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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현 Apr 11. 2024

2023년 11월 25일 씩씩이  
방광암 투병기

고통의 시간이 주는 의미! 의미를 찾아야 견딜 수 있다.

오늘은 씩씩이가 제 곁을 떠난 지 17일째입니다.


이 투병기는 씩씩이와 제가 한참 암과의 사투를 벌였던 처절한 고통의 시기에 블로그에 썼던 기록들입니다.  씩씩이를 떠나보내고 투병기를 찬찬히 다시 읽다 보니 당시 가슴 저미듯 아팠던 감정들이 마치 어제일인 양 올라옵니다.


동시에 당시 제 마음을 어떻게든 잘 표현하고자 했으나 부족한 필력으로 인해  매끄럽지 못한 단어나 문장들이 거슬립니다.

브런치에 공유하기 전에 좀 더 세련된 단어나 문체로 수정이 필요할 것 같아 글을 계속 만지작거리는데, 희한하게도 수정하면 할수록 당시 절절했던 감정들이 점점 훼손되어 가는 느낌이 듭니다.


슬픔으로 휘청이며 간신히 정신줄 부여잡으려 쓴 글이니 만큼 제 진정성에 초점을 두려면 글을 세련되게 수정하기보다는 부끄럽지만 최대한 원문을 살려 공유하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씩씩이의 투병기간 동안 온통 슬픔과 절망, 고통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처음 방광암을 진단받고 너무 놀란 나머지 한동안 슬픔을 주체할 수 없었던 시기도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절망의 이면에 가득 숨어있던 수많은 희망을 만났고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사랑이 얼마나 사람을 변화시키는지, 얼마나 헌신할 수 있게 하는지도 배웠습니다. 또 생명이 소멸하는 죽음의 과정을 온전히 겪어낸 씩씩이를 보며 동물이지만 존경의 마음을 갖게 되었고 훗날 제 죽음에 대해서도 미리 성찰하게 되었습니다. 죽음 언저리에서 반려견과 나눈 교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고 사랑은 모든 경계를 허물수 있는 강력한 기적의 힘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씩씩이의 암 투병 과정을 지켜보며 수많은 암 환자분들과 그 가족분들이 겪을 아픔과 고통을 누구보다 공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족한 엄마에게 이 모든 배움의 장을 열어준 사랑하는 아들 씩씩이게 이 글을 바칩니다.




씩씩이와 병원에 다녀온 후 마음이 무겁다.

수의사샘은 생각보다 암조직이 빨리 퍼져 씩씩이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거라고 하셨다. 이 정도면 항암제 치료도 의미가 없고 다른 장기부전 위험 신경 쓰지 말고 고용량의 스테로이드로 소변이라도 잘 볼 수 있도록 하는 게 최선이라고 하셨다.


 사람으로 치면 호스피스 치료가 시작되었다.


예상도 했고 마음의 준비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전화기 너머 들리는 감정끼  빠진 딱딱한 목소리가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운 칼날 같다. 내 머릿속은 순간 납덩이에 눌린 듯 멍한 진공상태로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만 들고 있었다.


그렇게 통화가 끝나갈 즈음 나는 정신줄을 붙잡고 겨우 입을 떼어 지극히 이성적인 질문을 했다.

" 선생님. 저는 아직 믿기지가 않아요. 그러면 씩씩이  마지막은 어떻게 죽나요?"


씩씩이는 폐로 암이 전이되어 호흡부전이나 소변을 못 봐 신장부전으로 떠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지금은 그런대로 밥도, 간식도 잘 먹고 평소대로 산책도 다니는데 어떻게 갑자기 상태가 급변해 악화일로에 들어선다는 걸까.


그 시기와 상관없이 내 마음의 준비는 영 불가할 것 같다.


나는 평소 불안과 두려움이 핵심감정인 사람이다. 그래서 그 감정을 다스리고 잠재우는데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또, 그런 감정을 촉발하는 일이나, 인간관계는 미리 피하거나 피할 수 없다면 빨리 맞닥뜨려 매듭을 짓고 서둘러 잊어버리려고 한다.


이런 성향의 내가 씩씩이와의 예정된 이별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산산이 조각나 부서져 내릴게 뻔한 마음 한편을 붙잡을 어떤 뾰족한 묘수도 떠오르지 않는다.          

한마디로 씩씩이를 죽음으로 이끌 흉악한 방광암 녀석의 공공연한 선전포고에도 아무런 저항 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마냥 슬퍼하며 무기력한 채 얼마 남지 않은 씩씩이와의 귀한 시간을 의미 없이 흘려보낼 수는 없다, 지금 당장 씩씩이에게 줄 수 있는 건 엄마의 애틋한 사랑과 아름다운 지구별의 추억뿐이다.


씩씩이의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생각하니 자꾸 마음이 조급해진다.

병원을 나와 바로 산책을 했다. 동네 친구들의 냄새를 맡고 겨울 한기를 코끝에 가득 담고 씩씩이는 여전히 씩씩하게 앞으로 직진한다. 집에 돌아와서는 저녁을 준비한다. 최애 간식 닭가슴살과 고구마를 사료에 섞어 준다. 아픈 와중에도 맛있게 먹어주는 녀석이 고맙다.


나는 사실 고통의 시간이 주는 의미를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의미를 찾을 여유가 없다.

지금은, 나를 아프게 하는 상처의 기전을 찾아 이해하기보다는 당장의 상처연고와 밴드가 우선이다.


지금은 씩씩이와의 눈 맞춤이 간절한 시간이다.

씩씩 아. 너의 남은 시간도 엄마와 행복하자.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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