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내 호흡 찾기 (요가편)
요가원 문턱을 넘는데 걸린 시간은 자그마치 3년.
신혼집을 얻으며 서울을 떠나 직장과 가까운 지금의 동네로 이사 온 지 몇개월 정도 지났을 때였다.
산책을 하며 오가며 왜인지 모르게 자꾸만 시선을 빼았겼던 곳이 있었다.
커다란 간판에 군더더기 없이 정직하고 단순하게 적힌 네 글자였다. 요.가.무.심.
당시 '요가'라는 것에 대한 나의 선입견은 아주 견고했다. 그저 몸을 자유자재로 접었다, 폈다, 꼬았다 할 수 있는 유연한 사람들이 할 법한 운동이라 생각했다. 왜 저렇게 스스로 고통을 자처하는지 당최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요가가 단순 신체 '운동'이 아닌 몸과 마음의 '수련'이라는 것을 알 턱이 없었던 그때의 나였다. 그런 나에게 어쩌면 당연하게도 요가는 '저 세상 남의 일'일 수밖에.
요가의 '요'자도 알지 못하던 그 당시에도 자꾸만 궁금해지던 그 공간에 내가 들어선 건, 이 동네로 이사온지 만 만3년이 지났을 때였다.
몸과 마음이 완전히 소진 되었던 그 때,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싶지만 지금도 그냥 알 수 없는 기운에 끌렸다 라는 말 외에는 요가원에 가게 된 이유를 그 이상으로 설명할 길이 없다.
여전히 얼굴에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던 그 때의 나는 알 수 없는 이끌림에 요가원에 상담 신청을 하고, 다음 날 곧장 요가원으로 향했다. 사실 요가를 시작하는 데 딱히 상담은 필요하지 않았다. 프로그램이나 요가원 내부 사진, 가격 등 필요한 정보는 이미 인터넷으로 충분히 알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도 그냥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에 상담 신청을 했고, 요가원 이름 만큼이나 시크해보이는 원장님을 보자 한번 해봐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뒤에서야 원장님께 고백을 했지만, 사실 나는 그 때 나는 '애를 쓴다는 것'을 극도로 혐오했었다. 내가 너무 애를 쓰며 살아왔기 때문이었을까. 어떤 것이 되었건 더이상 내가 애를 쓰지 않겠다는 것 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애씀을 보는 것조차도 힘에 겨웠을 정도로 나는 소진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일까. 일반적으로 접객을 하는데 있어서 어쩌면 당연함으로 받아들여지는 '애씀'이 보이지 않는 원장님에게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꼈던 것 같다.
살다보면 가끔은 이렇게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강력한 이끌림을 느끼는 순간이 있나보다.
그렇게 나는 요가무심이라는 요가원에 매일 출석 도장을 찍게 되었다.
지금에서야 느끼는 것이겠지만, 돌이켜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가장 나를 잘 모르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일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
내가 얼마나 많은 선입견과 무의식적으로 세워둔 울타리 안에 나를 가두고 살았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치고 살아왔는지에 대한 깨달음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
나는 나를 너무 몰랐다.
나는 나를 너무 쉽게 단정 지었다.
나의 틀을 벗어나니 그 너머의 내가 보였다.
유연하지 못했던 것은 내 몸이 아니라 마음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조그만한 매트 안에서 나는 그간 무의식적으로 세워왔던 나만의 틀을 조금씩 깨부수기 시작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내가 의도하여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한 일은 그저 매일 요가원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선생님들의 가이드를 도움삼아 수련을 이어나갔다는 것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요가를 하기 전과 후를 비교해보자면 완전히 새로운 나로 태어날 수 있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지 몰라도, 적어도 나는 내가 얼마나 바뀌었는지 너무 잘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새로워진 나는 멈춤 속에서 아주 조금씩, 다시 앞으로 나갈 힘을 채우고 있었다.
