않겠지만 우리나라의 문맹률이 매우 낮다는 통계를 본 기억이 있다. 교육이 의무화된 덕분인지, 이제 더 이상 읽고 쓰는 것이 특별해 보이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이렇듯 특별해 보이지 않는, 하나의 기술 영역이라고 생각되는 읽기와 쓰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여러분은 자신의 생각을 얼마나 자주 글로 표현하고 있는가?

물론 여러분이 직장이라면 매일 몇 통의 메일을 쓰게 될 것이고, 보고서나 각종 자료를 만들면서 정보와 함께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메일이나 보고서를 쓰다가 이런 생각을 해본 적 있지 않았을까?


“아~~ 이것(상황)을 표현하는 단어가 뭐였더라?”


글은 쓰면 쓸수록 어렵다. 글을 많이 쓰는 사람들은 자신의 어휘력의 부족을 실감하며 이걸 극복하기 위해 사전을 많이 찾게 된다. 또 어휘력을 높이기 위해 책을 읽기도 한다. 또, 신문 기사의 헤드라인을 읽으며 적재적소에 필요한 단어를 익히려고 노력한다. 학창 시절 논술을 준비할 때 신문을 많이 읽어보라는 것은 허투루 나온 말이 아닌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매일 습관처럼 써오던 메일이나 보고서 작성 시간에 위에서 언급했던 고민을 해보지 못했다면 여러분은 아직 제대로 된 메일과 보고서를 못쓰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재작년 <대통령의 글쓰기>의 강원국 작가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그는 대통령의 연설문을 쓰던 사람이다. 전 국민이 듣는 대통령의 연설문은 문장 한 줄의 무게감이 그 어떤 글보다 무겁다. 연설문의 문장 속 한 단어 때문에 정치인들과 언론인들이 벌떼같이 난도질을 하기도 하고, 알맞은 문장 한 줄 덕분에 온 국민이 따뜻한 위로를 받기도 한다.

그래서 그는 적재적소에 필요한 그 단어는 “반드시” 존재한다고 말했고, 그것을 찾기 위해 며칠을 고민하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비단 여러분이 쓰는 글이 이런 무게감을 갖지는 않겠지만, 자신의 글에 책임을 지겠다는 생각으로 메일과 보고서를 쓰게 된다면 여러분은 반드시 지금보다 몇 배는 성장하게 될 것이다. 강원국 작가가 말한 것처럼은 못하더라도 최소한 맞춤법이 틀렸는지, 띄어쓰기가 제대로 되었는지 한 번 더 점검하자. 또, 줄 간격은 적당한지, 글자 폰트는 적절한지, 폰트의 크기가 맞는지 정도는 확인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완벽할 수는 없지만, 완벽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우리는 성장하고 글쓰기는 진화한다.


자, 그럼 내가 생각하는 <직장인의 직급별 글쓰기 스킬>을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참고로 이 글은 매우 주관적임을 감안해주기 바란다.




사원 (1~4년 차)

자신이 여기에 속한다면 앞뒤 잴 필요 없다. 일단 양을 채우는 것이 먼저다. 많이 써라. 쓸게 없다면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할 때까지 자신이 한 행동이라도 기록해라.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글은 쓸수록 실력이 좋아진다.”라는 것이다. 처음부터 센스 있게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있지만 그들도 분명 노력 없이 잘 쓰게 된 것은 아니다. 당신이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면 금상첨화니 더 열심히 써라. 그렇지 않다면 더더욱 열심히 쓰는 방법뿐이다.


