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 공지영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것, 읽는 것, 가는 것..등등이 얼마나 어려운지 체감하고 있는 요즘,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선택한 책이다.
책은 예상대로 따뜻한 말로 넘쳐났으며, 또 예상외로 담담한 문장들에는 억제된 슬픔이 느껴졌다.
책은 공지영 작가님의 아픈 경험, 집에 찾아오는 세 손님과의 이야기가 차례로 이어진다.
작가님이 상대방에 해주는 말들에 독자가 위로받는 그런 책 같다.
우리가 인생에서 가장 살아 있을 때, 그때는 바로 상처받을 때이다.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 무력감을 가장 절실히 느끼는 것도 상처받을 때이다. 내가 마음을 열기만 하면 내 밖에서 나를 구원하고 치유할 힘이 있다는 가능성을 느끼는 것도 상처받을 때이다.
나도 이제껏 내 인생을 돌아보면 상처받았을 때 가장 성장했던 것 같다. 너무 힘든 순간이었을 때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고, 시에 대해 알고, 시집을 사고 그런 과정들에서 나를 돌아보고 치유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때 정신적으로 많이 성숙해졌던 것 같다.
‘스승님 어떻게 그 여자를 업고 물을 건너실 수가 있으셨나요? 수도승이 그래도 되는 겁니까?’
그러자 스승이 대답하지.
‘여자? 이놈아 그게 벌써 한 시간 전 일이구나. 나는 개울을 건너자마자 그 여자를 내려놓았는데 너는 아직도 그 여자를 업고 있느냐?’
이 이야기가 꽤 인상 깊었는데,
내가 무언가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히면
‘계속 생각하지 말자. 내 마음만 힘들 뿐이야..‘ 이렇게 마인드 컨트롤 하곤 했는데, 이렇게 이야기로 들으니까 색다르게 다가왔다.
책을 읽으면, 작가님이 겪은 큰 시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이겨내고 도리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 까지 찾아낸 작가님을 볼 수 있다.
사실 나는 나를 사랑하기가 어떤 건지 잘 모르겠다.
이게 연습이 필요하다던데, 진짜 맞는 말 같다.
나를 사랑하려면 나를 알아야 하고, 나를 공부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가장 먼저 ‘나는 개발자고..‘부터 생각하게 되는데, 이런 것들도 물론 중요하지만 (인생에서 직업이 ’나‘라는 존재에 끼치는 영향이 크니까)
내가 생각하기에 나를 알아가기 위해서는 이런 피상적인 것 말고, 나라는 존재를 내가 직시하면서 좀 더 본질적인 것들을 인지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언제 힘들어하는지
언제 회피하고 싶어 하는지
언제 기분 좋은지
책에서 나온 것처럼 사람들과 있을 때 진짜 기분이 좋은지 (참여를 안 하면 이 무리에서 멀어질까 봐.. 하는 마음에서 참여하는 게 있는지)
이런 것들?
평소에 내가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들이 나를 알아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문득 나를 애플 문서라고 생각해 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ㅋㅋ..
내 문서는 얼만큼 자세히 설명되어 있을까
어느 부분이 deprecate 되고 어느 부분이 추가되었을까
어느 부분에 아직 설명이 없을까..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내가 나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이 줄어서 그럴지도 모르지..
작가님의 ’ 생각의 암반‘에 도달하는 과정이 정말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나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
“그러면 뭐가 좋은데?”
“무슨 소리야, 공부 잘해서 나쁠 게 뭐 있어?”
“그래, 나쁠 건 없겠지만 뭐가 좋은데?”
“그걸 꼭 말로 해야 해?”
“응 굉장히 중요해 이 부분이! 말로 정확히 하는 거.”
“그럼 좋은 대학 갈 거고, 그러고 나면 좋은 직업 얻고, 그러고 나면 돈 많이 벌고, 그러고 나면 좋은 사람 만나고, 인생이 잘 풀리겠지. 그러면 행복하잖아.”
여기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응 굉장히 중요해 이 부분이! 말로 정확히 하는 거.”
여기 같다. 사실 말로 꺼내지 않으면 명확해지지 않는 것들(내가 그냥 어물쩡 넘어가려는 것)이 있기 마련인데, 말로 함으로써 그것들을 직시하는 느낌이 드는 것 같다.
생각의 암반층에 도달하고 나면 스스로 안다. 생각이 그 끝에 도달했는지 아닌지. 아직 마음이 아프지 않다면 더 가야 한다고 나는 충고해드리고 싶다.
이렇게 보니 나를 알아가는 과정은 정말 고통스러우면서도 그걸 넘는 순간 또 다른 세계를 맞이하는 일종의 학문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학문같이 알면 알수록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하는 것도 있을까싶다.
사실 나 자신에 대해 공부하는 것을 많이 외면하고 회피해왔던 것 같다.
회피하면 그 순간 내 마음이 편하니까.
하지만 계속 나를 거슬리게 한다.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질문하게 만든다. ’이게 맞아?‘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결국에는 사는대로 생각하게된다.
계속 외면하다 연말에나 와서야 이런 생각을 하는것도 참 웃기기도 하고, 이것이 연말/연초 매직인가 싶어 괜히 고맙다.
나랑 진지한 이야기를 좀 해봐야지..
이렇게 나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책을 발견해서 기분이 좋다.
한 권의 책은 우리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여야 한다네.
실로 그에 맞는 책이었던 것 같다고 감히 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