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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A Apr 22. 2020

불면의 밤

어느 이른 아침

의사 셋, 연구원 둘, 금융인 하나로 구성된

대학 동기 톡방에 질문하나 가 '깨톡' 하고

올라왔다.

"얘들아, 이 약 괜찮아?

나 요즘 잠을 통 못 잔다. 아직 수면제 먹기는 겁나고..."

메시지 아래에는 처음 보는 수면유도제를 광고하는

웹 링크가 걸려있었다.

의사 친구들은 모르는 약이다, 우선 약부터

먹지는 마라. 감태로 만든 보조제 먼저 시도해봐라

등의 처방을 내리기 시작할 때 내가 물었다.

"대체 잠이 왜 안 오는데..?"

결혼도 안 한 골드미스 직장인이 잠 안 오는

이유야 뻔하지 싶었다.

회사에서 나름대로 중요한 미션을 부여받았는데

해결책은 없고 과거에도 그들이 실패했던

일인데 친구에게 해내라고 닦달을 해대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란다.

그 와중에 본인 때문에 혹시나 팀원들까지

욕을 싸잡아 먹지는 않을까 걱정된다며

남까지 챙기자니 잠이 올 턱이 있나 싶었다.

나도 꽤 오랫동안 불면증으로 고통받던

시절이 있었기에 남일 같지가 않았다.

심지어 정신 사납게 구는 아이도 없으니

아마도 친구는 잉여의 체력과 정신력을

온종일 그리고 온밤을 다해

업무 생각만 하다가 열 받고 원망하고

좌절하고 지쳐있을 터였다.

내가 이야기했다.

일단 그 일을 잘 해내겠다는 욕심을 버려라.

어차피 가 그 일을 성공한다 한들 갑자기

노인네들이 너를 임원을 시켜주겠냐

사장을 시켜주겠냐.

자고로 일은 해내는 사람에게 더 몰려들기만

할 뿐인 알지 않느냐.

후배들 걱정일랑 말아라. 가 반드시 해내겠다고

달려드는 것을 그 친구들은 더 두려워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도 일단은 침대에서 일어나라.

그리고 회사에 나가라.

출근길에 달달한 커피를 한잔 사고

오전 시간은 커피나 홀짝이며 어영부영 보내라.

오후엔 팀원과 티타임 겸 카페에 나가

회의 비슷한 수다를 떨어라.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눈빛을 살펴라.

그저 한낱 월급쟁이로 매너리즘에 푹 절어있는

갑남을녀가 연예인이나 재테크 드라마 이야기만

한다면 제발 욕심내지 말아라.

부디 그때는 공리주의자가 되어

네 의지, 양심 따위는 잠시 넣어두라.

다행히 그들에게 야망이 있어 보이고

평소 그 능력을 신뢰해왔다면 조직의 힘을

믿어보라.

무엇인가를 밀고 나가다 보면 최선은 아니라도

차선 정도는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지금은 어떻게든 일어나서 회사에 나가라.

월급은 일하는 값이 아니라 아침에

일어나는 값이라더라.

회사에 그 정도는 해줘 보자.


아마도 이불을 걷어내기가 꽤나 힘들었을 것이다.

잠을 설친 날일수록 매트리스와 한 몸이 된 듯

침대는 더욱더 거센 힘으로

몸을 놓아주지 않는 법이니까...

다행히 내가 회사에 도착할 무렵

친구에게서 집을 나섰다는 톡이 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각은 새벽 세 시 반이다.

처방을 알면서도 좀처럼 처방전을

따르지 않는 것이 사람인 것이다.

나야말로 욕심을 내려두었다

기대를 버렸다며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퇴근 후까지 스위치를 끄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하튼 그날 이후 유튜브를 볼 때마다

불면의 갑남을녀가 등장하는 수면 유도제

광고 영상이 집요하게 나를 따라다니고 있다.

잠 못 드는 사람이 참 많은가 보다.

애드테크에 그렇게 많은 돈을 쏟아부은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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