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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울었다

by Slowlifer

할 수 있는거라곤 중환자실 앞에서

살면서 처음 겪는 불안과 초조함을 안고

의료진들의 연락을 기다리는 것 뿐이었다.


좋은 소식일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서는

연락을 기다리면서도

연락이 올까 두려운 마음이 함께 몰려들었다.


중환자실 간호사는 급한 발걸음으로

병실 전화기를 들고 나와 아빠의 보호자를 찾았다.


주말 저녁임에도 주치의 선생님이 보호자와

통화를 하겠다는 건 듣지 않아도 좋지 않은 소식임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전화를 건네받은 동생의 목소리가 점점 떨렸다.

전화를 끊은 동생이 내게 말했다.


“누나, 이제 그만 보내주자.”


심장이 철컹 다시 한 번 크게 내려 앉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과 함께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댜.


담당의사 선생님의 말은 이랬다.

심장이 잘 뛰지 않고, 충격에도 반응이 없고, 언제든 다시 심정지가 올 수 있는 상황이나 지금 상황에선 심폐소생술의 의미가 없을거라고.


심폐소생술 재동의 여부

장기기증 동의 여부


드라마에서나 듣던 남의 이야기들이 바로 내 옆에서 오갔다.


지난주말까지 나랑 같이 빵을 나눠먹던 아빠는 이제 병원에서 회복가능성 희박한 환자로 분류가 되었다.


선택을 하라는 뜻이었다.

오지 않았으면 하던 순간이 생각보다 더 빠르게 찾아왔고 마치 당장이라도 아빠가 떠나기라도 할 듯 마지막 인사를 하라는 듯 빠르게 면회 준비가 진행되었다.


다시 한 번 아빠와의 만남이 허락되었다.


이제는 꼭 말을 해야했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겠는데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나를 붙잡아 세웠다. 아빠가 누워있는 병상에 다가가자마자 동생이 먼저 아빠를 목놓아 부르며 울었다. 처음이었다. 동생의 그런 울음을 듣는 것. 모든 게 낯설었고 모든게 비현실적이었다.


아빠는 우리 목소리를 듣자 거짓말처럼 눈을 번쩍 떴다. 아빠가 눈을 떴다는 소식도 듣지못했던 우리는 아빠 눈을 볼 수 있단 사실만으로 너무 감사했다.


마지막일지 모른단 생각에 최선을 다해 아빠에게 하지못했던 말들을, 그토록 원했던 아빠와의 눈 맞춤을 하며 쏟아냈다.


아빠 사랑한다고

우리랑 함께였던 시간 한순간만이라도 아빠가 행복했었으면 좋겠다고

낳아줘서 고맙다고

아빠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훌륭하게 자랄 수 있었다고

혹시라도 지금 우리한테 미안한 마음이라면 그럴 필요 없다고

눈 떠줘서, 인사할 수 있게 힘내줘서, 우리를 바라봐줘서 너무 고맙다고

우리도 잘 살고 가겠다고

나중에 또 만나자고

아프지말고 편안하라고


생각보다 침착한 나의 태도에 나조차 놀라웠다. 그 순간마저도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생각하니 사람이 극도로 차분해졌고, 아빠가 내 곁을 떠날거라는 건 상상조차 못했던 내가 그 상황에서 말도 안되게 아빠에게 씩씩하게 잘 살아가겠다는 다짐까지 보여줬다.


아빠의 마지막 기억에 자신이 가장 아끼는 자식이 슬퍼하는 모습으로 남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마지막 가는 길이라면 내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면 안될 것 같았다. 마지막이라도 편안한 마음으로 떠나길 간절히 진심으로 바랐다.


아빠와 눈을 그렇게 오래 맞춰봤던게 언제였을까. 아빠는 이따금 감정이 올라오는듯 미간을 찌푸리고 눈물을 흘렸다. 뭐라고 말을 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지만 입에는 호스가 물려있었고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혹시라도 라는 마음에 마지막 인사를 건네면서도 살아날 수도 있는데 이런말을 하는게 맞는건지 혼란스러웠다.


아빠, 밖에서 우리 기다리고 있다고. 힘내시라고. 옆에 우리가 있으니 무서워하지말라고. 진심을 쏟아내고 우리는 밖으로 나가야했다.


살면서 그렇게 무서운 밤은 없었다.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밤새 아빠가 가버릴까 두러움에 떨었다. 그 날 밤이 고비일거라는 간호사 선생님의 말은 우리를 더 힘들게 했다.


지독한 밤이 지나가고 아침이 왔다. 몇 번의 부정맥이 지나갔지만 이전과 같이 크게 튀는 양상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언제 다시 튈 지 모르는 상황이니 가까이에 있으라고 했다.


아빠는 아직 우리 옆에 있었다.

아빠의 가족들이 아빠의 소식을 듣고 아침 일찍 한자리에 모였다. 또 한 번의 특별 면회가 허락되었다. 어제보다 눈빛이 또렷해진듯했고 이젠 목도 움직였다.


다시 한 번 희망을 가져야하나 싶은 마음조차 두려웠다. 며칠째 계속되는 천당과 지옥행.


다시 한 번 아빠를 안심시키고 나왔다. 우리 옆에 있다고. 혼자 아니라고. 여기 못들어와서 우린 밖에서 기다린다고. 빨리 나오라고.


최악과 최선의 상황을 떠올렸다.


최악은 아빠가 고통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것.

최선은 의식이라도 돌아온 아빠가 위루관으로 영양분을 섭취하고 기계의 도움을 받고 호흡을 하더라도 우리가 얼마가 남았는지 모를 그 시간을 옆에서 지켜주는 것.


그 어떤 것에도 자신이 없었다.

나는 지금 내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아빠가 떠날까 두려운 마음으로 멈춰버린 나의 일상을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그저 막막한 마음 뿐이다.


아빠와의 얼마남지 않은 이 시간.

그 마저도 옆에 있어 줄 수 없다.


이렇게 무력감을 느끼는 건 살면서 처음이다. 삶이라는 게 참 잔인하고 냉혹하다는 생각을 했다. 혼자왔다 혼자가는게 인생이라지만 혼자 가게 두고 싶지 않았다.


가는 순간만이라도 옆을 지키고 싶었다.


아빠가 의식을 찾지 못했을 땐 눈만 한 번 맞췄으면 했다. 눈 맞추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나니 이게 끝은 아니었으면 하는 욕심이 다시금 올라온다.


세상이 치사하다.

간사한 나의 마음이, 아빠가 가버릴까 잠못드는 동생을 지켜보는 마음이, 너무너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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