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의 또 다른 매력에 관한 소고
뭐 아직까지 올인클루시브 여행지를 찾았던 건 고작 두 번째니 이렇게 말하긴 좀 뭐 하지만, 그래도 리조트와 그냥 현지를 두루 돌아다니는 여행 간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하는 것 같단 느낌만은 확실했다.
단적으로 표현해서 리조트 여행은 그냥 심신을 푹~ 쉬는 것에 초점을 맞춘 재충전적 성향이 짙은 반면, 현지 여행은 탐험적 성향과 불예측성 혹은 긴장감이 여행 내내 감돈다고나 할까?
이번 쿠바 여행은 분명 나와 남편에게 올인클루시브 리조트 여행이었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호텔 바깥을 벗
어난 본 건 겨우 호텔 옆의 다른 호텔을 좀 지나 생태 파크라고 이름 붙여진 트레일을 잠깐 걷다 온 게 다였지만 그래도 쿠바의 다른 매력을 약간이나마 맛보았다는 위로를 삼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별로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막상 그곳을 떠나와 있는 지금에서야 되돌아보면서 쿠바를 그야말로 겉핥기식으로 다녀왔단 생각을 또 해보게 본다.
그래서 다음에 쿠바를 여행가게 되면 분명 좀 더 쿠바다운(?) 곳을 둘러봐야겠단 결심을 굳히고 있긴 하지만 그것 또한 확신할 수 없는 이야기긴 하다. 또 리조트 여행이 된다면 그 또한 별 수가 없는 것일 테니 말이다.
아무튼 이런 아쉬움을 조금 달래보고자 오늘은 쿠바에서 그나마 조금 맛보았던 호텔 바깥에 관한 이야기와 여행을 다녀와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 하나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한다.
먼저, 여행이 거의 끝나가는 막바지에 남편과 나는 호텔에만 있는 게 슬슬 지겨워져서 아웃도어 액티비티에 대해 좀 알아봤었는데, 그 또한 너무 늦어버렸단 김 빠진 소리 밖에 들을 수 없었다.
다시 말해 차를 타고 호텔을 벗어나 쿠바의 일반 사람들이 살고 있는 모습을 구경하면서 쿠바에서 유명한 시가 공장을 방문하고, 또 아이들이 다니고 있는 학교도 방문할 수 있는 ‘선택 관광’이 이미 꽉 차버렸단 거였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꿩 대신 닭 심정으로 호텔 옆에 있는 또 다른 호텔을 슬쩍 지나 구경하면서 동시에 그와 가까운 파크 '라 구아나'를 방문하기로 했는데, 그곳은 우리 호텔에서 좁은 강 하나를 지나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 곳이었다.
먼저 그 호텔에 대해 이야기를 조금 하자면,
우리가 묵고 있는 곳보다 전체적으로 비용이 저렴한 곳이라 우리 호텔보다 평균적인 숙박객의 연령이 낮아 보였고, 그러니 상대적으로 좀 더 발랄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건 사실 호텔 앞을 지나면서 느꼈던 건 아니고 해변가에서 이미 감 잡은 거였는데, 시설 면에서도 우리 호텔과는 좀 다르게 룸이 구성되어 있었고 숙박시설도 더 많아 보였다.
그리고 그 호텔을 지나다 보니 버스를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었고, 풀어서 기르고 있는 닭들, 또 특이한 나무와 꽃들을 지나 드디어 파크에 도착했는데 쿠바 현지인 한 명이 나오더니 우리에게 잠깐 파크에 대해 설명을 해 주면서 입장료를 내란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도 없고, 잠깐 반 정도까지만 갔다 돌아오겠으니 좀 입장료를 깎아 줄 수 없겠느냐고 내가 '거래'를 제안했더니 알았다면서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 결과 우린 한 사람 입장료(돈을 아껴야겠단 생각에서라기보다 돈이 그것밖에 없어서)만 내고 전체 다 말고 반만 보고 내려오기로 하곤 트레일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곳곳에 번호와 설명문을 설치해 놓은 파크의 전반적인 인상에 대해 좀 이야길 하자면,
그동안 조금 낙후되어 있는 걸로 보였던 쿠바 홀귄의 전체적인 이미지에 비해 파크는 잘 정리되어 있는 것 같단 거였고, 더불어 쿠바의 생태학적 역사를 조금이나마 맛보기 한 것도 사실이었다.
물론 지금에 와선 그 내용은 다 까묵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다 합쳐봤자 한 30분 정도 트레일을 걷다 말았지만 그래도 자연 속에서 걷기를 했다는 것과 어느 정도 정상에서 우리의 호텔과 호텔 앞 해변가, 그 외 멀리 지평선까지 새로운 구경을 해 봤다는 걸 위로 삼고 우리는 호텔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쿠바 여행을 마친 다음 집으로 돌아와 쿠바를 그리워(?)하며 뭘 뒤적이다 쿠바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이 있다는 걸 알게 됐는데, 송일곤이라는 감독이 만든 '시간의 춤'이란 영화가 바로 그 영화였다.
우리 한인들이 멕시코를 거쳐 그곳에 정착한 지 100여 년이 되었고, 그들은 한인학교를 세워 우리말을 가르치고 상해 임시정부의 김구 선생께 독립자금을 보내고, 체 게바라의 혁명에도 동참하는 등 다양한 활동과 사연을 펼치며 아직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걸 카리브해의 매혹적 자연풍광과 함께 화면에 담아낸 영화라는데, 아직 이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기회가 되면 언젠가는 꼭 감상해 보고 싶다.
사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이야기지만, 쿠바의 곳곳에는 여전히 <쿠바 혁명>의 잔재가 뚜렷하게 존재한다. 우리가 알만한 쿠바의 노래들은 대개가 다 혁명과 관련된 노래들인 게 맞고, 쿠바인들의 체 게바라에 대한 긍지와 사랑은 대단한 듯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러니 그들을 '체 게바라를 팔아 돈을 벌어먹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하는 건 어디까지나 사실적이긴 하되 꽤 피상적인 결론이고, 그 배후에는 그들의 찐한 체 게바라에 대한 존경심과 동경이 면면히 스며들어 있다고 말하는 게 더 진실에 가까울 수도 있겠다.
그리고 진정 쿠바인들은 어디서든 음악만 있으면 춤을 추어대는 음악과 춤을 즐기는 사람들처럼 보이고 실제로도 그러한데, 혁명의 역사가 60년이 넘었다는 그들이 찌들지 않고 그토록 명랑하고도 정열적인 감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러한 춤과 음악에 대한 무한한 사랑에 기인하는 거란 생각을 또 해 보게 된다.
바로 미국 밑에 위치해 있지만 거대 미국에 기죽지 않고 그들의 무소불위적 권력에서도 비껴 나 있는 그들의 저력 또한 바로 이렇게 낙천적이고 유유자적하는 삶의 철학과 연관이 많아 보이고 말이다.
이런 이유로 춤과 음악을 좋아하고, 무엇에든 연연하기보다는 물 흐르듯 순리에 따라 유유자적하고프다는 소망을 품고 있는 나는 쿠바에 대한 진한 매력을 떨쳐낼 수가 없는 것이고, 그러므로 언젠가 나는 또다시 쿠바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을 것 같단 예감을 진하게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