사원이라면 분명 사수가 있을 것이다. 자신에게 일을 가르치는 사람, 자신에게 가장 욕을 많이 하는 사람, 하지만 현재 자신과 제일 친한 바로 윗선배 정도가 사수일 것이다. 일단 당신은 그를 괴롭혀야 한다. 그에게 매일 자신이 한 일을 글로 써서 보고해보자. 현재 사수가 수많은 일을 당신에 시키고 있을 것이다. 시킨 일을 처리하는 능력도 키워야 하지만, 시킨 일을 제대로 글로 표현하는 방법을 함께 깨우쳐야 한다. 일처리 능력은 시간이 당신을 능숙하게 만든다. 하지만 글을 써서 표현하는 것은 노력하지 않으면 언제나 제자리다. 그러면 어떤 노력해야 할까? 최선의 방법은 많이 쓰는 것이다. 물론 가장 빠른 길이기도 하다.


사수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왜 하냐? 시킨 것이나 잘해라.”라고 핀잔을 줬다면 “제대로 하고 있는데 좀 더 잘하길 바란다.”로 해석하면 된다. 나이차가 적고, 연차가 별 차이 안 난다고 급식체나 어설픈 영어 표현으로 뽐내려 하지 마라. 회사에 빨리 들어온 사람은 분명 당신보다 회사 업무에 관해 많이 아는 사람이다. 그의 말이 틀릴 수도 있고, 잘못된 지시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잘못된 것을 지적하기보다는 잘못된 것을 수정해서 메일로 보내 이런 식으로 고쳐봤는데 어떤지를 물어보는 게 더 낫다. 어차피 지금 사수와 여러분의 차이는 50보 100보다. 당장은 사수가 멀고 높은 존재로 보이겠지만 약 4~5년 뒤면 당신이 그를 추월할 수도 있고, 아니면 사수가 훨씬 멀리 달아나 버릴 수도 있다. 지금은 많이 쓰고 자주 공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선배들이 보내주는 답장을 꼼꼼히 체크해서 반복되는 실수를 줄여나가길 바란다. 이게 바로 사원의 글쓰기 방법이다.




대리 / 선임 (5~8년 차)

스스로 일이 많다고,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기 쉬운 시기다. 여러 다양한 덜 중요한 일들을 맡다 보니 바쁠 수밖에 없는 시기다. 자신은 폼나는 일을 하고 싶다며, 나서는 대리들이 생기는 시기이기도 하다.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정말 철없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때 당사자들은 모른다. 이 시기를 먼저 겪어본 과장들이 웃을 뿐이다. 지금은 한 분야를 갈고닦아야 할 시기이다. 이 직급에서 쓰게 되는 메일이나 보고서에서는 자신의 특징이 드러날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 보고서를 열었을 때 “이거 ~~ 가 쓴 거네.”라고 알 수 있다면 아주 잘하고 있는 것이다. 즉, 자신의 색이 무채색에서 유채색으로 조금씩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다.


글은 언제나 솔직하다. 자신이 조금 뺀질거리면 그 느낌이 일상의 메일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참 선배들인  과장, 부장들은 그게 보인다. 그래서 그들이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여러분도 곧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니 강약은 조절해가며 피곤은 달래더라도 꾸준할 줄 알아야 한다. 어차피 회사생활은 길다.

작년에 <김밥 파는 CEO> 김승호 회장의 “돈의 중력성”에 관련된 강연을 들었는데 그의 이야기에 귀가 솔깃했다. 똑같은 액수의 돈이라도 돈에 따라 무게감이 다르다는 말이었다. 매달 꼬박꼬박 내 통장에 들어오는 월급 100만 원과 일 년에 한 번 들어오는 1,200만 원은 무게가 전혀 다르고, 특히 월급 100만 원이 훨씬 더 무겁다는 것이다. “꾸준히”라는 진리가 각자의 삶에 얼마나 많은 기회를 열어주는지 돈을 통해 설명해주는 시간이었다.


회사생활과 글쓰기도 김승호 회장이 언급한 돈의 중력성과 마찬가지다. 매일 또는 매주 발행하는 일보나 주보를 자신의 손으로 작성하고 있다면 당신은 지금 제대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팀원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내게 맡겨졌다는 것은 “네가 제일 낫다”의 다른 표현이다. 지난한 작업일 수 있지만 가장 많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임을 알아차리길 바란다.

