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저귀로 피부가 짓무를까 걱정되어 잠자는 동안이라도 편히 자도록 기저귀를 벗겨 주었더니 자꾸 요의가 느껴지는지 아니면 통증이 있는지 요도부위를 계속 핥고 소변을 보기 위해 새벽 내 들락날락거렸다. 소변도 시원하게 보지 못하고 계속 찔금찔금이다. 소변볼 때 힘을 얼마나 주는지 방귀까지 나온다. 산책을 나가서도 자꾸 대변보는 자세를 취하는데도 대변은 잘 나오지 않는다. 지켜보는 내내 애가 타고 마음이 무너진다. 사람도 소변 참는 게 고통스러운데 씩씩이도 얼마나 힘들까.
어떻게든 잠을 이루도록 녀석의 몸을 계속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던 중 뱃속에서 꽤 큰 덩어리가 만져진다. 아마 암 덩어리인 것 같다. 큰 암덩어리가 작은 몸속 요도를 압박하고 장을 압박하니 대소변이 잘 나오지 않는 것 같다.
안 되겠다 싶어 퇴근하고 병원에 가기로 했다. 수의사샘은 잠시 재우고, 관을 요도로 넣어 소변을 빼보겠다고 하셨다. 임시방편이겠지만 잠시라도 씩씩이가 편안해질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해주고 싶다.
사람과의 인연도 그 사람의 인생 전체 즉, 소우주가 내게 오는 것이므로 인연을 아무 하고나 함부로 맺지 말라고들 한다. 사람의 인연만큼은 아니지만 내가 책임져야 하는 생명을 가진 존재와 인연이 닿아 생로병사를 함께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건강하고 귀여운 아기 시절에는 애교 부리는 게 마냥 예쁘기만 하다. 씩씩이도 이 시절에 내게 할 평생 효도를 다했다.
하지만, 노견이 되고 아프기 시작하면 사람과 똑같다.
병원에 자주 다녀야 하고 약도 먹여야 하고 병원비 지출도 커진다. 또 아픈 녀석들 간호하기도 쉽지 않다. 매시간 약을 먹여야 하니 여행이나 외출도 쉽지 않고 무엇보다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내 몸 아프듯 아프다.
나는 이제껏 애착 대상을 떠나보낸 경험이 많지 않다. 엄마도 연로하시지만 아직은 건강하신 편이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난 그다지 슬프지 않았다. 크게 애착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마음이 크지 않았다면 떠나보내는 슬픔 또한 크지 않다. 내가 대상과의 이별이 아프고 슬프다는 건 그만큼 애착이 컸기 때문이다.
돈을 꾸었으면 어떻게든 갚아야 하듯이 사랑의 기쁨을 얻었으면, 이별의 고통 또한 감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