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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Jun 19. 2020

회사를 다니고 있었지만 책을 써야만 했던 절실한 이유

| 평범한 삼성맨이 작가로 변신한 이야기



나는 두 권의 책을 쓴 회사원이다.


책을 쓴다는 것은 하나의 주제를 정하고, 주제를 바라보며 내 생각을 펼치고 정리하는 작업이다. 이 작업은 매우 즐겁고 흥미롭지만 또한 길고 지루하기도 하다.  
지난 3년간 나는 이 작업을 2번 경험했다. 처음엔 멋모르고 덤벼들어 4개월 정도 시간을 들여 정신없이 초고를 썼고, 퇴고의 과정도 없이 출판사를 컨택했다. 두 번째는 처음보다 수월하게 쓸 수 있을 거라는 (한 번 해봤으니까) 착각 속에 시작했다가 번아웃을 맞닥뜨려 몇 개월을 통으로 멈춰야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친 뒤 약 14개월 만에 두 번째 책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이런 지난한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책 쓰기에 집착을 했고, 요즘도 매일 글을 쓰고 있는 걸까?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매일 새벽시간과 회사 점심시간 그리고 퇴근 후 서재에 틀어박혀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쓰고 있다. 스스로 생각해봐도 이 루틴에 집착하고 있고 이제는 오히려 묘한 재미까지 느끼고 있다. 신기하다. 




생각해보았다. 


나는 주변의 흔한 직장인들처럼 대학을 졸업하고 비슷한 나이에 대기업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고, 그들과 비슷한 수준의 월급을 받으며 일했다. 특출 난 것도 아니었고 특별하지도 못했다. 취업 후 몇 년간 일을 몸에 익히는데 시간을 흘려보냈다. 일의 수준보다 월급이 많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매달 받는 월급을 차곡차곡 저축하며 소비했다.


직장 3년 차에 결혼을 했고, 전셋집을 얻어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아내는 집에서 남편을 기다리며 식사를 준비하는 주부로, 나는 회사에서 순발력과 약간의 센스가 있는 사원으로 일했다. 퇴근 후에는  짬을 이용해 이것저것들을 즐기는 남편으로 살았다. 둘이 살기에 월급은 부족하지 않았고 딱히 큰돈이 드는 일도 없었다.
이렇듯 지극히 평범한 보통의 직장인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회사는 발전해 점점 규모가 커졌고, 그로 인해 일이 많아졌다. 책임질 일이 생겼고 책임을 져야 했다. 타인을 비난하는 순간이 있었고, 내가 비난받는 순간도 있었다. 내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도 있었고, 내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혼나는 경우도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머릿속에 그렸던 보통의 직장 생활과 동떨어진 현실 속에서 나는 힘들어했고 그 결과로 내 안에 불안이 침입했다.




속수무책이었다.


친구들에게 속내를 털어놔도 그들에게는 배부른 소리로 들렸고, 누구나 “그런 게 바로 회사 생활”이었다. 술을 마셔 기분을 달랬고, 취미를 발견하려고 노력하며 버텼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퇴근 후 시간을 위해 하루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갔다. 늦게 퇴근하는 게 싫었고, 주말에 출근하는 것도 화났다. 내게 회사는 현재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돈을 버는 곳, 딱 그런 곳이었다.
그렇다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또다시 시험을 봐서 취업을 준비하고 면접을 보고 결과를 기다리는 그 지난한 과정을 재탕하기는 싫었다. 자신도 없었다. 익숙한 이 삶에 길들여진 것이었다.

그즈음 나는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배운 것은 겨우 보고서를 만드는 것과 몇몇 설비를 다루는 기술이 전부였다. 흔히 얘기하는 엑셀러였다. 이건 정말 회사원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수년간 회사생활을 했지만 내가 남들 앞에서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직시한 바로 순간부터 두려움이라는 내 안의 적이 생겼다. 불안함이 두려움으로 변신한 것이었다.


이 녀석은 보통은 숨어있다가 꼭 혼자 있을 때나 무언가 곰곰이 생각할 때 나타났다. 내 집중을 방해했고 상상력을 제한했으며 점점 부정적인 생각에 나를 가두었다. <파우스트>의 메피스토 펠레스라고 하면 믿으려나? 녀석이 나타나면 나는 허공에 대고 열심히 욕을 했다. 누가 들을까 싶어 혼자 드라이브를 자주 나섰고, 차 안에서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놓고 열심히 소리를 질렀다. 출근길 차 안에서도, 퇴근길 차 안에서도 욕을 쏟아내곤 했다.

