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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현 May 17. 2024

집밥귀신 붙은 엄마의 외식은 무서워

엄마와 나, 그리고 집밥의 연결고리

연휴에 새로 이사한 엄마 집에 다녀왔다.

작은 평수라도 남의 집이 아닌 엄마집이라 2년마다 이사할 걱정이 없어 매우 편안하다 하신다.

베란다를 통해 보이는 뻥 뚫린 논밭뷰가 보기만 해도 시원한 것이 심리적 가치로는 한강뷰 고층 서울 아파트 못지않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엄마 스타일의 어수선한 예전 집 상태로 다시 회귀하는 듯하다. 

아무리 새 물건을 갖다 주어도 주인이 소중히 다루지 않으면 바로 헌 중고가 되어 버리는데 엄마는 그 분야 선수다. 낼모레 여든이 돼 가는 엄마가 갑자기 바뀔 일도 없겠지만 이제 엄마 소유의 집이니 깨끗이 청소하고 말끔하게 정리하며 사시라고 소용없는 잔소리를 해본다. 잔소리가 길어지면 엄마의 심사를 건드릴 위험이 있어 적당히 양념만 치고 직접 청소기를 집어 들었다.


어린 시절 머리카락 천지였던 오래된 낡은 시골 주택에서 자란 탓인지 알레르기 비염은 지금도 고질병이다. 그 결과 머리카락과 먼지는 내게 박멸대상이다. 바닥에 머리카락이 보이면 바로 치우지만 먼지는 매일 청소기를 돌려도 정해진 할당량이 있다는 듯 매일 쌓인다. 화장실 청소까지 할까 하다 피곤이 휘몰아쳐 청소기만 대충 돌리고 드러누웠다.


'大'자로 누워있음 노년의 엄마는 다 큰 아니, 다 늙은, 아니 이제 겨우 중년이 된 딸에게 밥상을 대령한다.

중년의 딸은 엄마가 끓여준 된장찌개를 좋아한다. 보통 때는 노쇠한 엄마에게 밥상을 받기 미안해 대부분 외식을 . 하지만 이번에는 엄마표 된장찌개가 먹고 싶은 마음에 딸들과 손주들에게 집밥을 해주겠다는 엄마의 쇠심줄 고집을 부러 꺽지 않았다.


역시 엄마가 끓인 된장찌개는 구수하니 맛있다. 내가 아무리 갖가지 재료에 육수를 내어 엄마가 담가 준 된장을 풀어 찌개를 끓여 내도 희한하게 엄마가 끓인 된장찌개 손맛은 따라가지 못한다. 시장에서 게를 사다 담갔다며 간장게장도 내놓으신다. 오랜만에 엄마가 차려준 밥상이 맛있어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웠다.


요즘은 가족 모임이 있으면 힘든 엄마를 생각해 외식을 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도 엄마 사전에 외식이란 없었다. 외식에 '외'자만 꺼내도 엄마의 일장연설이 흘러나온다. 외식 비용으로 장을  집에서 요리하면 세 사람 먹을걸 열사람이 먹을 수 있고 돈도 적게 드는데 왜 밖에서 밥을 사 먹느냐며 엄마에게 외식은 돈 무서운 줄 모르는 여자들의 사치 행각이나 다름없었다. 외식비용은 음식과 더불어 내 시간과 노동력을 절약한 대가임에도 오로지 지갑에서 빠져나가는 '돈'만 생각하셨다. 


나는 엄마의 고집과 돈의 표상인 집밥이 싫었다.

내게 집밥의 의미는 엄마의 사랑이라기보다 평생에 걸친 절약 수단이었고 힘든줄도 모르고 차려냈던 엄마의 고된 노동과 귀중한 시간의 집약체였다.  그렇게 엄마의'食'문화는 자급자족 문화로 외식을 통한 시장경제 활성화에는 일절 일조하지 않으셨다.


한 번은 가족여행으로 펜션에 놀러 간 적이 있다.

