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a의 엄마는 엄마들 사이에서 “극한의 행복녀”로 통한다. 누가 그렇게 불러주는 게 아니라 본인 스스로 그렇게 부른다. 자신은 늘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배경엔 공부 잘하는 아이가 있다. 엄마의 행복과 아이의 공부에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을 것 같지만 공부 잘하는 아이는 엄마에게 엄청난 권력이자 대단한 자존감이다. 엄마라는 존재는 그 자신으로 인정받기보다 아이의 실력과 성적으로 인정받는다. 그 똑똑한 아이를 키운 건 바로 엄마니까.
그리고 그 엄마는 이런 분위기를 어떻게 즐기느냐, 혹 어떤 제스처를 취하느냐에 따라 돼지엄마로 불리기도 하고 음흉한 엄마로 불리기도 한다. 돼지엄마란 공부 잘하는 아이를 등에 업고 스스로를 정보의 젖줄기로 자처하며 모임을 주도하는 엄마고, 음흉한 엄마란 들리는 정보에 관심 없는 척하면서 혼자서 실속을 챙기는 엄마를 의미한다.
a엄마는 후자에 속한다. 그 어떤 것도 주변의 엄마들과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다. 하지만 들리는 소문에 교육과 학습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물어보면 자기는 잘 모른다고 손사레를 친다. 주변의 엄마들은 a의 엄마가 얄밉지만 a엄마를 대놓고 내치지는 않는다. 그래도 내치는 것보다 옆에 두는 게 여러모로 실보다 득이 되기 때문이다. 가장 큰 득은 우리 아이 옆에 공부 잘하는 친구가 있는 사실일 테다.
오늘은 중학교 지원서 제출을 끝내고 그간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자리였다. 각자 자신의 선택이 최선이고 최적화된 것임을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듣고 있던 많은 엄마들은 영혼이 있는 듯 없는 듯 애매한 태도로 맞장구를 쳐준다. 그러면서 동시에 마음속으로는 계산중이다. 저 집 아이의 성적과 학습 수준을 계산하고 우리 아이와 경쟁 상대가 되는지. 다들 머릿속이 바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a엄마는 늘 그랬듯 웃음으로 때운다. 오늘은 구미를 당기는 정보가 없다는 표정이다. 다른 엄마들의 얘기를 쭉 듣고 있다 자신의 차례가 되자 그녀는 대학교도 아니고 중학교 가는 게 뭐 대수냐며, 아무 데나 가면 되지. 자신은 그저 아이를 평범하게 키우기로 마음먹었다고, 교육에 대해서는 이제 마음을 비웠다고 약간은 체념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그 말을 순수하게 믿을 엄마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가 이런 태도를 보일 때는 분명 뒤에 뭔가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a엄마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기대하지 않는다고. 오로지 자신의 아이가 행복한 것만 생각하고 싶다고. 그러나 그 말이 무색하게도 딸이 전국구 대회에 참가해서 받아온 상 사진을 단톡 방에 투척하고는 참가하는데 의의를 뒀는데 애가 이런 걸 받아왔다며 자랑했고, 시답지 않은 학교 행사에는 참여하지 않는다고 하고선 다음날엔 밤새 준비한 결과물로 좋은 상을 쓸어갔다. 그러니 a엄마가 다른 엄마 눈에 이쁘게 보일 리 만무다. 그러나 부러운 건 어쩔 수 없다. 사실 남의 집 엄마 입장에서는 엄마의 욕심에 잘 따라가 주는 아이가 제일 부러울 따름이다. 어쩌면 제일 착한 아이는 학원비가 아깝지 않도록 성적을 내주는 아이일지도 모른다.
a엄마가 평범하게 아이를 키우겠다는 다짐을 보여준 그다음 날, 놀라운 일이 생겼다는 a엄마의 대화가 단톡 방에 올라왔다. 그건 바로 얼마 전에 사립중학교에 원서를 넣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a가 합격했다는 말이다. 원서도 내고 면접도 보고 왔으면서도 지금까지 시치미를 떼며 우리 아이는 평범하게 키우고 싶다고 말한 a엄마의 말을 기억하고 있는 다른 엄마들은 차마 축하한다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본심은 뒤로 숨기고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축하하기 무섭게 그 엄마를 제외한 또 다른 단톡 방에선 a엄마의 태도를 비난하는 성토가 이어졌다. 뒷담화라지만 느낌은 루저들의 모임인 것만 같다.
도대체 a가 간 그 학교는 뭐하는 학교냐며 묻는 질문에 학교 이름이 나오자 다들 일촉즉발로 써칭이 시작됐다. 그리고 이내 “별 것도 아닌 학교 구만”이라는 말로 단톡 방의 침묵은 깨졌다. 동시에 여기저기서 a엄마의 이중적인 태도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런 학교는 마음만 먹으면 보낼 수 있어, 기껏 거기 보낼라고 애를 그렇게 잡았대? 우리 애가 간다고 해도 나는 안 보내. 엄마가 독하네. 아휴.라는 메시지들이 하나둘씩 자기변명처럼 등장했다.
그날 저녁, 단톡 방에 참여했었던 각자 엄마들의 집에서는 핸드폰을 쥐고 사는 아이의 등짝을 한심하게 바라보거나, 너는 도대체 언제 공부할 거냐는 잔소리를 하거나, 이제부터라도 직접 나서서 공부 계획을 짜 보겠다고 작정한 엄마들이 인터넷 써칭으로 밤을 샜다는 말을 나는 그 단톡 방에 있었던 엄마들 중 한 명의 입을 통해서 들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쓴 이야기는 그 엄마가 3시간 동안 나에게 푼 푸념이다.
그 엄마는 나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 방에서 엎으려 핸드폰을 쥐고 있는 아이의 등짝을 한 대 때리고는 너는 언제 정신 차릴래를 외치다, 더 늦기 전에 아이의 공부 계획을 짜 보려고 공부 비법 관련 책을 주문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어휴. 내가 진짜 너 때문에 창피해서 못살겠어!”를 아이 앞에서 내질렀다고 한다.
졸지에 누워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아이는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또는 엄마에게 만족을 주지 못했다는 이유로 엄마에게 화를 내게 만드는 존재, 부끄러움을 느끼게 만드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날벼락은 이럴 때 쓰는 말일 테다.
오늘은,
망할 놈의 a와 a엄마 때문에 수많은 엄마들의 자존감과 아이들의 자존감이 바닥을 친 날이다. 그런데...둘만 사라지면 잃어버린 자존감이 회복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