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써니현 Oct 03. 2024

내 인생에 결정적 영향을 준 인물(1편)

20살에 만난 이 과장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19살부터 취업해 일했으니 직장생활을 꽤 오래 했다.  대학시절 4년, 결혼해 딸아이 낳고 6개월, 임용공부를 위해 8개월 동안 피치 못해 직장을 쉬어본 것 외에는 평생 나와 가족을 위해  밥벌이를 해왔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회사 경리직으로 1년, 대학을 졸업하고 간호사로 병원에서 6년, 임용공부를 위해 병원이 아닌 직장에서 사무직으로 1년, 학교에서 보건교사로는 18년째 근무 중이니 대략 26년 이상 다양한 직장에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왔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6년 직장 생활 동안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준 몇 명의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써볼 참이다.


 OO상사(당시 회사명), 이 과장(40대)

-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회사 경리직으로 일하던 시절 내 직속상관이었던 이 과장. 가정생활이 순탄치 않았는지 어느 날부터 사무실로 사모님이 자주 전화를 걸어와 이 과장의 부재와 동선을 확인했다. 사모님이 전화가 왔었다는 메모를 전달하면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줄담배를 태웠던 이 과장.


회사로 걸려온 전화를 받은 것뿐인데 그런 날은 유독 짜증을 부리며 나를 갈궜던 이 과장.


그러던 어느 날 사모님이 회사건물 지하에 다방 앞에서 젊은 여자와 머리채를 잡고 싸웠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이유인즉 이 과장이 다방에서 일하던 20대 초반 젊은 여직원과 바람을 피웠단다.


그 다방 언니는 중년의 대리님들이 사무실로 커피를 시킬 때마다 종종 배달을 왔던  언니로 나도 본 적이 있던 터였다. 큰 키에 날씬했던 그 언니는 짧은 흰색 반바지를 즐겨 입었고 쇼트커트에 하얀 피부를 가진 딱 봐도 눈에 띄는 예쁜 외모였다.


그 언니와 이 과장이 바람을 피웠다니ᆢ

사실 내 나이 20살로 세상물정 몰랐지만 잦은 사모님의 전화와 이 과장의 외출로 뭔가 폭풍전야와 같다는 눈치는 채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바람의 대상이 다방 언니일 줄은 상상도 못 했었다.


뭐 내 입장에선 이 과장이 바람을 피우든 말든 그 불편한 심사가 나를 향하지만 않으면 그만이었다.

머리채 사건 이후로 이 과장의 가정사는 알 수 없었지만 더 이상 사모님이 회사로 전화하는 일은 없었다.


각설하고  이 과장의 외도 사건을 길게 서술한 이유가 있다. 그가 불편한 심사에 놓였던 시절, 내 삶에 결정적 영향을 준 단어가 이 과장의 입에서 발설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페이롤(payroll)'.


이 과장은 바쁘게 일하던 내 뒤통수에 대고 줄담배를 태우며 뿌연 담배연기와 함께 짜증 섞인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야, 미쓰리. 페이롤 가져와'

당시 회사 내 내 호칭은 (이양 또는 미쓰리)였다.


나는 페이롤 이란 생소한 단어를 바로 알아듣지 못했고 이 과장은 머뭇거리는 나를 보며 이때다 싶었는지 똥 씹은 표정으로 불같이 화를 냈다.

'야!  페이롤 몰라? 페이롤? 학교에서 그것도 안 배웠어?'


*페이롤(payroll)-급여 대상자 명단


결국 옆자리 선배의 도움으로 그놈에 페이롤을 찾아 건넸지만 이 과장의 냉담한 멸시의 눈빛을 기어이 읽고 말았다.

 

회사는 시골에 위치한 지사였지만 나름 서울에 본사를 둔 중견기업이었기에 나와 현지 채용된 몇 분의  대리님들을 제외하고는 본사에서  파견 온  대졸 출신 관리자 거나 대졸 신입사원들이었다.

당시 이 과장의 페이롤 발언은 고졸의 20살 경리였던 내 현재 위치를 단박에 깨닫게 해 주었고 대학 진학의 결정적 계기가 되어 주었다.


이 과장님~~

과장님의 페이롤이 발단이 되어 처음으로 대학에 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어요. 당시는 과장님 많이 미워했는데 돌아보니 내 인생의 궤도를 바꾸어준 귀한 인연이었네요. 과장님 소식은 이제 들을 길이 없지만 사모님 속 썩이지 마시고 행복하시길 미쓰리가 기원드려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