대리 직급에서의 4~5년의 하루는 정말 쏜살같이 흘러간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이 시간 동안 꾸준히 발행하는 한 분야의 보고서가 있다면 당신은 그 분야에 점점 깊어질 것이고, 시나브로 전문가가 되어갈 것이다. 이 시기에 무엇을 하느냐가 3~4년 뒤 여러분의 부서 업무를 결정하게 되다. 정리해보면 대리/선임의 글을 예리하고 분석적이고 깊이 있어야 한다. 부서 내 여러 분야 중 딱 한 분야만 특출 나면 되는 시기다. 꼭 명심하자.




  과장/책임연구원 (9~16년 차)

지금은 퇴직하신 상무님께서 내가 과장 진급을 했을 때 차를 마시면서 진급 축하를 해주셨다.

그때 “경태 씨는 과장이 무슨 뜻인 줄 아니?”라고 물으셔서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때 하신 말씀이 예전에는 부서가 “~~ 과”라고 되어있어서 과의 리더를 과장이라고 불렀다고 알려줬다. 다시 말해 과장이 된 지금부터는 작은 조직의 리더의 깜냥이 되어야 하고 그럴 충분한 자격이 되니 회사에서 그 직급을 건넨 것이라고 했다. 연차가 쌓이고, 인사고과 점수가 만족하면 자동으로 진급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것보다 더 큰 의미가 숨어있었다. 그 대화 속에서 나는 과장이라는 직급에 대해 조금 더 무게감을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내가 “그럼 대리는 무슨 뜻인가요?”라고 물었더니, “대리는 과장이 부재중일 때 과장을 대신하는 자리라서 과장대리 직함이다.”라고 하셨다. 이 또한 명쾌했다.


그렇다. 과장 직급이라면 과장다워야 하고 부서 후배들이 하는 일에 대한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 아무리 작은 조직의 리더라도 리더라면 부하 직원이 있다. 그렇다면 리더는 부하를 챙겨야 하고 가르쳐야 한다. 이제는 부서를 대표해서 회의에 참석해 의견을 개진해야 하고, 부장 대신 보고서를 정리하고 발표를 준비해야 하는 위치다.

과장은 부서 내 여러 분야를 취합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대리의 보고서가 부서장이 전쟁터에 나가서 싸울 때 필요한 총알이라면 과장의 보고서는 탄창이다. 그렇기 때문에 잘 정리되고 요약되어야 하며, 장점은 부각하고 단점은 보완하는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참 어려운 자리가 과장인 것 같다. 군대로 치면 상병, 다시 말해 진짜 회사 일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직급이 바로 과장이다.


과장의 글은 무게감을 갖추어야 하고, 타 부서와의 마찰도 서로 win-win 할 수 있도록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후배들이 올리는 보고서를 철저하게 읽고 검증해야 한다. 업무의 스코프가 커지면서 허술해지는 부분이 생기게 마련인데 이 부분은 함께 일하는 부사수로 커버할 수 있도록 자기 일을 위임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 역량도 필요하다.

아무튼, 과장은 “부서에서 내가 더 성장하고 리더로 나아갈 수 있는가?”라는 것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시기다. 우리 회사는 직급체계상 엔지니어 직급에는 차장이 없기에 8년 간 책임(과장) 직위에서 수련한다. 그리고 10명의 과장 중 2~3명 정도가 부장으로 진급을 하게 된다. 정리해보면, 과장이라는 직급에서 가장 중요한 글쓰기 스킬은 “취합/정리”다. 그리고 상급자나 타 부서 사람들이 수월하게 이해하고 설득할 수 있도록 쉽게 쓰는 것을 터득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부장/수석 연구원 (17년~ 임원 전까지)

올해 부장 1년 차인 내가 부장이 갖추어야 할 글쓰기 스킬을 언급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내가 겪어온 많은 부장님들을 토대로 간단히 언급을 해보고자 한다.


