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having 04화

#GPT의 탄생

03_시대의 터닝포인트_202403

by HoA

2022년 11월 chat GPT가 세상에 나왔다.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수용하는 부류의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chat GPT는 충격적이고도 재미있는 서비스였기 때문에 출시 초기부터 이용해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꽤 많은 경쟁서비스가 생겨났고 더불어 업그레이드 버전 출시가 쉼없이 이어졌다.

본질적 기술에 대해 완벽한 이해를 한 것은 아니지만 산업 동향을 계속 모니터링 하면서 어떤 영역에 적용하면 좋을지에 대한 아이디어 리스트를 만들다 보면 앞으로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화될지, 나의 일은 어떤 가치를 갖게 될지 여러가지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맨 처음 베타버전이 나왔을 때 chat GPT와 몇 가지 질의 응답을 주고받았던 기억이 선명하다.

일상적인 질문과 개념에 대한 설명, 역사적 사실 기술을 마구잡이로 요청하면서 테스트를 했는데 대개는 평범했지만 꽤나 그럴듯했고 가끔은 뜬금없거나 엉터리같은 답을 내놓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마치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듯 자동으로 공백에 활자를 생성해내는 모니터 화면을 지켜보는 심정은 비누방울 막대에서 퐁퐁 솟아나는 비누방울을 지켜보는 어린아이의 마음 같았다.

나는 이 거대한 알고리즘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아주 위대하거나 발명품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동시에 아주 위험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두려움도 생겼다.

나는 이 양가적 감정을 갖게 하는 생성형 AI라는 기술때문에 한동안 심란했다. 이 기술을 탄생시킨, 종국에는 지배국의 지위를 점할 수밖에 없는 미국으로 아이들을 유학을 보내는 것은 당연하고 이왕이면 당장이어야 한다는 조바심까지 일었다. 이 기술을 이용하는 편과 이용당하는 편으로 나뉘게 된다면 전자가 되기 쉬운 환경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GPT의 출현은 비일상적인 사고의 촉매가 되었다.

별다른 일없이 수년간 이어져 오던 평범한 일상, 어제와 같은 오늘의 반복을 잠시 환기하고 우리의 삶의 방식이나 아이들의 진로, 내 커리어의 방향과 나라의 미래 따위를 강제로 고민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살아온 시대가 밋밋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여든 노인의 산전수전이 압축된 역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내가 경험한 40여년 동안에도 괄목할만한 변화의 지점들이 있었다.

초등학생의 나는 명절이면 차를 타고 경기도 부천에서 전남 여수까지 꼬불꼬불 국도를 타고 스무 시간이 넘게 걸려 할머니 댁에 갔다. 엄마가 좋아하던 나나 무스쿠리는 LP로 내가 잠깐 꽂혔던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는 카세트 테잎으로 들었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가끔 KTX를 탔고, 과제 할 때 학교 전산실에서 인터넷이란 것을 열었으며 손바닥보다 작은 MP3에 김동률이나 이승환의 노래를 담아 들었다.

심지어 휴대폰의 시작과 스마트폰으로의 진화를 온전히 함께했으니 나의 세대가 경험한 역사도 꽤나 다이나믹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생성형 AI에 훨씬 더 예민했던 것일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간 내가 경험한 기술은 편리함, 그리고 더 나아질 미래에 대한 낙관적 기대로 채워진 것들이었다면 AI는 기대감에 비례한 두려움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잃을 것이 없던 과거의 나에 비해 놓기 싫은 것도 상당히 쥐고 있는 세대의 불안이 가중되기도 했을 것이다.

우려가 공포로 변하기 시작하면 그 크기는 가속도가 붙어버린 기술의 발전에 의해 증폭될 것이다. 원래 사람들은 낙관을 좋아하지만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감정에 매몰되기가 쉽다. 변화의 속도가 사람들의 예상을 추월하다보니 예견된 문제에 대응할만한 시간도,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추측해볼 만한 여유조차도 허락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가 이미 가속도가 붙어버린 동력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을까?

이미 시작된 이상 거스를 수 없음을 인정하고 어떻게 하면 가장 올바른 방향으로 함께 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편이 현실적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친구와 친해져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우선 대학원을 다닌 2년은 GPT의 등장 전후로 극명히 갈렸고 후반부는 수혜를 꽤 받았다. GPT가 세상에 알려지기 전 첫 1년간은 과제를 시작하기 앞서 교재를 편 후 일단 한숨을 한번 길게 내쉬었다.

