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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낯선 환경에 나를 데려다 놓았다

4부. 호흡 배우기 (프리다이빙)

by Slowlifer

“누나, 한 번 체험이라도 해봐,

진짜 좋은데~”


내 동생은 프리다이버다.

정확히 말하자면 프리다이빙 인스트럭터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본캐는 중등 특수교사, 부캐는 프리다이빙 강사다.


무슨 바람에서였을까,

어느 날 갑자기 프리다이빙에 푹 빠져서는 제주도 합숙훈련까지 하며 강사 자격증을 기어코 따낸 동생이었다.

워낙 하고 싶은 것도, 재미있는 것도 많은 친구이기에

그저 또 다른 취미거리를 찾았겠거니 크게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그게 뭐가 재밌냐, 수영도 못하는 데 그걸 어떻게 하냐” 온갖 핑계를 대며 관심도 가지지 않았고 흥미를 느끼지도 않았다.


그러면서 방학이면 늘 해외 바닷속을 자유롭게 누비는 동생의 영상을 보며 나는 가질 수 없는 세상인 양 부러워만 하는 일을 반복했다.


너는 선생님이니까,

너는 방학이 있으니까,

너는 원래 물을 좋아하니까,

그건 너니까.


동생의 자유로운 인생은 결코 내가 만들어 갈 수는 있는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시간이었다.


꽤나 여러 차례 반복되었던 동생의 권유가 제대로 들렸던 건 마음이 병들어 병가를 내고 요가를 시작한 그즈음이었다.


요가를 하며 내 몸과 마음이 그간 얼마나 뻣뻣하게 굳어 있었는지를 마주했고, 이제는 내 몸과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바꿔야 할 때라는 걸 직감적으로 깨우쳤던 걸까.


요가가 내 인생에 들어온 것처럼 프리다이빙도 그렇게 예고 없이 내 인생에 훅 들어왔다.


“수강료 낼 테니까 나도 가르쳐줘”

그냥 갑자기 해보고 싶어졌다. 물 속이라면 세상 속의 잡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가 결심한 한 가지는 관심이 가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보자는 것이었다. 관심이

가는 데 심지어 강사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나의 하나뿐인 동생이었다.


하지 않을 이유가 1도 없었다.


그렇게 나의 프리다이빙이 시작되었다.


다시 나에게 맞는 숨을 쉬는 연습이.

한껏 힘이 들어가 경직이 되어있던 나의 몸을 바라보며 구석구석 힘을 빼내는 연습이.


물에 대한 극도의 공포가 있었다.


튜브를 타고도 발이 땅에 닿지 않으면 불안해 물놀이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살아온 게 37년.


5미터 풀장을 밖에서 내려다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릿한 공포를 느끼는 건 당연했다.


수영을 배우긴 했지만 잘하지 못했다.


하지만 프리다이빙이라는 종목은 수영과는 완전히 다른 종목이라는 동생의 말을 믿고, 내가 좋아하는 동생의 말이니 그냥 믿어보기로 하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때 알았다.

공포로 가득 찬 마음이 몸을 경직시킨다는 것을.


몸과 마음은 하나라는 것을.


물이 무서우니 몸에 힘을 주고 몸에 힘을 주니 몸이 물속으로 가라앉았고 가라앉으니 더 몸에 힘을 주고 더 가라앉으니 물에 빠질까 봐 공포심은 더 커졌다.


“힘 좀 빼”

가장 많이 들었던 말, 그리고 여전히 진행 중인 힘 빼기 연습.


나는 그렇게 또 한 번 나를

기존에 내가 전혀 모르던 세상에 데려다 놓았다.


이 새로운 환경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켜놓을지,

나는 어떤 사람으로 변해갈지, 시작할 당시만 해도 전혀 알 수 없었다.


5m 깊이의 물은 밖에서 보기만 해도 벌벌 떨던 내가

보홀 바다 절벽을 맨몸으로 헤엄치게 될 줄은,

그리고 그 경험이 나의 세계관을 완전히

재정립시키는 일이 될 줄은 더더욱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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