예전에는 연차가 되면 대부분 부장 직함을 달았다. 하지만 요즘은 전혀 그렇지 않다. 주변의 많은 선배들도 아직 과장이신 분들이 많다. 부장은 임원이 될 수 있는 사람이고, 부서의 리더이며, 대기업에서는 적어도 10명 정도의 부하직원과 함께 성과를 만들어낼 줄 아는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다. (물론 부서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다.)


부장의 글은 정확하고 뚜렷해야 하지만 또 매우 인문학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부장들은 회사 운영진들을 설득해 부서의 존재의 이유를 계속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 회사는 수시로 조직개편을 진행한다. 그래서 오늘 존재하던 부서가 내일은 사라지고 다른 곳으로 편입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부장은 부서원들에게 우리 부서는 안전하다며 안심시킬 수 있는 포용력을 갖춘 덕장이어야 한다. 또 타 부서와의 회의석상에서는 맹장이어야 한다.


매일 선배 부장님과 회의를 하고 있는 나는 내가 쓴 보고서를 요리조리 각색하시는 부장님의 능력에 감탄한다. 다소 우중충했던 그림이 화사해진다고 할까? 내가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부분을 짚어주고, 내 생각과 다른 부분은 조율해서 더 좋은 방향을 이끌어보고자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눈다. 그래서 내 옆의 부장님들은 우리 부서에서 제일 바쁜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런 분들에게 업무를 배울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삼성이라는 회사가 참 힘든 것이 직급이 오를수록 일이 많고 업무강도가 높다는 것이다. 사원/대리보다 과장은 책임감이 무겁기에 신중하고 열심히 한다. 부장은 그런 과장들을 리드해야 하기 때문에 봐야 할 자료도 더 많고, 챙겨야 할 것들도 많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흔히들 네이버 부장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체험해보지는 못했지만 말로만 듣던 공기업의 부장들, 공무원 조직의 20년 차의 여유로운 모습을 지금 이 곳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이곳은 팔에 신문을 끼고 출근하는 부장이 없다. 사무실에서 졸아도 눈치가 보여 참고, 피곤해도 이 악물고 버티는 직급이 바로 부장이다. 그들 대부분이 우리나라 중/고/대학생의 부모님들인 것이다.


100명의 부장 중 1명 정도가 임원이 된다. 고등학교로 치면 서울대 가는 사람이라고 보면 되고, 군인으로 치면 별을 다는 것이 바로 대기업에서 임원이 되는 것이다. 임원으로 승진하려면 일단 일을 잘해야 한다. 그건 아주 기본이고 그 외에도 많은 조건이 충족되어야 임원의 풀에 들어갈 수 있다고 알고 있다. 그만큼 부장의 자리는 무겁고도 위태로운 자리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리인 만큼 그들의 글은 단단하면서도 둥글다. 칼은 없지만 수많은 방패로 둘러싸인 성 같다. 그리고 매우 인간적인 글이 많다.


 



임원 (연차 없음)

그들은 글을 쓰지 않는다. 모두 시킨다. 확인하고 수정을 지시한다. 그들은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지시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란다. 글은 그동안 많이 썼으니 그만 써도 된다.




쓰다 보니 주저리 글이 길어졌다. 회사 관련해서 글을 쓰다 보면 항상 할 말이 많다. 그만큼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보낸 것이다. 힘들 때도 있지만 웃는 시간이 더 많다. 짜증 날 때도 많지만 자랑스러운 순간이 더 많다. 그래서 회사에 중독되나 보다. 그리고 무엇보다 회사에서 일 잘하는 사람을 가장 쉽게 알아보는 방법이 있다. 그건 그 사람의 자리를 가보면 된다. 일 잘하는 사람, 그들은 책상이 깨끗하다. 진짜다.  


다시 한번 매우 주관적인 글이라는 점을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직급별글쓰기 #대기업부장 #글쓰기스킬 #자기계발 #월급쟁이 #자아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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