내 입에서 나오는 욕들을 가만히 보았더니 죄다 세상에 대한 불평불만이었다. 부족함 없는 환경에서 자랐고, 사랑받고 사랑하며 남들이 다니고 싶어 하는 회사를 다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만족이 아닌 불평과 불만에 매몰되었다. 그래도 참 다행이었던 것은 “스스로 불안에 잠식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라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내 불안의 원인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탐색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과연 어떤 삶이 만족스러운가?”를 고민했다. 딱히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어릴 적 꿈에 관한 기억 정도. 해보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그것을 실현한다고 만족감이 지속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직업”이라는 단어에 생각이 닿았다. 누구처럼 의사, 변호사, 검사, 판사, 회계사 같은 전문가가 되면 만족할까? 일(업/직업)을 통해 내가 원하는 것(수치로 표현할 수 없는 모호한 만족감)을 충족시킬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들로 제법 많은 시간을 보냈다. 질문은 점점 추상적으로 변했다. “나는 왜 태어났는가?”, “세상에 무얼 남겨야 하는가?”와 같은 쉽사리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 속에서 조금씩 자아에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그즈음 자기 계발서를 미친 듯 읽었다. 책은 명확히 말하고 있었지만, 책에서 언급한 것을 실행한다고 해서 내가 명확해지지는 않을 거라고 판단했다. 마치 이런 느낌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100권의 책 중에 내가 100권을 다 읽지 못하는데, 10~20권 읽는다고 해서 내가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독서를 지속하고 있었지만 자꾸만 주저하고 있었다. 결론을 내고 실행을 하고 싶었는데, 답이 명확하지 않아서 시작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었다” 생각하지만, 그 과정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더 크다.)




글을 쓰다.


어느 날 그 답답한 심정을 블로그에 적었다.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아 아주 야심한 밤에 몰래 써갔다. 아무도 몰라야 했기에 평소 정보를 갈무리해두던 내 블로그가 아니라 이용자들이 거의 없는 사이트의 블로그에 글을 남겼다. 쓰다 보니 시간을 잊고 집중하는 나를 발견했다.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일주일이 되었다. 거의 매일 내 생각을 배설하듯 썼다. 쓰고 나면 후련했다. 비록 조회 수는 0이지만 나는 내 글을 수없이 읽고 또 읽었다. 쓰면서 후련했고, 읽으면서 웃었다.

매일 비슷한 심정의 글이었는데 또 매일 달랐다. 어제와 상황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는데 내 글은 점점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머릿속에 떠돌던 생각의 실체가 무엇인지 점점 명확해지고 있었다. 글이라는 것이 그랬다. 생각이 정리되면서 종이에 문자로 기록되었다. 기록은 다음날 다시 읽어봐도 어제와 똑같은 의미를 말하고 있었다. 생각이 글로 변하면서 서서히 내 두려움의 실체와 마주할 수 있었다. 


두려움의 실체는 바로 “현재의 직장이 건네는 안정성”이었다. 참 쉬운 답이었는데 내 입으로 이 말을 꺼내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현재를 버리지 못하면서 계속 현재를 부정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플까 봐 뼈를 때리지 못하고 근처만 주무르고 있었던 것이다.




명확해졌다.


글은 생각을 명확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나는 웃고 있었다. 좋아하던 PC 게임을 할 때처럼 언제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게 집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 순간이 즐거웠다.

매일 글을 썼다. 두서없이 막 썼다. 소재가 고갈되면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썼다. 쓰는 것이 즐거웠다. 한동안 컴퓨터로 글을 쓰다가 종이와 펜으로 써보기도 했다. 손글씨는 진도는 더다고 수정은 어려웠지만 무엇보다 글을 쓴다는 느낌이 살아있었다. 더욱 즐거웠다. 그렇게 점점 글쓰기에 빠져들었다.

책을 쓰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책이 쓰고 싶었다. 


'300 페이지를 내 손으로 채울 수 있을까?' 엄청난 분량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만약 책을 쓴다면 주제는 뭘로 할까?'

'그런데 내 글을 누가 읽어주기나 할까?'

'깜냥도 안 되는 놈이 책을 쓰게 되면 주변에서 비난하지 않을까?'


하지만 글을 쓰면서 내가 확실히 알게 된 것은 바로 “일단 쓰다 보면 수가 보인다.”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매일 썼다. 책을 목표로 한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가 현실이 될 거라는 기대감으로 썼다.



결국 나는 책을 썼다.

 

정말 절실하게 쓰고 싶었고, 그래야 내 삶이 명확해질 것 같았다. 그래서 썼다.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글을 쓰다 보면 그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책이 시중에 나왔다. 조금씩 사람들이 내 글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칭찬과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기분이 좋았다. 관심에 행복했다. 그리고 점점 글솜씨가 늘어가고 정리력이 높아지는 것을 실감했다.

회사에서도 이제 더 이상 그냥 부서원이 아니다. 잘하는 것이 있는 사람이 되었다. 결국 글쓰기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나는 점점 글 쓰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글쓰기 #자기계발 #자아실현 #월급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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