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엄마가 전한 진심 어린 사과의 힘
엄마와 나, 그리고 사과의 연결고리
엄마의 엄마는 엄마 환갑 때까지 살아 계셔서 가족 식사에 참석하셨지만, 엄마 칠순 때는 돌아가신 이후라 참석하지 못하셨다. 외할머니는 내가 20대 초반 무렵까지 시골 우리 집에서 도보 15분 거리에 사셨다. 그러다 연세가 드시면서 아들들이 거주하는 대전으로 이사 가셨다.
엄마는 시장에서 장을 보면 생선을 사도 두 집치를 사서 하나는 할머니댁에 가져다 드리곤 했다. 자전거 바구니에 찬거리를 싣고 쌩쌩 달려 할머니 댁으로 가 이런저런 대화를 한참 나누다 집에 돌아왔다.
엄마는 먹고살기 힘들 때 모른척했던 부모를 원망하면서도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어주는 것 역시 부모이기에 나름 할머니를 챙겼고 할머니 또한 한때 지독한 방황으로 속 썩였던 엄마 때문에 늘 가슴앓이를 했다.
나는 할머니가 눈물 쏙 빠지도록 무섭게 엄마를 혼내주길 바랐지만, 할머니는 어린 손녀들에게 엄마가 정신 차릴 수 있도록 너희들이 얘기 좀 해보라며 볼 때마다 푸념 섞인 한탄을 했다. 나도 엄마 때문에 속상하긴 매한가지 여서 부모입장인 할머니의 마음이 이해가 됐다. 하지만 부모 이야기도 안 듣는 다 큰 엄마가 자식들 이야기라고 듣겠냐며 또 얘기해서 엄마가 들을 것 같으면 벌써 수천번도 더 얘기했을 거라고 똑같이 할머니에게 한탄하고 싶었다.
나는 엄마가 할머니와 다정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평화롭고 좋았다. 할머니와 엄마의 대화를 듣고 있으면 코미디가 따로 없었다. 할머니는 유쾌했고 유머러스하고 다른 사람의 특징만 살려내 흉내도 잘 내셨다.
하지만 엄마는 엄마의 엄마에게 풀리지 않는 양가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양가감정도 대물림되나 보다.
엄마는 할머니가 어릴 때 동생들 보라며 학교에 보내주지 않았던 일, 미술대회에 학교 대표로 나가게 됐음에도 교통비를 주지 않아 대회에 못 나갔던 일, 성인이 되어서도 모질게 매를 들었던 일 등을 자주 이야기했다.
그중 엄마에게 가장 큰 상흔을 남긴 일화는 할머니에게 피가 나도록 맞았던 일이었고 우리에게도 틈만 나면 그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할머니에게 효도하고 싶은 의식의 지향과 달리 의식 저편에 꽁꽁 묻어둔 할머니에 대한 짙은 원망의 매듭이 풀리는 날이면 해묵은 원망과 분노의 감정을 폭발하듯 쏟아냈다.
할머니는 텔레비전에서 하는 권투경기, 씨름경기를 좋아했다.
시원한 잽에 상대 선수가 KO 녹다운되는 장면이 나올 때면 아주 통쾌해하셨는데 엄마는 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볼 때마다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뒤돌아 할머니 흉을 봤다. 사람 때려잡는 잔인한 운동경기가 뭐가 그리 즐겁다고 노인네가 저리 재미나게 보고 있냐며 할머니에게 무자비하게 맞았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꿈틀댈 때마다 폭력의 트라우마로 몸서리 쳤다.
나는 철이 들면서 할머니에 대한 엄마의 감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사랑이란 출발지점에서 시작한 감정선의 끝자락에 미움과 분노, 원망이라는 감정이 대척점을 이룬 양가감정.. 할머니를 사랑하는 감정일 때는 살뜰하게 찬거리를 챙기다가, 불현듯 폭력의 기억이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를 때면 치를 떨며 미워했다. 엄마도 평생 감정의 양극단을 오가며 부모를 향한 일관성 없는 감정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때로 부모를 증오하는 자신을 자책하며 괴로워했을 테다.
엄마는 우리를 낳고 다짐했던 유일한 양육 목표가 절대 매을 들지 않는 것이었다고 했다.
할머니에게 당했던 폭력을 우리에게 대물림하지 않으려 엄마 나름 이를 악물고 참았을 테다. 내 기억에 전혀 매를 맞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초등학교 4학년 이후로 엄마에게 매를 맞은 기억은 없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뵌 것은 엄마의 환갑 식사자리였다.
할머니는 당시 거동이 불편해 지팡이에 의지했다. 동생과 나는 할머니와 대화하던 중 슬그머니 엄마 이야기를 꺼냈고 한 번쯤 기회가 되면 엄마에게 매를 든 것에 대해 사과해 주면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할머니는 특유의 멋쩍은 웃음으로 당시 먹고살기 힘들어 그런 걸 가지고 아직도 기억하고 있냐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듯했다. 하지만 할머니도 엄마의 마음을 내심 눈치채고 계셨던 것 같다. 얼마 후 우리에게 보였던 무심한 반응과 달리 엄마와 전화통화 중에 갑자기 어릴 때 많이 때려서 미안하다며 서툴지만 진심 어린 사과를 처음으로 전하셨다고 한다.
꺾일 것 같지 않던 고집의 80대의 노모가 60대의 딸에게 어린 시절 행했던 폭력에 대해 사과하자 당황한 엄마는 갑자기 뭔 사과냐며 다 지난 일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되려 위로하며 쿨하게 화답했다고 한다. 엄마는 할머니에게 사과를 받고 나서야 그간 켜켜이 쌓였던 미움과 원망, 분노의 감정을 서서히 덜어낼 수 있었다.
엄마에게 사과하고 몇 개월 지나 할머니는 급작스런 뇌출혈로 쓰러지셨고 8개월가량 중환자실에서 투병한 후 세상을 떠나셨다.
할머니가 살아생전 엄마에게 사과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엄마는 할머니의 진심이 담긴 사과를 받은 후 응어리졌던 감정이 모두 풀어지는 기적을 체험했고 그 후로는 전혀 할머니에 대한 원망을 내비친적이 없다. 가끔씩 할머니를 향한 그리움만 드러낼 뿐이다.
돌아보면 부모가 부모가 된 나이도 겨우 20대에 불과했으니 어린 나이에 부모 노릇하는 것이 얼마나 힘에 부쳤겠는가. 하지만 부모도 자녀에게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깔끔하게 인정하고 사과할 줄 알아야 한다. 양가감정이 대물림되듯 겸손하게 사과할 줄 아는 마음의 그릇 역시 대물림된다. 진심이 실린 사과는 단 몇 마디 만으로도 평생 맺힌 한을 씻어낸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없듯 완벽한 부모도 없다.
가난한 환경이라도 부모의 따뜻한 보살핌만 있다면 얼마든지 건강하고 행복한 아이로 성장할 수 있다. 아이들은 가난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입기보다 가난 때문에 방황하는 부모의 무관심과 냉대로 더 큰 상처를 받는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