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만 매일 산책하는 강아지
주말에는 아침, 저녁으로 녀석들과 산책을 나가야겠다고 다짐한다.
지금은 두 녀석 다 노견인지라 산책 스케줄도 예전 젊을 때 같지 않다.
나의 평일 일정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휴대폰 알람 소리에 맞춰 6시에 기상해 서둘러 밥을 먹은 후 7시 반경에 새롬이 산책 물품을 챙겨 허겁지겁 산책을 나간다. 출근 전까지 내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40여 분. 시간을 아끼려 대강 화장을 하고 출근 복장으로 갈아입은 후 산책을 나가기까지 아침 시간은 정말 총성 없는 전쟁이다.
이런 내 상황과 달리 새롬이는 14살 노견답게 아가들 걸음마하듯 이곳저곳에 킁킁 코를 박으며 느긋한 산책을 즐긴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다시 총성 없는 전쟁의 2차전에 돌입한다.
저녁을 간단히 먹은 후 이번에는 씩씩이와 산책을 나간다. 아침 시간보다는 여유롭지만 저질 체력인 나에게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걸어야 하는 나름 강행군 일정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 녀석들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주말이라도 아침저녁으로 하루 두 번씩 산책을 시켜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내가 이토록 산책에 진심인 이유가 있다.
14년 전 새롬이를 처음 키우게 되었을 때 동물을 이미 키워본 적 있는 베테랑 견주 친구가 귀띔해 준 정보 때문이다. 친구 말로는 강아지는 간식보다 산책을 더 좋아한다고 했다. 얼마나 산책이 좋으면 세상 천하무적 '간식'보다 더 좋아한다는 걸까? 최근에야 동물 관련 프로그램이 많아지면서 견주라면 산책의 중요성을 대부분 알고 있지만 내가 강아지를 처음 키울 시기만 해도 동물농장 외에는 반려견 관련 정보를 얻을만한 tv프로그램은 전무했었다.
그 얘기를 듣고 지금까지 악천후를 제외하고는 하루도 빠짐없이 줄기차게 산책을 나갔다. 하루 종일 나만 기다리고 있을게 뻔한 녀석들에게 나의 24시간 중 한두 시간이라도 녀석들에게 내어주는 게 견주로서 최소한의 양심이었고 사랑을 표현하는 나만의 방식이었다.
새롬이와 씩씩이가 모두 팔팔한 청춘 시기에는 두 녀석이 함께 산책을 다녔다. 그러다 새롬이가 노쇠해지면서 씩씩이의 보폭을 따라가지 못하게 되고 결정적으로 새롬이가 사드(sard)라는 희귀 질환으로 양쪽 눈을 완전히 실명하면서 녀석들은 따로따로 산책을 다니기 시작했다.
이제는 녀석들뿐 아니라 나 역시 나이를 먹었다.
어느덧 나도 이유 없이 몸이 아프다. 예전에는 다치거나, 몸을 무리해서 사용했거나 내가 충분히 인지할 만한 명백한 이유가 있어 아팠지만 지금은 딱히 별다른 이유가 없이도 그냥 몸이 아프다. 이제 내 체력도 녀석들과 한 시간 이상의 산책은 당해낼 재간이 없다.
가끔씩 퇴근 후 술 한잔하자는 친구의 청을 강아지 산책을 이유로 거절하는 날이면 일명'개집살이'가 쉬운 게 아니라며 푸념 섞인 한탄을 늘어놓기도 했었다. 하지만 나는 친구들과의 술자리 보다 녀석들과의 오붓한 산책 시간이 더 좋았다.
어제 일요일은 오전, 오후 두 번씩 녀석들과 산책을 나갔다.
방광암을 앓고 있는 씩씩이는 기저귀를 풀고 소변을 마음껏 볼 수 있는 산책이 얼마나 홀가분한 시간일까.
최근 들어 씩씩이는 한두 방울씩 소변이 지속적으로 새다시피 해 산책 시간 외에는 기저귀를 계속 차고 있어야 한다. 기력도 예전 같지 않다. 또 소변을 보면 통증이 밀려오는지 깨갱하며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일도 잦아졌다.
언제까지 우리 씩씩이가 엄마와 함께 산책을 다닐 수 있을까?
더 이상 슬픔의 구렁에 나를 가두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는다. 모든 인연은 생명과 같아 언젠가는 소멸의 시기가 온다. 그 자연의 이치가 나의 인연에도 다가온 것뿐이다. 무엇보다 내가 슬퍼하면 씩씩이가 더 슬퍼할 것 같다.
슬픔은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더해질 때 증폭된다.
더 잘해주지 못했다는 후회, 방광암 수술을 시키지 않았어야 했나 하는 후회, 그리고 녀석들이 내 곁을 떠난 후의 공허함, 슬픔, 허전함을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까지 이 모든 감정들을 뒤로하고 나는 이제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려고 한다. 녀석들과 더 자주 산책을 다니고, 더 많이 안아주며 교감하고, 맛있는 간식도 더 많이 챙겨주려고 한다.
우리는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또 나를 둘러싼 환경이 고정된 실체인 거 마냥 착각하며 과거에 대한 후회와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의 불안에 시달리며 지금 이 순간을 살지 못한다.
다른 건 몰라도 사랑한다는 표현만은 내일로 미루지 말자.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의 허무함과 잔인함에 무력하게 고개 숙이지 말고 지금, 바로 이 순간 사랑하는 대상에게 내 마음을 담담하고 진솔하게 표현해 보자.
오늘 저녁은 비가 안 왔으면 좋겠다. 뭐 비가 와도 좋다. 우산을 쓰고 씩씩이와 산책을 나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