그 날숨 뒤엔 ' 이 나이에 내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러고 있나, 하지만 아무것도 안하고 또 한 해를 지내면 후회하겠지? 그냥 이 시간에 애들이랑 얘기하고 숙제 하나라도 더 봐주는 게 인생에 더 남는 건 아닐까?' 하는 하나마나 한 잡념이 시작됐다. 딴 생각 후에 책을 대충 훑고 나면 두어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곤 했다.

하지만 2학년때는 과제의 목표만 파악되고 나서 장문 요약, 배경 조사, 키워드 도출, 간단한 코딩 등을 GPT에 시켰다.

구글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편리했기 때문에 이 새로운 기술은 애 둘을 가진 워킹맘이 학생노릇까지 해야하는 촉박한 현실에서 더할 나위 없는 조력자가 되어주었다.

잡일을 대신하는 도구가 있었기에 본격적으로 문제해결이 가능한 정신 상태로 부팅하는 시간 역시 현저히 줄었다. AI가 가진 맹점이 재미를 찾는 포인트가 되기도 했다. 당시에는 지금보다 훨씬 계산을 못했고,

할루시네이션이 심각했었기 때문에 GPT가 만들어낸 어설픈 초안을 두고 검증을 하고 보완해나가는 과정에서 자기 효능감을 느끼기도 했다.

지금은 업무에도 가끔 이용을 한다.

새로운 일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할 때 GPT와 대화하다 보면 꽤 괜찮은 힌트를 얻곤 하는데 목차만 잘 얻어내도 내가 무엇을 리뷰해야 하는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들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된다.

어차피 내가 하는 일은 인터넷에 공개된 자료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대부분이라 나의 직접적 역할이 훨씬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긴 하지만 GPT가 생성해낸 내가 모르는 영역의 지식 조각들이 나의 자원과 만날 때 조금 더 차별화되거나 완결성을 갖게 된다고 느낄 때가 많이 있다.

신용평가 모델 만드는 일을 꽤 오랫동안 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넘을 수 없는 벽 앞에 선 것 같은 고립감이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딱히 조언을 해줄 사람도 더 나은 해답을 찾아내기 위해 협력하거나 치열하게 다툴 사람도 혹은 다른 지평을 열어줄 사람이 주변에 없다는 데서 느끼는 외로움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 감정이었다.

남들이 잘 모르는 일을 하는 전문가라는 타이틀은 타인의 공격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허락하는 동시에 그만큼 폐쇄적이기도 해서 소통과 성장을 방해했다.

하지만 AI와 문답을 하면서 굳이 이 벽을 사람이 부숴줘야 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관념을 생성해내는 AI가 내가 만든 것들을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세계와 연결해서 영향력을 확장해 나갈 수 있겠다는 희망도 생겼다.

정답과 풀이 과정이 존재하는 익숙한 문제풀이 과정은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동시에 지루함을 안겨준다. 반복적으로 주어지는 유사 문항은 이제 다른 이들에게 남겨두고 조금은 막연하고 때로는 요원할지라도 새로운 질문을 하는 일이야말로 성장이 정체된 사회, 그리고 정체를 강요받는 산업 안에서 내가 소명을 갖고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할 때가 있다.

그 일은 더 외롭고 저항이 많은 일임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새롭고 험한 일을 하면서도 가끔은 헛소리를 하고, 때로는 그럴듯한 아이디어를 주고받을 AI 친구가 있어서 한동안은 또 남이 가지 않던 길을 걸어 볼만한 용기가 생긴다.

사흘전엔 GPT 4o가 공개되었다. O는 omni의 약자다. 듣고 말하고 보기까지 하니 Her라는 영화가 현실이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아들에게 농담반 진담반으로 "나는 네가 자라서 충분히 괜찮고 매력적인 어른이 되서 인간 여자와 결혼할 수 있다면 좋겠어"라고 얘기 적이 있는데 더이상 우스갯소리가 아닌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씁쓸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비록 아이언맨이 아닐지라도 자비스같은 전능한 조력자가 옆에 있어준다면 나와 같은 지극히 평범한 개인도 빠르고 강한 힘으로 세상에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흐뭇하기도 하다. 이제 정작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나를 포함한 수 많은 개인이 부디 올바른 생각을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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