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몇 번 되지도 않는 명절에 가족끼리 모여 음식 좀 하고 도란도란 사는 얘기하는 게 뭐가 그렇게 불만이냐고, 너도 참으로 별난 여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글이 하나도 이해 안 될 테고 그러니 동의하는 것도 어렵지 싶다. ‘너만 그런 것도아닌데 참 유난이다’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면 거의 백 프로이지 않을까 하는 밑밥을 먼저 깔며.
명절이 다가오면 세상 잘 나가는 센 언니들도 한 집의 며느리로 소환된다. 세수하는 것보다 앞치마부터 먼저 맨다. 기름 쩐내를 향수 삼아 전을 부치고, 숟가락을 놓기도 전에 다음 끼니에 뭘 내놔야 할지 고민한다. 나는 안 먹어도 음식은 해야 하고 먹지 않았다고 해도 설거지는 해야 한다. 혹 진짜 너무너무 잘 나가는 직업을 갖고 있어 명절 행사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라면 괘씸죄를 잠재울 만큼의 금액을 기부해야 한다. 다음 명절까지 뒷담화를 당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그런데 아무리 돈이 아까워도 차라리 그게 낫다는 여자들도 많다. 이유는 간단한다. 명절에 해야 하는 수많은 일들이 힘들고 고된 것만큼이나 짜증이 나는 이유는 그 모든 일들이 나와는 직접적인 인과 관계가 없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든 인과 관계에 있어 둘 사이의 고리가 약하면 약할수록 그 결과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결혼은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란 원인으로 이루어진 결과물이다. 그러나 결혼이란 ‘제도’는 이 직접적인 인과 관계 말고도 각각 두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과의 얽힌 관계들까지도 사랑의 결과에 포함시킨다.
두 사람을 낳아준 각각의 부모님은 이제 나의 또 다른 부모가 되고, 배우자의 혈연은 친척이 된다. 낯선 그들과의 관계를 머리와 마음으로 수용하기 위해서는 짧지 않은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 게다가 여전히 결혼이란 제도는 한 집안에 새사람이 들어가는 구조로 이해되는 까닭에 남자보다는 여자가 더 감당해야 할 것들이 많다. 무엇보다 남편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과 질서에 빠른 적응을 요구당한다.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도 제대로 갖지 못한 채 여자는 결혼과 동시에 바로 며느리라는 이름과 도덕적, 윤리적 의무를 부여받는다.
그리고 그 의무는 마땅한 도리라는 명분으로 포장되고 도리를 지키지 않으면 "여자 하나 잘못 들어오면 집안이 망한다"는 전설 속 주인공이 된다.
결국 며느리라는 이름은 원인이 되고 며느리가 된 여자는 “~해야 한다”(또는~하면 안 된다)는 당위의 결과를 수용해야만 한다. 이것의 가장 보편적인 경우가 명절이 아닐까 싶다. 우리 할머니 차례상을 차려본 기억도 없는 것 같은데 얼굴도 모르는 ‘남의 집’ 조상을 위해 몇 시간을 쭈그리고 앉아 음식을 해야 하는 것(어떻게 시가를 ‘남의 집’으로 생각할 수 있느냐고 정색할 수 있지만 ‘남의 집’이 맞다. 다만 ‘남의 집’ 행사에 아내나 남편이 기꺼이 참여하는 이유는 ‘우리 집’을 만들기 전까지 잘 키워주신 서로의 부모님에 대한 존중하는 마음과 태도 때문이다), 일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하는 이름도 잘 모르는 친척들을 만나고 가라는 요구에 무기한으로 친정행을 미루는 것, 나는 제대로 숟가락도 들지 못했는데 산처럼 쌓인 설거지를 해야 하는 것, 힘드니까 잠깐 쉬라면서 다음 끼니 재료를 들이미는 손을 보면서도 짜증 내지 못하는 것.
모두 다 내 가족이 즐겁게 먹기 위해서 하는 거라고 대인배처럼 생각하고 싶지만 그 가족이라는 바운더리에 며느리는 불포함이다. 이미 며느리는 지칠 만큼 지쳤다. 행여 넓은 마음으로 시가 식구들과 함께 즐겨보겠다고 앉을라치면 누군가 옆에 와서 소화시키게 과일 좀 깎고 커피 좀 타서 먹자고 말한다. 너라고 꼭 찝어 말하지 않지만 며느리 말고 엉덩이를 떼려고 시도하는 사람은 없다. 이런 눈치게임에서 1은 늘 며느리 차지다.
명절마다 며느리들의 억울함을 담은 기사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게 일이니 올해도 그려려니 했는데 이번에는 특이하게 ‘90년대생 며느리들이 몰려온다’는 기사들이 눈에 띈다. “이번 명절은 친정 먼저 다녀올 게요.” “이번 명절은 차례 대신 가족여행을 가요."등이 제목으로 쓰인 기사들이다. 90년대생 며느리를 비판하고 싶은 건지 90년대생 며느리는 이러니 어른들이 단단히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건지 그 의도는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건 세대 구분과 관계없이 며느리들을 규정하는 건 ‘시(媤)’ 와 ‘사회’다. 효부든, 못 배운 년이든, 사회가 낳은 괴물이든 며느리는 스스로 자신을 규정할 권리가 없어 보인다. 오로지 그렇게 불릴 뿐이다. 그게 뭐가 문제냐고 다시 물어본다면 그냥 나는 네, 제가 유난스러운 며느리라서 그렇습니다.라고 던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