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京都港区台場1丁目4 お台場海浜公園
겨울에서 봄이 되던 계절의 한밤중이었다. 나는 그때의 나를 가장 잘 알던 사람을 이끌고 오다이바로 향했다. 내가 도쿄에서 살아가며 가장 사랑했던 그 장소에 함께 서 있었다. 그 해변을 함께 걸었다. 내가 사랑하던 그 야경을 눈에 담았다. 그의 눈에도 담았다. 그리고 직감적으로 알았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의 이 바람, 습도, 그리고 이 냄새를 평생 잊지 못하겠구나, 나는 내 눈앞의 이 풍경을 평생 기억하겠구나, 그렇게 나는 오늘의 이 기억으로 평생을 살아내겠구나.
나는 아르바이트로 영어회화 커뮤니티에서 스터디 리더로 일하면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여행과 여행지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던 중 "safe haven"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내가 가장 안정감을 느끼고 편안함에 다다르는 장소는 어디일까. 내가 더 이상 불안하지 않고 슬프지 않을 장소는 어디일까. 내 안식처는 어디일까. 문득 오다이바 생각이 났다. 슬프거나 부정적인 기억이 단 하나도 없는 장소, 마냥 행복하고 기쁜 기억만 가득한 장소. 도쿄만의 오다이바 해변이다.
누군가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오다이바라고 답할 것이다. 바다는 단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더운 날도 추운 날도, 맑은 날도 흐린 날도 그만의 매력으로 나를 반겼다. 해가 진 지 오래라 하늘은 이미 어두컴컴했지만 구름은 여전히 수평선을 떠다니고 있었다. 멀리 도쿄 시내의 높게 뻗은 건물들에서 흑백의 빛줄기가 나오고 있었고, 레인보우 브릿지 위로 차들은 여전히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바다 너머 풍경의 한 켠에서 도쿄타워가 빨갛게 빛나고 있었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 그 바다는 여전히 무심했으나 여전히 세심했다.
학부 시절의 행복한 추억이 가득한 바닷가였다.
새내기 시절, 도쿄에서 산 지 한 달 정도 되었을 때, 기숙사에서 친하게 지내던 선배들과 동기들과 오다이바에서 열린 옥토버페스트에 간 적이 있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대도시의 모든 것이 새로웠고, 그래서 굉장히 들떠있었던 것 같다.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러 바닷가에 가다니. 내가 상상하던 대학의 낭만이었다. 옥토버페스트는 즐거웠다. 마침 모터쇼도 하고 있었고, 주말이었기 때문에 길거리에서 버스킹도 꽤 많이 하고 있었다. 정말 많이 웃었다. 짝사랑하던 선배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줬을 때 열여덟의 나는 설레어했다.
함께 간 열 명 남짓한 무리가 다 같이 바닷가에서 노을을 봤다. 도쿄로 이사 가기 전까지 뉴질랜드에서 살았던 나는 뉴질랜드에서 참 예쁜 하늘과 바다, 노을과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정말 많이 봤었다. 그런데도 오다이바의 노을은 감동적일 만큼 예뻤다. 파랗던 하늘이 오렌지빛으로 물들어갔고, 구름이 빌딩 숲 위를 떠다니다가 레인보우 브릿지 위에 닿았다. 밤하늘에서 별이 쏟아지진 않았으나 바다 건너 도쿄의 야경이 빛나고 있었다. 행복했다.
그렇게 오다이바는 내가 도쿄에서 가장 사랑하는 장소가 되었다.
뉴질랜드나 한국에서 나의 친구 또는 가족이 도쿄로 놀러 왔을 때, 나는 꼭 그들을 오다이바 해변에 데려가곤 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소를 보여주고 싶었다. 엄마아빠는 자유의 여신상 앞에서 그 포즈를 따라했다. 나는 웃으며 엄마아빠를 카메라 프레임에 담았다. 해가 쨍하고 비치고 있었고, 곧 땀이 나기 시작해서 나는 얼른 카페라도 들어가자며 엄마아빠를 재촉했다.
몇 년 만에 만난 고등학교 때 친구와 오다이바 주변에서 전시를 보기로 했다. 밥을 먹고 한 시간쯤 붕 뜬 시간에 우리는 바닷가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물고 근황을 나눴다. 바람이 꽤 많이 불었다. 전시회에 가야 할 시간이 가까워지자 비도 내리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부터 알던 친구가 도쿄에 놀러 왔을 때 우리는 온천에 갔다가, 한밤중의 오다이바 해변을 걸었다. 여름이라 사람이 많았고, 밤인데도 불구하고 매우 덥고 습했다. 그래도 우리는 그 더운 밤바다를 한 시간이 넘게 걸었다. 그렇게 오다이바는 그들 여행의 한 페이지가 되었고 나의 행복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
고등학생 때 알던 일본인 친구와 오랜만에 만났다. 친구가 쇼핑몰 안에 있는 식당을 예약해 줘서, 우리는 오다이바의 야경을 바라보며 맛있는 저녁을 먹으면서 술을 마셨다. 친구는 동거 중이던 남자친구와 싸운 이야기를 한 시간이 넘게 했다. 나는 친구에게 동조하면서 본 적도 없는 친구의 남자친구를 같이 욕해줄 뿐이었다. 그 와중에도 바다는 무심하게 아름다웠다. 파도 하나 치지 않는 그 해변은 참 잔잔했다. 술도 깰 겸, 밤바다를 걸었다. 여기저기 데이트 중인 커플들이 참 많았고, 해변공원을 산책하며 우리는 또 참 많은 대화를 했다. 친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친구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나는 이렇게 별 것도 아닌 일로 몇 시간이고 수다를 떨며 이렇게 예쁜 바다를 볼 수 있는 그 순간을 사랑했다.
