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성 미로반사가 알려준 나의 무식
경기도의 어느 지적장애 특수학교에서 기간제 교과전담교사 생활을 했었다. 그 학교는 중도중복장애학생들이 꽤 많은 곳이었다. 각 학급에 휠체어를 타는 학생 한두 명은 꼭 있었고, 그 아이들의 장애정도는 꽤 중했다. 현재 내가 있는 지역에서 이런 학생은 순회교육을 받거나 중도중복장애학급으로 진학하곤 한다. 하지만 당시 그 지역의 그 아이들은 다른 장애학생들과 함께 학교를 다녔다.
소년 역시 중도중복장애를 가진 학생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으로 입학했으나 실은 한국나이로 14살이었다. 하지만 덩치는 서너 살 아이만큼 작았다. 두 다리를 이용한 보행은 불가능했기에 이동 시 휠체어를 탔다. 하지만 휠을 스스로 돌리거나 조이스틱을 조작할 수 없어서 이동을 할 땐 반드시 타인의 도움이 필요했다. 식사 역시 스스로 할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큰 음식물은 씹을 수 없었기 때문에 잘게 잘라 실리콘 수저로 떠먹였다.
소년은 수업 중간중간 휠체어에 앉아 고함을 질렀다. 소년의 담임 왈, 아이가 이럴 경우 자세가 불편해서 그런 것이니 휠체어에서 내리게 한 뒤 바닥에 눕히라고 했다. 그날 역시 소년은 고함을 질렀다. 그 소리는 수업방해를 위한 것이라기보단 고통이 섞인 절규였다.
소년을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해 주기 위해 수업을 잠시 멈추고 소년에게 다가갔다. 소년을 휠체어에서 내리게 한 뒤 바닥에 깔려있는 매트 위에 눕혔다. 그 순간 소년의 몸은 마치 나무토막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그러자 소년은 휠체어에 앉았을 때보다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바닥에 누워있는 것이 오히려 불편한 것일까, 소년을 다시 일으켜 휠체어에 앉혔다. 하지만 나무토막처럼 굳어버린 소년의 몸은 휠체어 의자에 앉혀지지 않고 오히려 미끄러지기만 했다. 딱딱한 소년의 몸을 휠체어 시트에 어찌어찌 구겨 넣고 난 뒤에야 난 수업을 할 수 있었다. 그 뒤로도 이런 일이 가끔 수업 중 일어나곤 해서 우리는 서로 괴로운 시간을 보내곤 했다. 학기 말엔 소년이 고함을 질러도 휠체어에서 내려주지 않았다. 바닥에 누워있어도 불편해하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굳이 서로 괴로울 필요가 있을까.
기간제 교사 자리를 구하지 못해 강제로 임용 공부에 매진하던 시절, 지체장애파트를 공부하는데 한 단어가 내 눈에 콕 박혔다.
긴장성 미로반사
해당 반사는 영아기에 나타나는 원시반사라 생후 4개월 이후엔 사라진다. 하지만 뇌병변 장애가 있는 사람은 중추신경계의 이상으로 인하여 성장을 해도 이 반사가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똑바로 누우면 온몸이 나무토막처럼 굳어버리는 신전이 나타난다.
이 파트에 대한 설명을 읽자 그 소년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소년의 고통 섞인 고함소리, 머리부터 발끝까지 딱딱해져 버린 작은 몸이 연이어 떠올랐다. 순간 부끄러움이 파도처럼 나에게 밀려들었다. 긴장성 미로반사, 내가 이걸 몰랐어서 소년을 그토록 괴롭게 만들었던 것이다. 무식해도 너무나 무식했던 어린 내가 너무나 한심했다.
그럼 당시의 나는 그 소년을 어찌 눕혀야 했을까? 정답은 바로 옆으로 눕히는 것이다. 전문용어로는 측위(Side lying)라고 한다. 옆으로 눕힌 후, 다리 사이에 쿠션을 끼워주고, 등 뒤에 커다란 쿠션을 대주는 자세. 그날의 내가 그 소년을 그렇게 눕혀줬었다면, 소년은 고함을 멈추고 평온해진 얼굴로 온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주머니는 우리 애들만 채워야 하는 게 아니고 특수교사도 채워야 한다. 어떤 아이들은 공부가 우선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아이들은 안전이 우선되기도 한다. 모두의 안녕을 위해, 난 오늘도 내 머릿속을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