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하는 밤 산책이 좋다.
야생너구리도 밤 산책 중
퇴근하자마자 새롬이 밥부터 챙긴다.
이제는 내 퇴근시간에 맞춰 새롬이 배꼽시계의 알람이 울리나 보다. 밥 달라 짖어대는 녀석 덕분에 옷 갈아입을 여유도 없이 밥부터 대령한다. 밥을 먹었으면 이제는 간식 대령. 그다음 루틴은 산책이다. 집안일에 시간을 지체하다 자칫 녀석의 심사라도 건드리면 패드가 아닌 엉뚱한 장소에 오줌 테러를 자행할지도 모른다.
그나마 씩씩이를 보낸 후론 숨이 턱까지 찰 정도로 헐떡이던 일과에서 조금은 벗어났다. 어쨌든 건사해야 할 녀석이 한 녀석으로 줄어 예전에 비함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한 14년 전부터 내 시간은 하루 24시간이 아닌 26시간으로(한 마리당 1시간씩 추가) 살아온 것 같다. 허투루 낭비한 시간 없이 참 알차게 살아왔다.
미리 땡겨쓸수도, 영끌해 모았다가 비축해 놓을 수도 없는 것이 시간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있을 만큼 불공정. 불평등이 만무한 세상이지만 부자건 가난하건 상관없이 공정하고 공평한 것이 또 시간이다. 두 녀석을 키울 때는 늘 시간에 쫓겨 마치 시간요리사라도 된 듯 요리조리 쪼개서 참 밀도 있게도 썼다. 그래야만 직장생활도, 집안 살림도, 두 녀석 산책도, 내 운동 시간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씩씩이를 보내고 퇴근 이후 시간이 그전처럼 많이 바쁘지 않다. 지금은 새롬이와의 짧은 저녁 산책이 끝나면 혼자만의 느긋한 산책 시간을 갖는다. 가벼운 운동 시간이자 사색의 시간이기도 하다
요즘은 어둠이 내리면 집 근처 공원 내 산책로를 자주 걷는다. 강아지 없이 혼자 하는 산책은 오로지 내 마음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날 하루 있었던 일들을 마음의 필터링을 가동해 정리하고 불쑥 떠오르는 단상을 붙잡아 마음에 새기기도 한다.
혼자 하는 밤산책은 강아지를 대신해 풀벌레, 나무, 꽃들이 친구가 되어 준다. 낮동안 내 귀의 주인 노릇을 하던 자동차 소리, 사람 목소리. 기계 소리가 멈추니 결국 고요한 자연의 소리만 남는다. 야생너구리도 밤에 지분이 있다는 듯 짝을 지어 산책로를 지나간다.
집 앞에 핀 천사의 나팔꽃도 밤이 되니 더 진한 향기를 내뿜는다.
낮과 밤의 주인이 다르다는 것을 시간의 여유를 찾은 후에야 깨달았다. 그동안 얼마나 정신없이 살아온 걸까.
느리게 걸으니 마음 사이로 가을 풍경이, 진한 꽃향기가 스며온다.
밤이 되어 고요한 정적이 찾아올 때만 들을 수 있는 자연의 소리.
그 소리를 들으며 풀벌레. 나무와 함께 밤의 주인 노릇할 수 있는 혼자만의 산책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