막학기, 졸업논문을 끝내고 대학생으로서의 마지막을 만끽하기 위해 머리를 쨍한 핑크색으로 물들였다. 당시 꽤 열심히 활동하고 있었던 교내 케이팝 댄스동아리에서 트와이스의 <Dance the Night Away>을 연습하고 있었다. 바닷가 촬영이 결정되었고, 우리는 오다이바에 모였다. 다행히도 날씨가 참 좋았다. 하늘은 새파랗고, 태양은 빨갛게 빛나고 있었으며, 구름 몇 점이 하늘을 떠다니고 있었다. 몇 차례에 걸쳐 노래를 틀어놓고 춤을 췄다.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다.
"파도 소리를 틀고 춤을 추는 이 순간 / 이 느낌 정말 딱야 / 바다야 우리와 같이 놀아 / 바람아 너도 이쪽으로 와"... "짭짤한 공기처럼 이 순간의 특별한 행복을 놓치지 마"
노래 가사 그대로였다. 바닷가에서 우리 아홉 명은 행복하게 웃으며 춤추고 있었다. 반복되는 촬영에 덥고 지쳤으나 우리는 즐거워했다. 촬영을 마치고 바닷가 데크에 앉아 피자를 먹었다. 마침 한 친구의 생일이어서 풍선과 케이크를 미리 준비했고, 우리는 다 같이 생일축하 노래를 불렀다. 여름, 바닷가, 피크닉. 단어만 봐도 마냥 행복하고 즐겁지 않은가. 나는 마음껏 웃었고 후회 없이 행복했다.
가장 친하게 지내던 학과 동기 중 한 명의 생일이었다. 항상 붙어 다니던 나와 세 명의 친구들은 한밤중에 카쉐어를 통해 차를 빌려 드라이브를 가기로 정한다. 딱히 목적지는 없었다. 그냥 발 닿는 대로 대충 운전하다 보니 시부야를 지나, 롯폰기를 지나, 도쿄타워를 지나, 오다이바 해변공원에 닿았다. 밤 10시 반, 배고파진 우리는 눈앞에 보이던 맥도날드에 들어가 각자 빅맥 세트 하나씩을 금방 해치웠다. 여기까지 왔는데 바다나 보고 가자, 하고 가위바위보를 한다. 가위바위보에서 진 친구는 귀갓길 운전기사다. 나머지 셋은 편의점에 가서 맥주를 한 캔씩 산다. 12시쯤 우리는 바다로 향했다. 계획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갈아입을 옷도, 신발도, 아무것도 없지만 바닷가를 마주한 우리는 참지 못하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서로에게 물을 뿌리고 소리 지르며 배가 아프게 웃었다. 바닷물이 더러운 것도 상관없었다. 플래시를 켜 놓은 카메라로 사진을 많이도 찍었다. 못 나온 사진 한 장을 가지고 몇 분을 깔깔거리고 웃었다.
우리는 곧 헤어져야만 했다. 졸업 후 두 친구는 미국으로, 한 명은 영국으로, 그리고 나는 한국으로 갈 예정이었고, 불과 한 달 남짓한 시간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웃고 떠들고 장난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젖어버린 티셔츠는 대충 털어 말리고 모래 묻은 운동화도 탁탁 대충 털어버렸다. 새벽 두세 시쯤, 다시 차를 타고 우리가 살던 동네로 돌아오는 길,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세찬 여름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지금. 어두운 밤, 나는 이런 추억들이 가득한 이 장소에 서 있었다. 그 추억을 나와 공유했던 사람들은 여기 없었지만, 또 나는 새로운 사람과 여기서 새로운 추억을 만들고 있었다. 문득 눈물이 났다. 그 사람에게 안겨서 몇 분을 울었다. 세상엔 다양한 종류의 눈물이 있다. 슬퍼서 나는 눈물이 있고, 행복해서 나는 눈물이 있으며, 그리움에 사무칠 때 나는 눈물이 있다. 나는 아무 걱정 없이 마냥 행복하기만 했던 내 청춘이 그리워 울었다. 그 추억이 내 눈물에 잠겼다. 나는 정말 행복했구나. 그때 가만히 나를 토닥이던 사람이 말했다. "행복한 기억만 가득한 장소가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이야. 이제 나랑 같이 왔으니까 행복한 기억 하나 더 생겼겠다."
지난날 누군가를, 어딘가를, 어느 사람들과 어느 장소에 함께했던 어느 시간을, 그 기억들을 추억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축복이 아닌가. 나는 나의 행복을 추억하고 있었다. 그 추억을 통해 지나온 시간들을 다시 마주하고 울었다. 이뤄지지 않을 그리움은 바람이 되어 나를 스쳐가고 있었다. 행복을 추억하며 나는 행복했다. 내가 이 장소에 서 있었던 그 모든 계절과, 바람과, 풍경이 나를 지금 여기로 이끌었고, 나는 그 모든 날들을 추억하며 행복했다. 행복해서 눈물이 났다.
소매로 슥슥 눈물을 닦아내고, 바다를 마주하고 바로 섰다. 지금 이 순간의 바다와, 이 사람과, 이 바람을 더 차곡차곡 담아두고 싶은 마음에 말없이 앞을 바라봤다. 오다이바는 여전히 예뻤고 나는 여전히 행복했다. 한 때를 추억하는 바로 지금이 내 미래의 가장 그리운 과거가 된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행복한 거였다. 오다이바는 오래오래 내 기억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기억들로 평생을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