그때도 엄마는 자식들 돈 아낀다고 설쳐가며 새벽부터 일어나 밑반찬을 만들고 김치까지 싸들고 오셨다. 놀러 가서 숯불에 고기 구워 먹을 테니 제발 먹지도 않을 반찬은 가져오지 말라고 그렇게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다. 그렇게 잠 못 자고 준비한 반찬은 여행지의 맛있는 음식들에 밀려 거들떠도 보지 않을게 뻔함에도 왜 그런 청승을 떠는지 모를 일이다. 여행의 핵심인 관광지 구경은 잠을 충분히 못 잔 탓에 언감생심이다. 그래서 엄마와의 여행은 힘들다. 결국 관광 중에 피곤하다며 짜증을 내고 숙소에서 잠만 주무시다 가신다.


예전 시골 사실 때도 손맛 좋고  베풀기 좋아하는 성정 탓에 엄마집밥으로 허기를 달랜 사람들이 많았다.

더러 고맙다며 엄마에게 밥을 사겠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엄마는 한사코 호의를 물리쳤다. 한번 얻어먹으면 자신도 한번 사야 한다는 등가교환 강박 때문이었다. 엄마는 행여 당신 돈 나갈 걱정에 매번 남들에게 집밥을 해 먹이면서도 정작 본인은 밥 한 끼 편하게 얻어먹지 못했다.


한 번은 엄마 친구들과 함께 계곡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그때도 친구분들이 엄마에게 밥을 산다고 했단다. 하지만 엄마는 왜 쓸데없이 돈을 쓰냐며 한여름 찜통 더위에 닭백숙을 한 솥 끊여 양동이에 담아 반찬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계곡까지 가져왔다. 친구분들은 엄마의 억척스러움에 전생에 무수리였냐고 우스갯소리를 했고 엄마는 자기 돈뿐 아니라 친구들의 돈까지 아껴주었다며 자랑삼아 이야기했지만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살면서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조건 없는 호의와 도움을 받고 귀히 여겨지는 경험이 축적되어 자신이 충분히 사랑받고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임을 자각한다면 엄마처럼 과한 억척은 피우지 않을지도 모른다. 무엇이든 남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은 마음 이면에는 상대에게 혹여 부담을 주어 사랑과 인정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엄마의 불안한 자아가 자리잡고 있는것 같다.


세상에 내 돈 쓰는데 아깝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나. 

엄마에게 밥을 사겠다 할 때는 그동안 밥신세 진 것에 대한 미안함과 기쁜 마음으로 보답하고 싶은 선의가 있었을 텐데 왜 그렇게까지 엄마의 생각만 고집하며 상대를 배려하지 못하는지 안타까웠다.

돈 자체에만 매몰되어 돈이 주는 행복한 시간의 가치를 알지 못하는 엄마가 불쌍하다.


그랬던 엄마가 단박에 변하게 된 계기가 있다.

엄마의 습관을 고쳐야겠다는 계획하에 어느 날 외식을 거부하는 엄마만 쏙 빼놓고 우리끼리 맛집에 가서 외식을 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엄마는 외식을 싫어하니 혼자 집밥 드시고 우리끼리만 외식을 하겠다고 통보를 했다. 그 일 이후 엄마는 본인만 손해인걸 깨달았는지 외식에 군소리 없이 참여하신다. 요즘은 외식을 나가도 돈 아깝다고 불평하는 횟수도 줄었다.


나는 딸 이전에 인간 대 인간으로 엄마에게 알려주고 싶다.

엄마도 충분히 존중받고 사랑받고 대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동안 고생만 하며 힘들게 살아온 탓에 외식이 호환마마보다 무섭겠지만 이제는 여유를 갖고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도 사드시고 즐겁게 여행하며 남은 인생 편안히 사셨으면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외식을 하며 한 번쯤 가사노동의 시름에서 벗어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거운 담소를 나누는 것이 엄마가 그토록 두려워하고 사랑하는 돈의 효용 가치임을 알았으면 좋겠다.


엄마, 돈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행복을 불러오지 못해요.
돈은 씀으로써 잃어버리는 게 아니고, 사실 돈으로 행복한 시간과 추억을 사는 거예요. 돈을 쓴 대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 시간과 추억이 남잖아요. 돈 보다 그 시간과 추억의 가치를 상기해 보셨음 해요

p.s : 엄마가 평생 차려준 집밥이 그렇게 많았음에도 사진 한 장 찍어놓은 것이 없네요. 아마도 평생 징글징글한 집밥이었나 봐요~. 다음에는 꼭 사진 찍어 놔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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