요가를 시작하고 나는 브런치에서 '요가일기'를 기록해왔다. 특히나 강한 울림이 있었을 때마다 나는 그것을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당시의 나의 감정과 느낌의 글으로 풀어냈다. 그 안에는 정말 많은 내가 들어있었고, 수련하는 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변화를 겪어왔는지 고스란히 담겨있기도 했다.
1. 나는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법을 배웠다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정말 당연하지만 정말 어려운 일이기에 불교 뿐만 아니라 여러 국가에서 이와 같은 맥락의 진리를 전하고 있다.
당시의 나는 그 단순한 진리를 알지 못했다. 고통이 오면 피하기 급급했다. 고통을 마주할 용기도 에너지도 없었다. 즉 내게 고통이란 '피해야 할 대상'일 뿐이었다. 그런 내가 고통을 마주하는 유일한 방법은 늘 '회피'였고, 그 방식은 오랜 기간 나를 힘들게 했다.
피하면 피할수록 나의 불안은 깊어져만 갔다.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저 '받아들이는 것'뿐이었다. 도망치지 말아야지가 아니라, 그냥 받아들여야지로의 생각 전환이었다. 어쩌면 말 장난 같이 들릴 수도 있는 한끗 차이에 굳건하게 닫혀있던 내 마음의 기준을 아주 조금 조정한 결과, 뜻밖에도 인생의 많은 것들이 달라짐을 느낄 수 있었다.
2. 나를 더 힘들게 했던 건 '타인과의 비교'
나는 요가에 호기심이 생겼지만 문턱을 넘는 데까지 오래 걸린 주된 이유를 안다. 바로 타인과의 비교 때문이었다.
지금에서야 속 시원하게 인정할 수 있지만, 사실 내가 타인의 시선에 얼마나 연연하는 사람인지를 인정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 눈치를 본다는 것' 자체가 왜인지 없어 보이기에 나는 나를 속였다. 나는 눈치가 있는 것이지 눈치를 보는 사람은 아니며, 나는 다른 사람들은 별로 신경을 안쓴다며 쿨한 척을 한다던가 하는 행동들 뒤에는 두려움이 숨어 있었다.
남들보다 잘하지 못했을 때의 나와 마주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 역시 깨지는 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금은 요가원에 처음 방문하여 "제가 너무 뻣뻣한데 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하는 분들을 보면 과거의 나를 회상하며 속으로 대답해준다. "진짜 뻣뻣했던 건 건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느라 늘 뻣뻣하게 굳어 있던 내 마음이야"라고.
3. 진짜 나의 호흡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나와 친해졌다
살면서 내 호흡이 어떤지에 대해 들여다 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살아 있는 한 호흡이란 그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일 뿐이고 죽으면 그저 호흡이 멈출 것이라는 그 이상 이하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본적 조차 없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내가 내 호흡이 어떤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건 그 당연하던 호흡이 당연한 게 아니게 된 순간에서였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고통을 겪고 나니 숨을 잘 쉬고 싶어졌다. 건강을 잃고나서야 건강을 챙기는 것과 같은 모습이었지만, 지금이라도 내 호흡에 관심을 가져 주는 나를 스스로 격려해주며 나는 조금씩 나와 친해지는 법을 배워 나갔다.
나의 호흡을 가만히 관찰해보니 서서히 불안정한 호흡 뒤에 가려져 있던 나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단순히 '불안해서'가 아니었다. 그 불안함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나는 끈질기게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했다. 결국 그 답 역시 하나였다. '나의 한계를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것'.
무엇이든 잘해내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옥죄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나 역시 모든 걸 잘 해낼 수 없고,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없으며, 가끔은 멈춰서도 결코 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였을 때 비로소 나는 조금 더 나 자신과 친해질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요가를 통해 나와 친해지는 연습을 했다.
만약 과거의 나와 같이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거나, 어쩐지 나도 나를 모르겠다는 느낌이 드는 분이 계시다면 나는 주저없이 요가를 권하고 싶다.
부족하지도 과하지도 않을만큼, 딱 내 속도로 내 몸과 마음의 변화를 느끼다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몰라보게 달라진 나를 발견할 수 있는 날이 온다는 걸 더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