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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떠올려야 하는 시간

by Slowlifer

누구나 죽는다는 그 당연한 사실을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것처럼 외면했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

준비시간이라는 건 주어지지 않았다.


죽음은 그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오는건가

누구를 향하는 지 모를 야속한 감정이 차오를 뿐이다.


아빠는 23년 겨울 소뇌위축증이라는

희귀병 진단을 받았다.


살면서 처음 듣는 생소한 병명이었기에

차마 그 병을 죽음과는 연결시켜 생각하지 못했다.


아빠는 얼마지나지 않아 자립보행을 하지 못했고

소변조절 능력을 잃었고 발음과 목소리 근육을 잃어

의사소통 능력을 잃었다.


그래도 나에게 최악의 시나리오는

언젠가는 침상에 누워서 생활하여

입으로 음식을 삼키지 못 해

관을 달아 영양분을 주입시키는

딱 그정도의 모습 까지였다.


동생의 연락을 받기 전까지는.


동생의 연락을 받고 아빠가 입원해계신

병원으로 내려왔지만

이미 아빠는 중환자실로 옮겨진 후였다.


그곳은 감염 위험으로 면회가 불가능하다했다.


한번의 고비를 넘기고 중환자실에서

위루관을 코에 삽입하고

산소포화도는 안정을 찾아간다는

의사면담을 받고 한시름 놓고 자던 우리는

새벽같이 다시 병원의 호출을 받아야했다.


“누나, 아빠 안좋대. 가자.”

새벽 다섯시, 전 날 내린 첫 눈으로

세상이 꽁꽁 얼어붙은 아침

우리는 중환자실로 향했다.


조용한 새벽

위생가운을 입고 마스크를 쓰고 장갑을 낀 채로

대기하는 우리는 불안한 마음으로

아빠의 병상앞에 모여있는 의료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십여분 지나서였을까

들어오라는 사인이 내려졌다.


기도삽관을 한 채로

여전히 의식을 찾지 못한채 힘없이 누워있는

깡마른 아빠가 그곳에 외롭게 누워있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꿈이었으면 했다.

그런데 현실이었다.


“아빠.. 이게 뭐고..”

흐느끼는거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본 건 분명히 죽음과 삶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한 가여운 육신이었다.


그때야 깨달았다.

아빠가 나를 떠날 수도 있겠다라는 것을.


있을 때 잘하라는

그 뻔한 말의 참 의미를 비로소 실감했다.


지난 주말에 본 모습이 마지막일수도 있다는

생각에 엄청난 두려움이 몰려왔다.


곧바로 후회도 쏟아졌다.

모든 순간이 후회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엄청난 무력감을 느꼈다.


손을 꼭 잡고 아빠를 불렀다.

무서워하지 말라고, 우리 여기 있다고.


의식없는 아빠의 눈이 떨렸고

눈에는 눈물이 차올라 이내 떨어졌다.


우리는 알 수 있었다.

아빠는 우리가 온 걸 느끼고 있었다.


동생은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지금 하라고 했지만

나는 마지막 말을 하면 진짜 마지막이 될 것 같아

두려운 마음이 더 컸다.


그래서 밖에 있을테니 꼭 나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중환자실 면회를 끝내야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면

진짜 끝일것 같았다.


끝이라는 건 여전히 생각하기 싫었다.


나오자마자 후회했다.

진짜 마지막이었으면 어쩌지,

그럼 사랑한다고 말해줬어야 하는데,

내가 몇달 전 아빠가 죽는 꿈을 꾸고선

아빠에게 빼곡하게 진심을 담았 썼던

그 편지를 전해줬어야 했는데,

모든 순간이 후회스러웠다.


또 한번 후회를 남겼다.


아빠가 홀로 병상에 누워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 시간을

대체 어떻게 보내야할지 감조차 오지않는다.


전화라도 울리면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병원의 연락을 기다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우리는

동시에 병원의 연락이 두렵다.


아빠는 어제 새벽 심폐소생술을 했다고 한다.

8분간의 심정지.


아빠는 죽음과 삶 그 경계 어딘가에 있는데

우리에게 어디에 있는지

말조차 해줄 수 없는 상태에 있다.


아빠랑 어디 좋은데 구경이라도 다녀야지 라는 마음은 밥이라도 마지막으로 한번 더 먹고 싶다는 바람으로, 마지막 대화라도 한번이라는 마음은 눈맞춤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빠르게 옮겨갔다.


뭘 할 수 있을까.

난 대체 뭘 해야할까.


태어나서 처음으로 겪는 엄청난 무력감 앞에

삶이라는 것의 허망함을 뼈가 시리게 체감한다.


아빠가 더는 안아팠으면 좋겠다는 동생의 말이,

아빠의 우울도 누나의 우울도 자신은 너무 아프다는 동생의 그 말이 내가 슬퍼하면 동생이 더 아플 것만 같아 슬픔을 꾹꾹 눌러보려하지만 자꾸만 감정이 요동친다.


우리에겐 얼마의 시간이 남은걸까.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하는걸까,

아니면 아빠가 다시 돌아올거라는 희망을 가져야 할까.


희망을 가지면 내가 더 아플까,

아빠는 살고 싶을까 죽고 싶을까.


이건 다 내 욕심일 뿐일까.

죽음 뒤엔 뭐가 있을까,

죽으면 편안해질까,

나는 좋은 딸이었을까,

아빠는 우리와의 시간이 행복했을까.


중환자실에 들어가기 전

동생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빠에게 물었다한다.


누나한테 하고 싶은 말 없냐고.

아빠는 눈물만 흘렸다고 한다.


평생 아빠의 숨소리 하나에도

모든 걸 다 읽어내던 나는

아빠의 그 눈물에 대체 어떤 마음이

담겨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마음여린 딸이 너무 아파할까 걱정되는 마음일까

남겨두고 가는게 미안한 마음일까

당장 보지 못해 보고싶고 그리운 마음일까


그냥 한 마디만 듣고싶다.

행복했다고.

우리가 있어서.

한 순간쯤은 행복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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