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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30대생존기

저는 화가 많습니다

내집단과 외집단에 대하여

by 파타과니아

1. 여러 이유에서 이 소재를 떠올리게 됐는데 아무튼. 이해하기 쉽게 배경을 적자면,


최근 부모님이 내가 어렸을 때부터 화를 낼 줄 몰랐다고 했다. 애인도, 친구들도 그렇단다.


대개 사회생활에서 필자는 유쾌한 이미지였고, 크게 스트레스받지 않아 했다. 그렇지만 사람이 어떻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살겠는가. 화를 낼 줄 모르겠는가.


2. 화를 내지 않는 이유는 이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고, 나아가 그거를 피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피해가 아니라는 철학 아닌 철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 더 있다면, 그냥 그 자리에서 풀어버리기 때문이다.


3. 그 자리에서 풀어버리는 게 뭐냐면, 당연히 필자도 화인 듯 화 아닌 화를 내곤 한다. 예를 들어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누가 새치기를 하면 들릴 듯 말 듯 말한다.


"엄마 없나? 왜 저러지. 하긴 부모 없으니 저러겠지"


빌라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으면 지나가면서 말한다. 참고로 이 지역은 학생들이 많은 지역이다.

"왜 빌라에서 담배를 피워. 에이씨"


최근 일본 가서도 서양인들이 담배를 피우길래 말했다.

"코쟁이 새끼들이 남의 나라 왔다고 신나서 담배 겁나 피네"


참고로 내 말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몸 좋은 형들 앞에서는 조심하긴 하지만 그래도 안 하진 않는다.


4. 싸움을 거는 건 아니다. 목소리를 아주 들릴 듯 말 듯 하게 내기 때문이다. 특이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또 엄청 특이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남들은 커뮤니티, 가족, 친구에게 푸는 이야기들을 나는 그 자리에서 풀어버리는 것뿐이다.


실제로 이렇게 하면 그 순간의 화는 풀리고, 평상심으로 돌아온다.


5. 만약 싸움이 걸린다면 작게 소리 냈기에 모른 척하면 그만이고, 만약 싸움이 난다 해도 상대방이 먼저 잘못한 거기에 내 명분이 없는 것도 아니다. 안 좋은 상황을 대비해 주짓수를 두 달 배우긴 했지만 혹시 모르니 더 배워야겠다.


6. 그렇지만 무엇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밖에서 얻은 짜증을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읽으며 독자들도 이 새끼가 여간 특이한 새끼가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사람이다. 아니 소중한 사람이고 싶다.


일주일에 몇 개씩 알바와 잡다한 활동을 하면서도, 소중한 친구의 병문안을 위해 지방까지 버스를 타고 갔고

5년도 넘게 연락 안 된 군대 후임의 모친상에 부리나케 기차를 타고 이틀을 보내고 왔다.

사랑하는 조카(미래에는 자식)를 위해 팔이 저리도록 몇 시간씩 안아줄 수도 있다.

지하철에서 파는 노숙인을 위한 잡지도 지금까지 열 권 가까이 구매했다.


누군가에게는 이상해보이는 놈도, 누군가에는 좋은 사람이다.


그렇지만 이건 나뿐만이 아니다. 당신도, 당신이 싫어하는 누군가도 마찬가지다. 그토록 미워죽겠는 상사도 그의 부모에게는 소중한 자식이고, 그의 자식에게는 소중한 부모다. 혹시 미워하는 전애인이 있어도 그렇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그렇다. 당신은 스스로 고결하고 떳떳하고 평범하다고 자부하겠지만, 나는 감히 아니라고 단언한다. 당신에게도 적까지는 좀 거창하더라도, 갈등 혹은 오해로 사이가 틀어진 사람이 있을 거다.


나도 당신처럼 평범한 인간이다. 당신이 누군가에게는 선인이고 누군가에게는 악인인 것처럼, 나도 그렇다.


7. 나는 이게 그 자리에서 풀릴 화를 굳이 남에게 전파해서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갈등과 부정의 기운을 퍼트리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은가?


나도 이별이, 상처가, 괴로움이, 외로움이, 슬픔이, 쓸쓸함이, 고통과 상실과 절망이 있었다.


그렇지만 아무도 그렇게 보지 않는다. 그러면 그걸로 된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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