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를 얻기 위해 자기 생각을 포기하는 아이


가르쳤던 아이들 중에는 주관식 문제나 자신의 생각을 쓰는 문제가 등장하면 안 풀고 빈 공간으로 둔 채 내버려두는 아이가 있었다. 한두 번은 그냥 넘어가 줬는데 눈치를 못 챈 건지 아님 정말 모르는 건지 아이는 몇 번의 주의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어김없이 주관식 문제의 답란을 깨끗하게 비워놨다.
“시간이 없었어요.” “어려워요.”라는 핑계는 사실 그렇게 말하는 아이도, 듣는 나도 진심이 아니라는 걸 서로 알고 있었기에 하지도, 듣지도 않았다.


같은 문제도 주관식이면 손도 안 대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루는 내가 작정하고 물었다. 도대체 주관식 문제에 답을 쓰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틀릴까 봐? 몰라서? 혼날까 봐?
아이는 머뭇거리다


“셋 다요.”


라고 말했다. 그 말만큼은 핑계가 아닌 진심이었다. 나는 주관식은 정답을 쓰는 게 아니라 너의 생각을 쓰면 되니 틀릴 걱정은 안 해도 되고, 틀릴 일이 없으면 당연히 혼 날 일도 없을 테니 나는 걱정하지 말고 써 올 것을 당부했다.

다음날 아이는 주관식 답란을 채워왔다. 거기엔,


“답을 못 찾겠어요. 아무리 찾아봐도 안 나왔어요.”


라고 쓰여 있었다. 당연한 말이다. 자기 생각을 쓰는 건데 아이의 생각이 지문에 나와 있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나한테 혼나는 건 너무 두려웠지만 더 두려운 건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나오지 않은 답이었나 보다. 정답을 찾아야 하는데 도저히 못 찾는 데서 오는 두려움.


평소에 이 아이는 자기 물건에 대해서 작은 흠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책을 접는 것, 밑줄을 치는 것은 물론이고 글씨를 썼다 지운 흔적조차 예민하다 느낄 만큼 싫어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틀리는 것, 틀렸다는 사실을 표시하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그래서 확실하지 않은 답이 아니면 아예 쓰지를 않았다. 틀리는 것보다 무응답을 선택한 것이다. 어떤 질문이든 확실한 것에만 대답했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질문에도 예외는 없었다. 정답이 아니면 오로지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나는 이 사실을 아이의 엄마에게 알릴 필요가 있었다. 무응답의 횟수가 지나치게 늘어가고 수업 진행이 제대로 안 됐기 때문이다. 전후 사정을 들은 엄마는 대화 끝에 “답안지를 주시면 아이와 함께 풀어보겠습니다”라는 말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나는 기꺼이 그러시라고 하고 답안지를 건넸다.
다음 수업 시간에 나는 아이의 숙제를 확인했다. 답이 쓰여 있었다. 그것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모범 답안과 똑같은.

“엄마가 가르쳐주셨니?”라는 내 질문에 아이는,
“네, 제가 어려워하니까 엄마가 불러주셨어요.”라고 말했다.
정답을 써 오라고 답안지를 준 게 아닌데... 결국 아이는 그렇게 정답과 똑! 같은 답을 써온 덕분에 만점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나의 조언은 틀렸고 엄마의 선택은 정답이 되었다.


그 아이의 엄마는 늘 아이에게 완벽함을 요구하는

사람이었다. 아이가 완벽할 수 있도록 엄청나게 공을 들이고 있다는 게 눈에 보였다. 굳이 필요 없는 경우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타인 앞에서도 아이가 들으라는 듯이 아이의 장점을 늘어놓았다. 게다가 책임감을 명분으로 아이가 감당하지 못할 큰 권한을 주기도 했다. 아이는 부모로부터 받은 이 권한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공부를 잘해야 했다. 그냥 잘하는 게 아니라 완벽해야 했다.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유일했다. 어려운 문제 대신 쉬운 문제만을 선택하는 것이다. 또 하나 불문명해서 맞힐 확률이 낮은 주관식 문제보다 분명하여 맞힐 확률이 높은 객관식 문제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렇게 이 아이는 높은 점수를 확신할 수 있고 실력을 눈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곳에만 도전했다. 아이의 선별적이고 이중적인 태도 이면에는 엄마의 지나친 기대와 과도한 권한 부여가 있었다.

자신의 아이를 일사불란하게 통제하는 것에 대해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부모들이 있다. 이런 부모 아래서 성장한 아이들은 인과적이겠지만 비교적 학습 수준이 높다. 관리가 잘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관리가 잘 되었다는 말에는 사교육에 일찍 노출되었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사교육을 통한 정답 고르기에 일찍 습관을 들인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훨씬 빨리 문제를 파악하고 정답을 찾는다. 기계적으로 스킬을 연습한 결과다. 그런데 마치 이 결과물을 아이의 능력 또는 실력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이 기계적인 실력은 주체적이거나 창의적인 사고력과 맞바꾼 결과물이라 생각하면 움찔하지 않을 수 없다.

부모의 역할에는 아이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보호자의 역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인 개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력자의 역할도 있다. 그런데 이 조력자는 정답을 찾아주는 사람도, 잘한다고 칭찬하는 사람도, 대가나 권한을 주는 사람도 아니다. 내가 생각할 때 조력자란 아이 혼자서 생각하고 고민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결정이 틀려도 위험하지 않다고 다독여주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실수하는 모습을 보고 즐거워할 부모는 없다. 그러나 실수가 아니라 그 역시 아이의 선택이라면 얘기는 달라지지 않을까? 가장 나쁜 부모는 성공이란 명분으로 아이에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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