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찐 러브스토리
엄마와 나. 그리고 아빠와의 연결고리
엄마는 외모지상주의 대표주자다.
일단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면 외모 품평부터 포문을 열고 배운 사람인지 못 배운 사람 인지에 대한 나름의 평가로 소개의 끝을 맺는다. 굳이 상대방의 외모를 궁금해하지 않음에도 사람의 외모를 평가하는 습관에 대해 예의가 아님을 지적하고 말려봐도 소용이 없다.
엄마가 외모지상주의가 된 데는 엄마의 엄마에게 외모에 대한 비난을 늘 듣고 자란 공산이 크다.
엄마는 자신의 외모에 대해 자신감이 없어 스스로 못 생기고 키도 작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내 눈에 엄마는 못생기지도 않았고 연세에 비해 나름 동안이며, 키도 어렸을 때는 맨 앞줄에 섰다고 하지만 지금은 다른 할머니들과 견주어도 작지 않다.
이런 외모 콤플렉스로 인해 엄마는 배우자를 고를 때 첫 번째 조건이 단연 '외모'였다고 한다. 그래야 2세라도 예쁜 외모가 나올 것 같았다며... 당시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런 기특한 생각을 했는지 그나마 아빠의 우월한 외모 유전자를 일부 물려준 엄마에게 참 고맙다.
엄마와 아빠는 선을 봐서 결혼했는데 아빠와의 첫 만남부터 한눈에 반했다고 한다. 당시 아빠는 군복무 중이었고 잠시 휴가 나온 틈에 집안 어른들의 권유로 엄마와 선을 봤다고 한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뽀얀 피부, 오뚝한 콧날에 갸름한 얼굴, 눈웃음까지 아빠는 엄마 표현에 의하면 요샛말로 '꽃미남'이었다고 한다. 아빠의 외모에 반한 엄마는 다른 여타 결혼 조건은 묻지도 따지도 않았지만 그런 엄마와 달리 아빠는 엄마의 외모가 마음에 안 든다며 퇴짜를 놓으려 했단다. 하지만 가난한 아빠집과 달리 엄마집은 시골에서 배곯을 일 없는 부농이었기에 친할머니는 아빠의 의사를 무시하고 엄마와의 결혼을 종용했다고 한다.
엄마말에 의하면 아빠는 당시 동네 여자들에게 꽤 인기가 많았는데 엄마가 알고 있는 아빠의 연애 횟수만도 두 번으로, 그 두 번 모두 친할머니의 반대로 헤어지게 됐다 하니 아빠도 엄청 효자였던 것 같다. 엄마가 아빠의 총각시절 연애사를 알게 된 경위로 말하자면, 한 번은 눈치 없는 동네 어른들의 귀띔으로 알게 되었고 한 번은 아빠가 감전사고로 돌아가시고 초상을 치르는 중에 왠 낯선 여자가 싸리문 밖에서 이제 나는 어떻게 사냐고 울부짖으며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하더란다. 올망졸망 어린 딸 셋만 덩그러니 남겨둔 채 급작스레 세상을 떠난 남편으로 인해 혼절하듯 정신이 나가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던 엄마와 달리 문밖에서 생전 처음 보는 여자가 세상 다 잃은 듯한 깊은 절망으로 울고 있는 형국이라니....
엄마는 당시 그 여자의 정체에 대해 묻거나 궁금해할 정신도 없었단다. 추후 들려온 얘기로 아빠와 그 여자는 혼사까지 오갔다가 할머니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된 사이였다고 하니 꽤 깊은 사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미 세상을 떠난 남편에게 여자의 정체를 추궁할 길이 없으니 엄마는 아빠가 짧은 생이라도 즐겁게 살다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진심이냐고 재차 물었지만 엄마는 정말 진심이라고 말하며 두둑한 배포를 보여주었다.
엄마와 아빠는 결혼부터 순탄치 않았는데 아마도 이게 불행의 서막을 알리는 징조였지 싶다.
엄마는 아빠가 휴가 나온 틈을 이용해 번갯불에 콩 볶듯 결혼하는 바람에 결혼식은 생략한 채 결혼 기념사진만 부리나케 찍고 아빠는 부대로 복귀해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본 엄마와 아빠의 사진은 이 기념사진이 유일한데 엄마는 한복을, 아빠는 군복을 입고 손도 잡지 않은 채 둘 다 차렷자세로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그렇게 아빠는 엄마와 정을 쌓을 새도 없이 군복무를, 엄마는 남편도 없이 혼자 층층시야 시댁 어른들을 모시며 고된 시집살이를 했다고 한다. 아빠는 애초부터 사랑 없는 결혼이었기에 3년여의 짧은 결혼생활 동안 엄마에게 마음을 주지 않다가 하나둘 딸들이 태어나자 조금씩 곁을 내주며 정을 표현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아빠와 달리 엄마의 사랑은 시종일관 한결같았는데 아빠가 힘든 게 싫어 힘든 농사일부터 집안일까지 죄다 엄마가 도맡는 건 기본이고 없는 살림에도 시장에서 옷을 사 와 아빠에게 입혀주면 그 모습을 보는 것이 그렇게 흐뭇하고 좋았다고 한다.
나는 아빠에 대한 기억이 없어 아빠의 모습을 사진으로 밖에 볼 수 없지만 내가 봐도 젊을 적 아빠는 엄마가 반할만했다. 배움은 많지 않았지만 한자에 능통해 동네 아기들의 작명을 해주고 말수도 많지 않아 집안 어른들 조차 아빠에게 예우를 갖추었다고 한다.
지금은 유실되고 없지만 아빠의 유일한 유품을 본 적이 있는데 바로 군복무 시절 아빠가 기록한 노트였다. 노트에는 아빠가 직접 지은 시부터 하루의 짧은 단상 기록까지 예쁘고 아기자기한 그림들과 함께 기록되어 있었다.
그 귀한 유품이 엄마가 미용실을 정리하면서 유실되어 너무 안타깝다.
76세 엄마에게 아빠에 대한 기억은 돌아가신 32살에 머물러 있다. 평생을 한때 열렬히 사랑했던 첫눈에 반한 젊은 아빠를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우리 엄마!
엄마는 어찌 보면 참 행복한 사람이다.
부부간 이혼으로 원수만도 못한 사이가 되어 끝나는 경우도 허다한데 지금까지 젊고 아름다웠던 청춘 시절의 아빠를 추억하며 사랑을 지속할 수 있으니 말이다.
엄마! 다음 세상이 있다면 아빠와 꼭 다시 만나 이 생애 못 이룬 백년해로 하세요. 그때 내가 엄마의 엄마로 태어나 할머니에게 못 받은 사랑 몇 곱절로 보상해 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